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화
현정화(오른쪽) 렛츠런 감독과 리분희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이 지난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시절 다정하게 앉아 스포츠서울 카메라를 앞에서 포즈를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이번엔 만날 수 있을 것인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주역으로 활약한 현정화(49) 렛츠런 감독과 리분희(50)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이 27년 만에 국내에서 재회할 가능성이 커졌다. 리 서기장이 오는 3월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열리는 2018 평창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장 자격으로 방문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북한은 17일 평창 실무 회담에서 평창 패럴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북한이 이번 패럴림픽에 노르딕스키를 포함해 선수단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기간 장애인체육협회 실무를 책임진 리 서기장이 선수단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 감독과 리 서기장은 27년 전 지바 세계선수권 당시 여자 단체전에 나서 9연패를 노리던 세계 최강 중국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내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남북 선수가 한 달이 넘는 단일팀 훈련과정에서 이질적인 문화로 티격태격하다가 든든한 동료가 돼 세계 정상에 올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 스토리는 국내에서 영화(코리아)로 제작될만큼 커다란 여운을 남겼다. 리 서기장은 5년 전 AP통신 평양지국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현)정화와 50일 동안 24시간 내내 늘 붙어 다녔다. 함께 훈련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매 끼니 같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서먹하던 둘의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된 건 리 서기장의 간염이 악화되면서였다. 현 감독은 남북 라이벌 의식을 버리고 ‘언니’인 리 서기장의 회복을 도우면서 마음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하나된 목표로 똘똘 뭉친 이들은 결국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함께 올랐다. 현 감독은 대회를 마친 뒤 기약 없는 이별을 할 때 “전화번호를 달라는 등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이별이었다”며 안타까웠던 심정을 종종 밝혔다.

둘의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조명받았으나 좀처럼 재회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 감독은 선수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탁구계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은 리분희는 아들이 뇌성마비 장애를 겪으면서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두게 됐다. 장애인 탁구팀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을 겸했다. 국내로 따지면 전무이사격이다. 자연스럽게 둘 다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하면서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2012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리 서기장이 선수단을 이끌고 전지훈련을 왔을 때 현 감독은 재회를 위해 통일부에 북한 주민 접촉 신고를 했다. 그러나 승인을 얻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코리아’ 개봉에 맞춰 재회가 다시 추진됐으나 정부의 반대에 막혔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엔 여자대표팀 총감독을 맡은 현 감독이 대회 직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한 달 뒤 패럴림픽에 참가한 리 서기장과 만날 수 없었다. 3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시절엔 불운이 겹쳤다. 23년 만에 두 사람의 재회가 유력해보였는데 현 감독이 음주 사태로, 리 서기장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면서 나란히 대회 참가가 무산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엇갈린 둘의 만남이 평창에서는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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