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지난 1982년부터 36년째 국민과 희노애락을 나눈 프로야구 KBO리그는 팀과 선수, 그리고 팬이 함께 만든 역사의 산실이다. 프로야구는 단순히 구기 종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년 전 오늘도 야구장의 조명은 밤하늘을 빛냈다. 그날에는 어떤 에피소드가 야구팬을 울고 웃게 만들었을까. 20년 전 오늘 스포츠서울 기사를 통해 당시를 돌이켜 본다. 이것이 프로야구 태동기를 직접 목격한 기성세대와 현재 부흥기의 주역이 된 신세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기 바란다.


<1997년 11월 3일 스포츠서울 1면>


과연 SUN 파워 - 2년 만에 잠실S


'한·일 골든시리즈 2차전'


나고야의 태양이 2년 만에 잠실벌에 떴다.


일본 열도를 평정했던 주니치 드래건스의 선동열이 2일 잠실 구장에서 벌어진 서울신문사와 주니치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97 한일프로야구 골든시리즈 2차전에서 일본팬과 고국팬의 열광적인 성원 속에 일본연합팀을 위한 세이브를 기록했다.


일본연합팀(주니치+오릭스)이 4-3으로 앞선 9회 소방수로 등판한 선동열은 한국연합팀(해태+삼성+쌍방울)의 5타자를 상대하며 이승엽과 이호성에게 우중간 안타와 볼넷을 허용했지만, 실점 없이 마무리했다. 날씨가 쌀쌀하고 몸이 덜 풀린 탓에 최고 스피드는 147km에 불과(?)했지만 위압적인 모습만은 역시 선동열다웠다.


하이라이트는 해태 시절 사랑하던 후배인 이종범과 대결. 승부도 공 한 개로 판가름 났다. 143km가 기록된 직구를 스트라이크존 안쪽으로 던지자 이종범도 승부에서만은 질 수가 없다는 듯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그러나 중견수 앞으로 날아가는 플라이.


이어 대타 장성호는 공 4개로 삼진. 97시즌 MVP인 삼성 이승엽에게는 우중간 안타, 이호성에겐 포볼. 2사 1, 2루 위기에 몰렸으나 선동열은 삼성 양준혁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 4-3으로 경기를 끝냈다. 총 22구 중 직구 18, 슬라이더 3, 체인지업 1개를 던졌다.


선동열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 마운드에 오른 것은 95년 8월 20일 LG전이 마지막. 이후 9월 26일 광주 롯데전에 등판한 뒤 95년 말 일본으로 떠났다.


경기는 역시 LG+현대 연합팀이 맞섰던 전날처럼 시종 팽팽했다. 1-0으로 뒤지던 한국은 3회 말 심성보-이승엽의 연속 우전 안타에 이은 이호성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최훈재의 좌전 적시타로 경기를 2-1로 뒤집었다.


4회 초 2사 1, 2루에서 오릭스의 사다케에게 2타점 우중월 2루타를 맞아 4-2 역전을 허용한 한국은 8회 최해식의 중전 적시타로 4-3까지 추격,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경기를 끌어갔다.


이로써 97 골든시리즈는 한국연합팀이 2패를 한 가운데 폐막했다.


3타수 2안타 2타점을 마크한 오릭스의 사다케는 2차전 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3.2이닝을 4안타 1실점으로 막은 오릭스의 가네다와 4타수 3안타를 마크한 삼성 이승엽이 우수 선수로 뽑혔다.


최민지 인턴기자 julym@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