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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릭 최초 30-30 클럽을 달성한 박재홍이 꽃다발을 들고 팬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최민지기자] 1982년 출범한 KBO리그에서 수많은 신인왕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중 같은 해 홈런왕과 신인왕을 모두 차지한 타자는 오직 한 명 뿐이다. 바로 1996년 데뷔해 KBO리그를 뒤집어놨던 ‘리틀 쿠바’ 박재홍(45)이다. 화려했던 데뷔전을 시작으로 17년간 무던히도 치고 달렸다. 유니폼을 벗고 그라운드도 떠난 지도 이제 5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박재홍의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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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사상 야수 최고 대우인 계약금 4억3000만 원을 받고 현대 유니폼을 입은 박재홍. 스포츠서울 DB

◇ 강렬한 첫 경험과 92학번의 자부심

박재홍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현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미 거포 본능을 뽐냈던 그는 프로 첫 시즌부터 남다른 기량을 자랑했다. 126경기에 출전해 30홈런 108타점 타율 0.295를 기록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빠른 발로 36도루까지 기록해 KBO리그 첫 ‘30-30 클럽’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초의 30-30을 달성했던 1996년 9월3일 LG전은 박재홍에게도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첫 30-30 했을 때 경기다. 당시 LG 김용수 선배를 상대로 홈런을 쳤을 때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도 있고 여러가지 좋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아있다.”

데뷔 첫해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을까. 박재홍은 ‘운’이라는 예상외의 답변을 내놨다. 그는 “자신감은 많이 있었는데 운도 따라준 것 같다. 실력일 수도 있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126경기 하는 동안 부상을 안 당하고 시즌을 치른 건 운이지 않느냐. 건강하게 시즌을 보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행운”이라고 말했다.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아직까지 데뷔 첫해 30-30을 달성한 선수는 박재홍뿐이다. 그러나 ‘유일’한 기록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박재홍은 “최초로 했으니 그 앞에 따라다니는 단어는 계속 따라다니겠지만 좋은 신인이 나타나면 언젠가는 깨지지 않겠느냐”라며 후배들의 선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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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야구 대표팀 박찬호(왼쪽)와 박재홍. 스포츠서울DB

박재홍은 ‘괴물 신인’이란 수식어와 함께 ‘92학번 황금세대’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그를 비롯해 1992년에 대학에 입학한 92학번 중 유독 좋은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찬호, 임선동, 정민철, 염종석, 故 조성민 등이 대표적이다. 1993년 제17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 은메달, 1998년 방콬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92학번 동기들과 함께한 좋은 기억이 많다.

지금은 다들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황금세대’ 자부심은 여전하다. 박재홍은 “몇몇은 코칭 스태프로 활약하기도 하고 다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나름 역사의 한 페이지라 할 수 있을 활약을 펼쳤고, 계속 회자되는 것에 대한 92학번 자부심이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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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가로 활동 중인 박재홍. 2016.03.29.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은퇴, 그리고 ‘뜻밖의’ 새로운 삶

화려했던 선수시절을 뒤로하고 박재홍은 2013년 은퇴했다.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40세까지 야구를 했다. 조금 더 할 자신도 있었고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도 했고 여러 가지로 여건이 많이 안 좋았다”라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그때 은퇴한 건 잘한 것 같다. 아쉬움은 항상 있지만 아쉬울 때 나오는 것도 잘한 일이다”라며 후회는 없음을 밝혔다.

은퇴 후 박재홍은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해설은 당초 박재홍의 계획에는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는 “해설은 아예 생각이 없었다. 지금이야 은퇴한 선수들이 해설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은퇴할 때만 해도 그런 선수들이 많이 없었다”라며 “들어오는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근데 계속 찾아오니 어쩔 수가 없더라. 결국 하게 됐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뜻밖에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해설 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박재홍은 “10개 구단 체제가 되고 방송이라는 매체가 선수나 팬 등 여러 층에 어필하게 되는 것 같다. 현역 선수 중 은퇴 후 해설을 하고싶어 하는 선수도 많다. 이렇게 보면 나는 또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웃었다. 선수 생활을 경험해 봤기에 선수들이 싫어하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최대한 조심히, 선수들 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방송을 만들어 나간다는 박재홍이다.

해설을 통해 방송계에 입문한 박재홍은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도 출연해 화제가 됐다. 예능 역시 계획에 없던 뜻밖의 일이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다. 그는 “재밌다. 처음 본 낯선 사람들과 여행가서 1박2일을 보내고 대화를 나눈다. 출연자분들이 다들 각 분야에서 성공하셨던 분들이다. 살아온 인생에서 묻어나오는 연륜의 배움이 있다”고 긍정적인 요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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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 박재홍. SBS 제공

◇ 배움과 함께 차근히 나아간다

다시 ‘불타는 청춘’을 즐기고 있지만, 박재홍의 ‘20대 청춘’엔 야구 밖에 없었다. 야구만 하다 보니 활동 반경은 집, 야구장뿐이었고 그만큼 시야도 좁아졌다. 그래서 은퇴 후 해설, 예능 등 다양한 방송활동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그는 “삶의 지혜는 경험을 통해 체득해 나가는 것이다. 나 역시 체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옷 벗고 나왔는데 배우는 게 훨씬 더 많다. 은퇴하고 방송을 하면서 다른 쪽에서 바라보니 시야도 넓어진다”고 의미를 더했다.

후배들은 좀 더 빨리 체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박재홍은 “야구선수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지 말고 ‘프로야구’ 선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단순한 야구 스킬 외에 흔히 말하는 인터뷰 요령, 팬 서비스, 그라운드에서 퍼포먼스 등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야구만 잘하는 기계보다는 뭔가 재 있고 스토리도 있으며 인간미도 있는 그런 프로야구 선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나 또한 그런 것들이 부족했다. 이젠 그런 것들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덧 불혹을 넘어선 박재홍의 배움에는 끝이 없다. 현장 복귀를 서두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복귀가 중요한 게 하니라 복귀했을 때 얼마 만큼 준비가 돼 있느냐가 중요하다. 복귀하고 싶어서 무리수를 두거나 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솔직한 생각을 드러냈다. 야구가 실수를 줄여야 하듯 인생도 배움을 통해 실수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그의 소신대로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과 함께 차근히 전진할 박재홍이다.

julym@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