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이청용
이청용(왼쪽)이 지난 2014년 5월28일 열린 한국-튀니지 평가전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히딩크 논란’에 빠진 한국 축구 대표팀이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뒤 첫 평가전 시리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 괜찮은 상대를 골랐지만 얼마나 실속있는 평가전이 될 지 불투명해졌다. 한국처럼 월드컵 본선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팀엔 제대로 된 평가전이 좋은 성적의 첫 단추다. 그러나 두 경기 모두 성사 직후부터 이런 저런 뒷말과 뒤숭숭한 분위기에 둘러싸였다. 한국 역시 해외파 위주의 선수들을 데리고 두 경기를 벌일 예정이라 반쪽 짜리 평가전이 불가피하다.

‘신태용호’는 내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내년 본선 개최국 러시아와 A매치를 치른 뒤 10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유럽의 한 곳을 정해 3년 만의 리턴매치를 한다. 그런데 튀니지 대표팀 사령탑은 한국전을 원하지 않는 눈치다.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과 붙는 게 이로울 게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지 언론 ‘뉘메리크’에 따르면 나빌 말룰 튀니지 감독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7일 기니와 러시아 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 A조 5차전 원정 경기를 한다. 그리고 불과 사흘 뒤 유럽에서 한국과 친선 경기를 하기로 돼 있다”며 “난 튀니지축구협회장에게 한국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튀니지의 월드컵 진출이다.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선수들이 한국전에 집중하기도 힘들다”며 대놓고 불만을 터트렸다. 상대 팀이 한국이라는 점보다는 기니와 격전을 치른 뒤 몇 시간을 이동해 곧바로 다른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선수단 동기부여나 부상 우려 등으로 인해 불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일단 대한축구협회는 튀니지 언론의 관측과 달리 평가전 취소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말룰 감독과 튀니지축구협회 사이의 내부 갈등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다. 당초 이 경기는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리기로 확정됐으나 칸이 테러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스위스 등 인근 국가로 장소가 변경될 예정이다. 양국 축구협회가 합의한 대결이기 때문에 말룰 감독이 반대해도 대세엔 큰 지장이 없다. 다만 말룰 감독이 발언의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전을 반대했기 때문에 얼마나 성의 있게 A매치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튀니지는 아프리카 최종예선 A조 1위를 달리고 있어 남은 예선 두 경기에서 1승만 챙겨도 12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이 이뤄진다. 그러나 11월에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는 게 문제다. 그런 판국에 한국과 무리하게 격돌하긴 어렵다는 게 말룰 감독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7일 러시아전은 이미 논란에 빠져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날 경기장 VIP석에서 직접 관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축구협회와 교섭해 이 경기가 성사됐다”고 밝히고 있으나 히딩크 감독이 가교 역할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 대표팀 사령탑 부임과 관련해 논란을 일으켰던 히딩크 감독이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본다는 점은 신태용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자칫 이날 화제가 태극전사들의 플레이가 아닌 히딩크 감독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릴 가능성도 높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 월드컵 본선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평가전을 치른다는 점도 달갑지 않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엔 월드컵 본선 경기장이 두 곳이나 있고 이 중 4만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트크리티예 경기장은 지난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치르는 등 공사가 이미 끝난 상태다. 한국-러시아는 월드컵과 상관 없는 3만 규모의 VEB 아레나에서 벌어진다. 대한축구협회는 “모스크바 개최를 원했는데 장소 결정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축구협회가 VEB 아레나를 결정했다”며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선에 진출한 이란이 다음달 10일 러시아의 다른 도시 카잔의 월드컵 경기장인 카잔 아레나에서 경기하는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까지 가서 월드컵 리허설을 한다는 취지와는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평가전에 나설 ‘신태용호’도 정예가 아니다. 지난 달 31일 이란전,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전 등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10차전을 위해 조기소집을 단행하면서 A매치 기간인 다음달 8일을 K리그에 양보했기 때문이다. 이란 및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동국, 염기훈, 김민우, 김민재 등 K리거들이 유럽 원정에 빠진다. 엔트리 전원이 해외파로만 구성된다. 약속은 약속이니 K리거 제외 방침은 지켜져야 하겠지만 내년 5월 최종엔트리 소집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데이가 총 6차례에 불과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신태용호’에 대한 완벽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파열음이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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