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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20시간 동안 울었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배우 박민영은 지난 3일 종영한 KBS2 수목극 ‘7일의 왕비’를 통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데뷔 11년차의 베테랑 배우이지만 연기력보다는 단아한 외모로 더 주목받았던 그다. 하지만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를 둘러싼 중종과 연산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로맨스 사극 ‘7일의 왕비’에서 그는 비운의 왕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인 신채경 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드라마 모니터링을 하며 본인 연기를 볼 때 어땠나.

이번엔 내 연기에 눈을 떼지 않고 보게 되더라. 사실 배우들은 이 씬에서 내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다 안다. 이해가 안되는데 의미 없는 대사를 던졌다거나, 설명하는 사람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드는 씬을 찍으면 그 씬은 다시 보기가 싫다. 모니터도 하기 싫어지고.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한 연기는 잠깐씩 보게 된다. 내 씬인데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함께 연기한 연우진, 이동건은 어땠나.

연우진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현대적인데 우진 오빠 본명은 김봉회다. 예명과 본명의 느낌이 다른데 실제로 우진과 봉회의 매력이 공존하더라. 강릉 출신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김봉회와 프로페셔날 배우인 연우진이 함께 있었다.

촬영할 때 연우진은 배려의 끝판왕이다. 씬 들어가기 전에 ‘채경아 어디에 서고 싶어?’부터 묻더라. 내가 원하는대로 먼저 하게 한 뒤 시작하더라. 그런 상대는 처음봤다. 내가 마음이 좋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배려하더라. 우진 오빠와 찍을 때 너무 편했고,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연기하니 애정씬도 더 좋았다.

이동건 오빠가 맡은 ‘융’ 캐릭터를 무섭게 변하기 전부터 봤으면 편했을지 모르는데, 아역 배우를 거쳐 이상해진 상태의 ‘융’이 된 이후부터 동건 오빠를 봤다. 첫 씬을 함께 찍는데 무섭더라. 대사도 거의 막말에 가까웠으니. 서로 몰입된 상태에서 캐릭터로서 만났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겠구나’, ‘나를 좋아하는 구나’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좋은 배우였다.

-연우진과 이동건의 공통점이 있나.

나는 상대 눈을 쳐다보며 연기하는데 둘 다 눈빛이 좋은 배우였다. 캐스팅이 잘된 것 같다. 두 오빠 모두 왕족 같은 분위기가 있다. 매너나 여유로움이 그랬다. 둘 다 캐릭터에 빙의돼 있었다. 연우진은 늘 본인의 대사를 읊으며 걸어다녔다. ‘채경아, 채경아’라고 혼잣말로 나를 부르며 다니더라. 둘 다 ‘역’, ‘융’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연기 호흡이 어땠냐는 질문은 내게 어색하다. 둘 다 연우진, 이동건이 아니라 역, 융으로만 보였다. 대화도, 곧바로 사극에서 쓰여도 위화감 없이 들릴만한 내용만 오갔다. 커피 얘기할 때만 예외였다. 둘 다 커피를 좋아하더라.

-우는 연기가 많았다.

한번에 20시간 동안 운 적이 있다. 하루 온종일 울었다.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드라마 현장의 특서상 한주 분량을 찍어야 하는데 채경은 방에서 우는 씬이 많아서 여러 씬을 한번에 찍었다. 나중엔 눈의 붓기를 뺄 시간도 없이 ‘어차피 울 거니 그냥 가자’는 생각으로 찍기도 했다.

하도 우니 물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을 안가고 싶더라. 땀이나 눈물로 다 빠져나가나 싶었다. 항상 옷이 젖었다. 울 때는 안 힘든데, 체력적으로 힘든 것 보다 메이크럽 수정을 하는게 귀찮았다. 피부가 약하니 아프기도 했는데, 여행용 티슈 세통을 하루에 써야 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던 게, 울어야 겠다고 마음 먹고 우는게 아니라 저절로 눈물이 나는 거라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다.

울다가 느낀 건데 우리나라 습도가 높더라. 땀이 많이 나니 탈수증세가 나기도 했다. 반면 얼굴은 좋아졌다. 피곤하면 부을 수 있는데 탈수가 오니 마지막회에서 부쩍 얼굴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었다.(웃음)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인가.

감독님이 쫑파티 때 그러더라. ‘찍으면서 이제 한계일 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길래 신기했다’고. 내가 ‘감독님이 그렇게 만드셨잖아요’라고 했다. 몰입이 그만큼 됐으니 나온 것이다. 평소엔 눈물이 없다.

나는 눈물 연기를 할 때 다른 생각을 하거나 슬픈 노래를 듣지 않는다. 그러면 잡생각이 많아져서 감정이 깨진다. 오직 그 씬에만 몰입해서 이 대사를 해야 한다. 캐릭터에 몰입이 안되면 눈물은 한 방울도 안나온다.

내 눈물 연기의 장점은 그때 그때 맞는 눈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단점은 중간에 씬을 잘라서, 따로 떼서 가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눈물 연기 중 앵글을 바꿀 때마다 씬의 처음부터 반복해서 떠올리며 감정을 잡았다. 그래야 똑같은 리액션이 나온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눈물 연기에는 자신감이 생겼겠다.

캐릭터에 따라, 작품에 따라 다를 거 같다. 채경은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울었다. 이제 캔디하나 뺏는다고 우는 건 못할 수도 있다. 난 와닿아야 연기할 수 있다. 버튼만 누르면 눈물이 나오는 연기자는 안 되는 거 같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문화창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