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프리미어리그 차이낫 FC에서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한 한국인 수비수 조태근)


[스포츠서울=이성모 객원기자] “처음엔 제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그저 축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태국에서 치른 100경기가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10월, 태국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 차이낫 FC에서 뛰고 있는 한 한국인 선수가 ‘한 팀에서만 100경기 출전’이라는, 용병으로서는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은 진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이름은 조태근. 한국에서 뛰던 시절에는 철저히 무명에 가까웠던 그의 100경기 출전 소식에 많은 축구팬들이 기꺼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한국에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선수생활을 뒤로 하고 태국에서 100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옛 스승의 부름을 받고 치앙마이 FC로 옮겨 새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나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 태국 차이낫과의 첫 만남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뛰던 시절, 조태근은 전주대를 졸업한 후 수원시청, 부산교통공사 등에서 활약했다. 대학 졸업 시점에는 한 때 K리그 입단을 눈앞에 둔 것처럼 보였던 때도 있었으나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고 무릎 부상으로 2년 정도 축구를 못하기도 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후 일본 J리그에도 도전해봤으나 2년 가까이 축구를 하지 못한 일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4년 전인 2012년. 당시 K리그 클럽의 2군 팀에서도 경기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이나 K3 선수들 중에는 한창 리그에 투자를 하던 태국 리그로 도전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조태근도 태국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 1년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에이전트도 없던 그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 태국의 한 클럽과 테스트 기회를 얻게 됐다. 그 팀이 바로 이후 조태근이 100경기를 넘게 뛰게 되는 차이낫 FC였다.


그는 자신이 처음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차이낫이라는 도시에 왔을 때의 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이낫은 정말 시골이에요. 태국에서도 제일 시골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요. 특히나 제가 처음 차이낫에 왔을 땐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첫 두 달은 차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 차를 얻어 타고 다녔고요. 숙소도 이름은 호텔이라고 하지만 여관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요. 식사도 음식이 다 입에 안 맞으니까 볶음밥 맨날 먹고 세븐일레븐 같은 곳에 가서 음료수를 사먹으면서 지냈습니다.”


“처음엔 제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저는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그저 축구가 하고 싶었어요.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부끄럽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태국 리그에 대한 인식이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 이미지가 안 좋았거든요. 그래도 저는 무조건 테스트에 통과해야 한다, 무조건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2. “머리가 찢어져도 뛰었다”


그가 입단테스트 기회를 잡았던 차이낫 FC에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을 2-1로 꺾었던 태국 대표팀의 주역이었던 수라차이 감독이 있었다. 조태근의 축구인생을 바꾼 것도 바로 그 수라차이 감독이다. 수라차이 감독은 조태근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인상 깊게 본 후 그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차이낫과 계약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좀 했었어요. 부리람과 연습 게임에 가서 잘하고 와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도 2주가 지나도록 계약이 전혀 진행이 안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서 말했습니다. 계약을 안 할 거면 말해달라. 한국에 돌아가겠다고요.”


수라차이 감독은 ‘A4용지’위에 임시계약서를 쓰며 조태근을 붙잡았다.


“수라차이 감독님이 저를 잡으면서 말씀해주셨어요. ‘지금 팀의 회장이 휴가중이라 계약을 못하는 것 뿐이다. 날 믿어라. 내가 책임지고 계약을 꼭 성사시켜주겠다.’”


결국 그렇게 차이낫과 정식계약을 체결한 조태근은 한마디로 ‘머리가 찢어져도’ 뛰었다. 그리고 그런 투지 넘치고 헌신적인 플레이로 감독과 구단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차이낫에서 뛴 첫 시즌엔 정말 몸 사리지 않고 아무것도 안 피하고 플레이 했어요. ‘난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실패하고 돌아가면 선수생활 끝이다’ 이런 마음으로요.”


선수시절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해봤고, 조태근을 직접 발탁한 수라차이 감독에겐 한국 축구 선수들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조태근 역시 바로 그런 면을 가진 선수였다.


“감독님께서도 제가 조금 다치더라도 ‘너 할 수 있지? 내가 한국 선수들 알아. 한국 선수들은 할 수 있어.’ 이렇게 말씀하시고 믿어주셨어요. 외국 용병들 중에는 조금만 다쳐도 안 뛰거나 몸을 사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저는 안 그랬거든요. 결국 계속 그런 모습을 보이다보니 구단주도 저의 그런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게 됐습니다.”


