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2002)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2002년 7월7일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 손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 | 강영조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둘러싸고 시끌벅적한 주말이 지나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에서 기자들을 불러 자신에 대한 논란을 직접 설명했고, 이어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히딩크 측의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이런 격동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신태용’이란 사실의 정당성과 명예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히딩크 감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우선이 되면 안 된다. 대한축구협회가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 도전하는 신 감독을 어떻게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신뢰할 것인가가 먼저다.

사건을 정리해보자. ①6월19일 히딩크 관계자가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에게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관심있다’고 전했다. ‘최종예선 9~10차전 임시 감독 선임, 본선 확정 뒤 히딩크 감독 공식 부임’이란 구체적인 절차까지 꺼냈다. ②김 부회장이 6월26일 감독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기술위원장에 취임했고, 이를 전후로 히딩크 측이 다시 만날 것을 요청했다. ③김 위원장은 7월4일 기술위 회의를 통해 신 감독을 선임했다. 최종예선 9차전부터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할 경우)까지 계약하는 방식이었다. ④이달 6일 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한 뒤 한 언론이 히딩크의 대표팀 감독 관심 의사를 ‘히딩크 측’ 전언으로 공개했다. ⑤김 위원장은 7일 “히딩크 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⑥히딩크 감독이 14일 오후 6시 네덜란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감독보다는)대표팀에 조언하는(advising) 역할에 가깝다”고 했다. 그가 지난 여름 한국 대표팀에 대한 관심 표명을 대리인을 통해 한 것은 맞다고 했다. ⑦4시간 뒤인 14일 오후 10시 스포츠서울이 “기술위원장 부임 전(6월19일) 히딩크 대리인의 SNS(카카오톡) 연락을 받았으나 당시는 결정권자가 아니었고, SNS란 방식 및 ‘임시 감독 선임+히딩크 부임’이란 절차도 부적절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도했다. ⑧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 돕겠다”는 히딩크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며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히딩크 대리인과의 접촉 여부에 관한 김 위원장의 말 바꾸기는 아쉽고 안타깝다. 좀 더 신중하게 대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런 ‘진실 공방’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은 기술위원장과 기술위의 독립된 권한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의를 열고 표결까지 거치며 흠결 없이 신 감독을 선임했다. 한국 대표팀 부임 의사를 나타낸 많은 지도자들과 그들의 대리인 가운데 알맞은 후보를 가려 회의에 올리는 것 역시 기술위의 고유한 권한이다. 극단적으로 내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러브콜’을 무시하는 것조차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위원장과 기술위가 책임만 확실히 지면 된다.

대표팀 감독이 공석일 때마다 해외 유명 감독의 관심 타진이나 에이전트의 이른바 ‘언론 플레이’가 진행됐다. 2005년 보비 롭슨, 2013년 세뇰 귀네슈처럼 언론을 통해 한국 대표팀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사례도 있다. 둘의 공통점은 감독직이 공석일 때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TV 혹은 신문 앞에 나섰다는 것이다.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은 몇 년 전 이번 히딩크 감독처럼 대리인을 통해 비공개 접촉을 시도했으나 무산된 뒤 조용히 사라졌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지휘봉을 간절히 원했다면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이 사임하고, 김 위원장이 새 감독을 선임하기까지 20일 안팎의 시간에 얼마든지 공개적으로, 적극적으로 의사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히딩크 측은 SNS를 통해 일방적으로 몇 차례 의사 전달을 하고는 더 이상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질 않았다. 더구나 9~10차전을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라는 등 ‘월권’에 가까운 행태는 히딩크 감독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신 감독이 버젓이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히딩크 측이 돌연 감독직에 공개적인 관심을 보인 모양새도 좋지 않다. 히딩크 스스로는 ‘조언자’로 한정하고 있으나, “현재까진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이는 등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를 뒀다. 이런 행태는 상식에 어긋난다.

사건을 냉철하게 보고 있는 대다수 언론도 ‘신태용 전폭 지지’의 큰 힘이다. 축구협회의 집단 비리, 대표팀의 연속된 부진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는 언론도 이번 만큼은 신태용 체제의 지속 및 히딩크의 부임 반대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원칙이나 절차, 전·후 상황을 봤을 때 그게 옳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김 위원장의 말 바꾸기 등을 이유로 판을 바꾸려 시도했으나 미풍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국민 여론’의 실체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물론 온라인에서 히딩크 관련 기사마다 적게는 수백개에서 많게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글이 올라가는 상황을 마냥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전화선 넘어 오프라인에선 그야말로 어떤 움직임도 없다. 대표팀을 20여년 넘게 지지한 ‘붉은 악마’의 이동엽 의장은 1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 두 경기(이란전, 우즈베키스탄전) 가지고 신태용 감독의 색깔이나 이런 것을 논하기는 힘들 것 같다. 신 감독이 기존에 진행했던 U-20 대표팀이나 혹은 성남 시절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시켰던 그 경기들을 보면 분명히 공격적인 색깔이 있었다”고 했다. 신 감독에 대한 지지로 봐도 좋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얄팍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히딩크 측과 적당히 타협해선 안 된다. 이는 그야말로 야합이다. 신 감독을 중심에 놓고, 그를 도울 수 있는 방안에 히딩크 감독이 있다면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기술고문이든 뭐든 히딩크 감독이 ‘신태용호’에 도움이 될 경우 활용하면 된다. 히딩크 감독이 러시아 사정에 밝고 유럽의 네트워크도 좋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힘든 싸움을 펼칠 우리 대표팀에 그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투를 줄 경우의 부작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영입된 아나톨리 비쇼베츠(서울 올림픽 소련대표팀 감독) 기술고문은 당시 김호 감독과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릴 정도의 언행을 펼쳤다. 히딩크 감독이 국내 정치적인 사안과 연관됐다는 설도 부담스럽다. 그의 활용에 마이너스 요인이 더 많다고 판단되면 ‘무보수’라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가 더 어려워졌다. 좌고우면할 상황이 아니다. 어느 쪽이 맞는 길인지 판단한 뒤 우직하게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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