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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대한축구협회(KFA)가 갈수록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구성원끼리도 신뢰를 잃은 것 같다.”

KFA 고위 임원을 지낸 축구인 A는 최근 프로축구 K리그1 현장에서 내부 소식통 얘기를 전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발생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을 앞두고 발생한 ‘비자 해프닝’을 언급하면서다.

한국 축구 최상위 단체인 KFA는 지난달 남녀 A대표팀이 출전하는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황당한 행정 사고를 저질렀다. 개최국 일본이 규정해둔 비자 신청을 제때 하지 못해 일본과 최종전 1경기 취재를 계획한 1개사를 제외하고 대회 전 과정 취재를 계획한 언론사가 모조리 현장에 가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대표팀도 비자 처리가 늦어 전전긍긍했다.

일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홈페이지 등에도 비자 발급과 관련한 절차가 안내돼 있다. 그런데 KFA 측은 “EAFF가 보낸 대회 초청장을 비자로 잘못 인지했다”고 해명, 대회가 임박해서야 긴급 비자 발급에 나섰다. 그나마 대표팀을 비롯해 선수단 관계자는 일본 외무성이 지정한 비즈니스 카테고리에 포함돼 비자 발급이 이뤄졌다. 그러나 취재진은 외무성 승인 대상이 아니어서 비자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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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단순히 비자 사고 때문에 KFA가 비난받는 게 아니다. KFA는 지난해 초 ‘정몽규 3기 체제’ 출범 이후 크고 작은 행정 사고를 지속해서 범하고 있다. 그 중심엔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매겨지는 ‘애자일(Agile) 조직’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애자일 조직은 부서 간 경계 없이 필요에 맞게 유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 회장은 지난 2019년 자신이 운영한 현대산업개발에 애자일 조직체계를 도입해 수평적으로 빠르게 업무를 추진하는 문화 조성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KFA에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1본부 6실 19팀의 구성을 2본부 7팀으로 통합했다. 이전까지 대다수 인원이 특정 부서에서 전문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는데, 타 부서 일을 겸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그러나 조직 개편 시행 전부터 KFA 안팎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소규모 인력을 지닌 KFA에 애자일 조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현대산업개발처럼 인력이 많은 대기업은 주요 부서를 통합하고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특정 업무를 1~2명이 전담해 처리해 온 KFA는 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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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실제 여러 사고가 발생했다. 한 예로 지난해 3월 ‘요코하마 참사’로 불리는 A대표팀의 일본 원정 0-3 참패 때다. 당시 선수 선발부터 미디어 대응,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새겨진 유니폼 사태 등 이례적 논란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대표팀과 KFA 사무국의 가교 구실을 한 B국가대표지원팀장의 부재가 화두였다. B팀장은 정 회장의 애자일 조직 개편과 함께 여자축구활성화 프로젝트팀으로 발령이 났다. 현장과 기술파트는 경기인 출신이 채워졌는데, KFA 내부에서 “B팀장이 대표팀 주요 행정과 리스크 관리를 잘 해왔는데, 그가 빠진 뒤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나왔다.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도 B팀장 인사에 불만을 보였다.

KFA 출신 한 관계자는 “외부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대표팀 관련 주요 마케팅 계약 건도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외에 천안NFC, 여자축구활성화 사업 등 KFA 전사적 역량이 집중돼야 할 핵심 사업에 일부 팀원이 겸직했는데, 업무 역량이 이전보다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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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정 회장을 비롯해 KFA 고위 관계자는 시간이 약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여전히 뒤숭숭하다. 이번 비자 사고도 홍보·마케팅 구조상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 회장은 애자일 조직 출범과 함께 홍보팀, CSR 팀을 마케팅팀으로 통합했다. 기존 홍보팀은 취재진과 그 외 대표팀 지원, 대외 업무를 관장했다. 마케팅팀은 협회 수익과 관련한 전문적 활동을 했다.

그런데 홍보와 마케팅을 한 조직으로 묶으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 리스크 관리 등 핵심 역량이 떨어졌다는 견해가 나왔다. K리그 구단 복수 사무국장은 “홍보와 마케팅은 협업할 순 있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밖에서 볼 땐 둘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묶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KFA는 비자 사고 직후 마케팅팀에서 A대표팀 업무를 담당하며 취재진과 소통한 관계자 C를 문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인은 “C가 총대를 메고 꾸짖음을 받는데 황당하더라. 애자일이라면서 (비자 사고 과정은) 왜 특정 부서, 사람의 책임인가. 총책임자는 어디로 갔느냐”라고 말했다.

일반 기업과 다르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KFA 내 혼란스러운 조직 체제와 책임 소재를 지켜보는 축구인, 행정 전문가는 11월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