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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연맹 김기범 팀장이 지난 2014년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광주 선수단을 상대로 부정방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제공 | 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한국 프로스포츠는 승부조작과 전쟁 중이다. 지난 2011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K리그의 승부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이듬해 프로야구, 프로배구에서도 승부조작의 실체가 드러났다. 2013년에는 프로농구까지 ‘검은 손’의 행각이 드러나면서 국내 4대 프로스포츠가 모두 승부조작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한국 프로스포츠에서는 종목을 불문하고 잊을만하면 승부조작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승부조작을 뿌리뽑기 위해 각 경기단체와 구단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승부조작 사건은 무엇보다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하다. 실추된 명예를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승부조작의 망령이 그라운드와 코트에 두번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런 관점에서 K리그에서 대규모 승부조작 사건이 드러난 2011년 이후의 행보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아직까지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재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 사건 직후 철저한 반성과 함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재구축해 지난 5년 동안 재발방지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강력한 징계와 연중 내내 이뤄지는 예방활동의 효과

2011년 K리그에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지기 전 이미 한국 축구계에는 ‘전조 현상’이 나타났다. 2008년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에서 승부조작이 발생했고 2010년 고교축구대회를 통해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나왔다. 비 프로무대를 통해 검은 손의 유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소문들도 점차 퍼져나갔다. 프로축구연맹과 K리그 구단들은 2010년 10월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정방지 교육을 실시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시점이었다. 2011년 5월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조직원이 수익 분배에 불만을 가지고 방송사에 제보를 하면서 검찰에서 조사가 시작됐고 이후 프로축구계에 숨겨져 있던 검은 유혹의 실체가 하나둘씩 밝혀졌다. 프로축구연맹은 2011년 6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상벌위원회를 열어 승부조작에 관여한 가담자 전원(현역선수 58명,전직 선수 8명)을 영구제명시켰다. 당시 K리그 등록 선수의 9%가 승부조작으로 인해 축구계를 떠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승부조작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른 뒤 축구계에서는 관련자들의 징계 수위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리그 운영에 타격을 줄이기 위해 가담 정도에 따라 징계 수위를 조절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은 첫 대규모 승부조작 사태의 상징성을 고려해 가담자 전원을 축구계에서 퇴출시키는 초강수로 맞섰다. 당시 승부조작에 관여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20대였고 억대 연봉자는 20%를 넘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 사건의 원인을 선배의 강요보다는 금전적인 유혹에 있다고 봤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선수들이 검은 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면 평생 땀을 흘린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없다는 것을 징계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K리그 한 구단 관계자는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졌을 때 가담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그릇된 행동이 축구계에 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가담자 전원이 영구제명될 것이라는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연맹에서 강력한 징계를 내린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연맹이 엄벌을 내린 것이 승부조작 재발방지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리그는 승부조작 사건 이후 예방 활동과 대응체계를 개편했다. 부정행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예방활동이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승부 조작과 불법 베팅사이트 이용의 위법성을 알리는 부정방지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시즌 내내 프로축구 관계자들에게 잘 노출될 수 있도록 경기장 안팎과 라커룸,클럽하우스,숙소 등에 부착하는 부정방지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또 메신저 메일 SNS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유출 방지도 다루고 있고, K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에는 부정방지 행위 근절을 위한 전광판 홍보도 이뤄지고 있다. 경기당 2회 이상 노출되고 있는 전광판 홍보는 K리그 클린센터및 핫라인 운영에 대한 공지와 함께 부정행위 신고 포상금 제도를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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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슈퍼매치를 앞두고 서울과 수원삼성 선수들이 부정방지 캠페인 선포식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 프로축구연맹

◇세계 축구계가 주목하는 K리그의 승부조작 방지 시스템

2011년 수면 위로 떠올랐던 승부조작 사건의 경우 2010년 4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약 10개월여간 리그와 리그컵 21경기를 통해 발생했다. 초창기에 승부조작에 참여한 선수들이 동료들을 포섭하면서 가담자들이 급증했다. 부정행위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승부조작이 독버섯처럼 퍼지기 전에 초기에 사건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도 예방책 못지 않게 신경을 써야할 사안이다. K리그는 승부조작 예방 활동과 신속한 대응을 위해 2013년부터 전 세계리그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분석을 시행하고 있다. 경기 분석은 3차로 진행된다. 1차로 현장 관찰, 2차 경기 영상 분석, 3차는 의심 경기 추가 분석으로 이뤄진다. 특히 사후 경기 영상 분석은 경기 중 발생한 판정 등에 대한 재검토는 물론 부정행위와 관련된 징후를 포착하는데 포커스가 맞춰진다. 전 경기 분석에는 영상 확보와 경기 분석요원 운영 등으로 연간 1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사후 경기 영상 분석을 진행하는 7명의 경기 분석 요원들은 20년 이상 선수,심판,경기 감독관 등으로 활동한 축구계 베테랑들이다. 이들은 ‘매의 눈’으로 선수들의 이상 행동이나 징후를 적발해 낸다. 프로축구연맹 김기범 팀장은 “경기 분석 요원들은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선수들의 플레이 의도까지 잡아낼 수 있다. 각 경기별,팀별,선수별로 분석 자료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에는 신속하게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특정 경기에서 의심스러운 플레이를 한 선수의 경우 이후 경기까지 추적해서 데이터를 별도로 관리한다.

K리그의 승부조작 극복 사례는 국제축구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5년 전 큰 시련을 겪었지만 아픔을 딛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K리그의 모습은 이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포츠 베팅과 승부조작을 주제로 한 스포츠 윤리 세미나에서는 ‘K리그 승부조작 예방 활동 사례’가 호평을 받았다. J1~3리그 임직원, 일본축구협회와 J리그 관계자, 락프 무쉬케 국제축구연맹(FIFA) 안전국장 등 160명이 참석한 세미나에서는 7개의 주제 발표와 강의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 ‘K리그의 승부조작 예방 활동’이 참석자들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강의로 평가받았다. 세미나 발표자로 참석한 김 팀장은 “무쉬케 FIFA 안전국장도 K리그의 사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또한 일본 축구계 관계자들은 리그와 구단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례가 많아 도움이 컸다고 평가했다. J리그 신인 선수 교육에 초청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doku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