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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윤성빈 스승 김영태(오른쪽) 관악고 체육교사 겸 서울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가 아들인 남자 컬링대표팀 트레이너 김태성 씨와 지난 15일 경포해변 중앙과장 오륜기 앞에서 포즈를 하고 있다. 강릉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강릉=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아버지가 윤성빈의 스승이라는 것만으로도 뿌듯하죠.(김태성)”

“성빈이만으로도 흐뭇한데 아들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니 얼마나 기뻐요.(김영태)”

부자(父子)가 마주 보고 미소지었다. 때론 눈시울을 붉히며 서로를 독려했다. 한국 스켈레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윤성빈의 스승으로 유명해진 김영태(59) 관악고 체육 교사 겸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는 지난 15~16일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를 찾았다. 이틀간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경기를 관전했다. 윤성빈이 스켈레톤 입문 6년 만에 금빛 레이스를 펼치자 김 교사도 크게 감격했다. 그는 지난 2012년 신림고 체육 교사 겸 농구 감독 시절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던 윤성빈의 운동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체육 입시반에 데려와 키웠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대표 선발전을 열었을 때 윤성빈을 당일 긴급 호출해 스켈레톤에 입문하게 했다. 그는 지금도 윤성빈의 정신적 지주다. 윤성빈은 금메달을 확정한 16일 메달 세리머니를 하러 가기 전 김 교사와 만나 뜨겁게 포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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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오른쪽)이 지난 16일 메달 세리머니 전 스승 김영태 교사와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 교사는 윤성빈을 만난 뒤 곧바로 강릉컬링센터로 향했다. 윤성빈이 ‘아들 같은 제자’라면 거기엔 ‘진짜 아들’이 있었다. 남자 컬링국가대표팀 김태성(30) 트레이너다. 남자 컬링팀이 여자 팀보다 첫 승리를 거두는데 애를 먹으면서 김 트레이너 역시 마음고생이 컸다.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찾았는데 마침 다음 날 영국전에서 고대하던 첫 승(11-5)을 거둬 김 교사가 승리의 파랑새 구실을 톡톡히 했다.

스포츠서울은 김 교사와 그의 아내 최현미(57) 씨가 김 트레이너와 현장에서 처음 만난 지난 15일 경포해변 중앙광장을 찾아 30여 분 인터뷰했다. 김 트레이너는 “설을 앞두고 있는데다 모처럼 아버지랑 어머니 얼굴을 뵙는 것이어서 저녁이라도 함께하고 싶은데 대표팀 일원이기에 시간이 여의치 않다. 잠깐 인사만 드리려고 왔다”고 했다. 엘리트 농구선수 출신 김 교사는 누구보다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는 “시간 되면 알아서 들어가라”며 싱긋 웃었다. 부자는 경포해변에 있는 올림픽 오륜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

“아들이 컬링 대표팀 스태프로 올림픽에 참가할지 누가 알았겠나.” 김 교사는 누구보다 운동의 어려움을 알기에 외아들이 전문 선수의 길을 걷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김 트레이너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과 관련한 전문 직업을 갖고 싶었다. 고려대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사회체육학과에 여러 전공이 있는데 스포츠의학을 선택했다. 학창시절 운동하다가 무릎과 발목을 다쳐서 수술한 적이 있는데 재활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운동을 한 아버지 밑에서 여러 관계자를 만난 김 트레이너는 대학 졸업 이후 병원에 취업해 전공을 살려 재활 환자를 다뤘다. 그러다가 전문적인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대학원에 도전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게 태권도다. 그는 “태권도 유소년 팀 닥터 제안을 받았는데 2015년 주니어태권도선수권을 비롯해 월드챔피언십 등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베트남 아시아선수권에 다녀온 뒤 지도 교수께서 (올림픽에 나가는) 컬링팀을 연결해주셨다”고 밝혔다. 아무리 여러 운동을 경험했어도 컬링은 그에게 생소한 종목이다. 더구나 한국과 중국의 프로축구팀에서도 제안이 온 상태였다. 망설였다. 그는 “고민을 하다가 올림픽 개회식인 2월 9일이 내 서른 번째 생일이라는 점을 알게 된 뒤에 ‘뭔가 인연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과 노하우를 살려서 컬링 대표팀을 위해 일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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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는 “당연히 많이 접해본 적이 없는 종목이어서 알아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선수들의 생생한 경험을 조언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 종목은 지면 반발력과 충격량이 적어서 발목, 무릎 부상이 적은 편이지만 딜리버리, 스위핑 자세 등 종목 특성상 근육 밸런스가 한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데 신경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종목 중 공을 던진 이후에도 구성원이 함께 결과를 만들어가는 건 컬링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개인에게 맞는 훈련은 물론 함께 하는 코어, 밸런스, 기능적인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컬링은 가족 스포츠다. 남녀·믹스더블 대표팀 내엔 실제 가족 또는 동창 등 인연을 맺은 일원이 많다. 김 트레이너는 이 얘기에 눈물을 보였다. 그는 “처음엔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나를 팀원으로 받아주고 가족처럼 느껴준 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 교사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소한 종목에 투입된 아들을 걱정했다”고 말한 그는 “외인이라는 느낌을 받을까봐 마음이 그랬는데 진심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가고 노력한 게 대견하다”고 했다. 김 트레이너에게 ‘아버지가 윤성빈의 스승으로만 비치는 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전혀 그렇지 않고 뿌듯하다. 윤성빈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 아버지”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더 전문적인 트레이너로 성장해서 컬링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계에 이바지하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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