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권준영 인턴기자] 대한민국 배우 중 특별한 '미사여구(美辭麗句)' 없이 빛을 발하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송강호는 그중 한 명이다.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 이상 살아온 거목처럼 거친 풍파에도 흔들림이 없는 그에게 '미사여구'는 사치다.


송강호는 조선시대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20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천의 얼굴'이라는 값진 수식어를 쟁취했다.


또한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서 저력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대중은 지난 20여 년 간 그의 연기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믿고 보는 배우', '명품 배우' 등의 타이틀을 부여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로 다시금 대중 앞에 선 것.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택시운전사'는 개봉 첫날인 2일 69만 7858명의 관객을 모으며 신드롬을 예고했다. 이는 1761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에 이름을 올린 영화 '명량'의 개봉 첫날 관객 68만 2701명을 뛰어넘은 수치다.


예매율 1위를 시작으로 박스오피스 1위로 질주하며 흥행 청신호를 켠 '택시운전사'는 제21회 판타지아 영화제 사상 최초로 한국 영화 공식 폐막작 선정 및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등 해외의 뜨거운 관심은 물론 대규모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부터 국내 관객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영화계의 거장인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숱한 영화 감독들도 '택시운전사' 속 캐릭터를 맞춤옷처럼 소화해낸 그에게 극찬을 보냈다.


송강호를 필두로 하는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그려낸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의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택시운전사'는 외지인인 택시운전사의 눈에 비친 5.18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전달하기 위한 영화라기보다는, 평범한 소시민의 작은 용기와 선택에 역점을 둔 영화였기에 대중의 많은 공감을 샀다. 또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보다 담담한 연출을 통해 당시의 비극을 묘사해 더욱 공감을 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품었던 송강호는 군 복무 이후 부산 지역 극단에서 자신의 연기 인생 첫 단추를 뀄다. 1990년부터 극단 연우무대의 지방 공연 '최 선생'에 단역 출연한 것이 연이 닿아 1991년 연우무대에 단원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펼쳤다.


'동승', '비언소' 등 수많은 연극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1993년에는 뮤지컬 '부산 갈매기'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도 데뷔했으나, 당시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1996년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단역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듬해 '초록물고기'에 출연했고, 같은 해 '넘버 3'의 조필 역으로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영화 '쉬리', 2000년에는 '공동경비구역 JSA'에 출연해 각각 582만 명과 583만명을 모으며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잔뼈 굵은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대종상영화제를 포함한 많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송강호의 흥행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영화 '괴물', '변호인'을 통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또한 '설국열차', '관상'은 900만대 관객을 모았나 하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600만명대 관객수를 기록하며 치솟는 주가를 과시하며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로 입지를 굳혀갔다.


[당시 기사 본문 요약]


[ 최종원-권용운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크린 조연 스타가 탄생했다.


화제의 인물은 송강호(30). 수더분한 인상이 도무지 배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하지만 그의 연기력은 탁월하다. 올해 초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 비열한 깡패 판수 역으로 열연을 펼친데 이어 최근 블랙 코믹물 '넘버 3'를 통해 치솟는 주가를 과시.


'넘버 3'에서 그가 맡은 역은 얼치기 3류 킬러 조필. '잠자는 개에게 태양은 비추지 않는다'는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그는 뜨내기 조직 불사파의 두목이기도 하다. 항상 근면을 강조하며 위세를 떨지만 매사에 진지한 모습과 달리 실수만 연발하는 캐릭터. 화가 치밀거나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더듬거리는 대사 연기는 일품이었다는 평.


송강호는 너무 진지한 데서 오는 아이러니가 웃음의 포인트라고 소개. 조필 역을 한 후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겼다는 송강호는 연극 무대에서 6년간 연기 경력을 쌓은 정통 연기파 배우.


오는 9월 개봉 예정인 '나쁜 영화'에서는 서울역 행려자 왕눈이 역을 맡아 실제 행려자들과 40일 동안 동고동락하며 리얼한 연기를 펼칠 만큼 성실한 배우로 소문나있다. ]


송강호의 배우 인생은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았다. 그는 배우로서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왔고, 기복 또한 없었다. 이처럼 송강호가 지금까지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상업적 성과 외에 연기력에서도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연과 단역으로 연기의 첫발을 내디딘 그가 주연의 자리를 꿰차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송강호는 지난 5월 25일 방송된 JTBC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뉴스룸' 출연이 데뷔 이후 첫 방송사 출연 인터뷰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특별한 방송 출연 없이 오직 연기에만 전념하는 천생 배우였기에 그의 출연은 더욱 특별했다.


송강호는 당시 방송에서 '영화의 역할론'을 지난해 연말 있었던 광화문 촛불 집회에 비유하며, "한 편의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단박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영화들이 모이고 모여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세상 또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지 않겠느냐며 소회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눈에 튀는 조각미남은 아니지만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다지며 오로지 연기에만 몰두해와 작품 속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완벽히 녹아든 '송강호'였기에 대중은 그의 이름 석 자에 무게감을 실어준 것이 아닐까. 영화 '택시운전사'와 함께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송강호가 향후 어떤 모습으로 대중의 오감을 만족시킬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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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JTBC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