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한반도에 ‘강철비’가 내린다면? 핵전쟁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무엇일까.”

지난 11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강철비’(양우석 감독)는 이같은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스스로 답을 내린 영화다.

제목 ‘강철비’는 영어로 스틸레인(steel rain). 실제로 존재하는 클러스터형(形) 로켓 탄두의 별칭이다.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미국의 다연장 로켓포에서 발사하는 로켓포탄의 한 종류로서 접속탄이 폭발하면서 수만발의 강철탄환이 뿌려져 강철비로 비유되는 것. 영화 ‘강철비’도 개성공단 하늘에 강철비가 내리면서 순식간에 한반도가 핵전쟁 위기에 빠지는 절체절명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연히 북한 권력 1호의 목숨을 구하게 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 분)가 북한 쿠데타 세력의 위협을 피해 남한까지 숨어들어오게 된 것부터, 응급처치를 위해 찾아간 병원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 분)의 전 아내(김지호 분)가 운영하는 병원이어서 낌새를 챈 곽철우가 엄철우를 만나고 함께 이번 위기를 타계하는 콤비가 되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 영화적이다.

강철비

그러나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언제든 핵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에 사는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또, 임기말 대통령(김의성 분)과 취임을 앞둔 대통령 당선인(이경영 분)이 전쟁 위기 앞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제시하는 모습 역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들이다. 영화 ‘변호인’으로 큰 감동을 주며 천만관객을 모은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를 통해 또 한 번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관객들에게 사회적 담론을 제공한 것이다.

강철비

그러나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핵을 비롯해 조국과 동포 등 이데올로기적인 키워드만이 아니라 ‘강철비’는 두 철우의 브로맨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그리며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한다.

엄철우와 곽철우, 두 철우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1호를 모시는 입장에서 전쟁을 막는데 공조한다. 하지만 몇 번의 위기를 함께 하며 끈끈해진 두 사람은 한자는 달라도 한글은 같은 철우라는 이름부터 양육해야하는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이 땅 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큼은 막아야한다는 묘한 공통점들로 마음이 맞닿으며 관객들의 마음도 움직인다.

강철비

또한, 주연배우 정우성이 북한 최정예요원으로서 화려한 액션을 펼치는 모습도 영화의 재미지만, 그가 그린 엄철우의 인간적인 매력이 액션연기 이상으로 인상적이어서 관전포인트로 삼을 만하다. 딸이 행여나 해꼬지 당할까 단속을 하면서도 딸이 좋아하는 남한 가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등 부성애를 보여주고,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라 남한에 같이 오게 된 개성공단 여종업원들을 비롯해 다른 동포들까지 생각하는 엄철우의 모습은 사명감이 아니라 따뜻한 인류애를 보여준다. 그런 엄철우는 실제 정우성의 인간미와 겹쳐지며 캐릭터의 설득력을 더했다.

강철비

정우성뿐 아니라 곽도원의 호연도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전작들에서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나쁜’ 역을 너무 잘 소화해온 곽도원은 이번 만큼은 확실한 선한 주인공 캐릭터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호감도를 더욱 높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곽철우가 엄철우에게 던지는 아재개그와 “다시 만나면 같이 반포동 살자”고 하는 등의 말로는 영화를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고 싶은 현실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이밖에도 극 안에서도 열일 하는 조우진, 적재적소에서 제몫을 톡톡히 한 박선영, 박은혜, 김지호 등 출연진 모두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만 북한 사투리부터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까지 다양한 언어와 자막들이 숨가쁜 이야기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점은 139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과 함께 관객들에게 적잖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영화의 또 다른 교훈은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 둘러싸여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영어든 중국어든 외국어에 능통해야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는 14일 개봉.

cho@sportsseoul.com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