3. 끝없는 불안감과 부상, 그리고 용병들간의 경쟁


그렇게 첫 시즌부터 감독과 구단주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조태근은 그 후로 팀에 한국인 용병 선수를 추천하기도 하는 등 점점 더 구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고, 그가 뛴 차이낫 FC 역시 새로운 스폰서를 맞이하면서 점점 더 좋은 환경에서 구단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모든 ‘용병’들이 그렇듯, 조태근의 태국 선수생활 역시 끝없는 불안감과 경쟁의 연속이었다. 특히 두 번째 시즌에, 자신을 믿어주고 영입했던 수라차이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는 더욱 그랬다.


“항상 불안했어요. 항상 시합을 앞둔 것 같은 긴장이 들었구요. 아 오늘 실수하면 안 되는데, 내가 밀리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물론 태국에 처음 갔을 때는 혼자 지냈으니까 외롭기도 했고 언어도 사람들하고 잘 안 통해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 팀에서 뛰는 용병 선수들도 다 친구지만 그 안에도 경쟁이 있잖아요. 특히 제 경우에는차이낫 FC 이전에 다른 팀에서 그런 비슷한 경쟁체제를 겪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감독이 저를 안 뛰게 할 때는 아 왜 감독이 나를 안 내보내지. 그런 불안함도 있었지만 제 경우에는 그럴수록 더 운동을 열심히 할려고 했고 그런 점을 구단 측에서 좋게 봐줬던 것 같습니다”


“또 부상을 당할 때마다 ‘아 전에도 내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과연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폼을 되찾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특히 두 번째 시즌에 제가 재계약을 하고 나서 1주일 만에 큰 부상을 당했는데 다행히도 구단 측에서 절 이해해주고 기다려줘서 100경기까지 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끝없는 노력, 꾸준함, 필사적인 마음가짐으로 이뤄낸 100경기


최근 치앙마이로 이적하기 전까지, 조태근은 그렇게 3년 여간 뛰면서 결국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그가 100번째 출전했던 경기 이후에는 차이낫의 구단주가 직접 나와 조태근에게 기념품을 전달했고 차이낫 팬들은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들고 나와 조태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에게 자신이 태국에서 100경기를 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끝없는 노력, 꾸준한 활약, 필사적인 마음가짐이 그것이었다.


“혼자 있을 땐 매일 상대팀 경기 비디오를 보고 또 봤어요. 제가 맡아야 되는 선수에 대해서 매일 보면서 이 선수가 이런 상황에 이렇게 하더라 이런걸 다 메모하면서 몇 번을 봤어요. 그렇게 노력하다보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서서히 발전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중요했던 건 용병으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영입하고 믿어줬던 수라차이 감독도 저에 대해서 기복이 없고 꾸준하다는 점을 가장 좋게 봤다고 말했어요.”


“저는 볼을 잘 차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육상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피드는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필사적인 마음가짐이 있었어요. 태국에서 무엇이든 이뤄내겠다. 그렇지 않으면 안 돌아가겠다. 이런 마음이요. 그런 마음이 플레이에 드러나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축구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태근은 자신의 아내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젊은 시절 육상선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조태근이 태국으로 가기 전, 당신의 아들이 국내에서 축구 선수로서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누구보다 든든하게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조태근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뇌경색을 앓고 몸이 불편해졌다.


“한 때는 아버지가 몸도 불편하신데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뒷바라지 해야하는 것 아니냐 이런 주변의 말도 있었어요. 저도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제가 축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제 저희 아버지는 제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즐거워하시고 행복해하십니다. 그걸 당신의 낙이라고 여기시고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축구라는 꿈을 놓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100경기를 돌아보며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힘든시간 오랫동안 저를 지지해주시고 믿어주신 부모님과 누나, 장모님과 장인어른에게도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저를 믿고 타지에서 아이를 키우며, 묵묵히 말없이 뒤에서 고생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만둬야 되나’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러나 축구를 하고 싶었고 제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돌아보면 태국에서 치른 저의 100경기가 자랑스럽습니다."


스포츠서울=이성모 객원기자 london2015@sportsseoul.com


사진=이성모, 차이낫 FC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