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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개업했다. 국밥류와 안주로 좋은 찜이 많아 점심저녁으로 와글거린다.
[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황철훈기자] “노포만 찾아다니는 난 屋동자에요”.옥(屋)은 우리나라에 근대상업이 도입된 초창기 상점을 말한다. 특히 식당, 그것도 주인이 사는 방이 함께 붙어있는 작은 가게를 의미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대형 상점에는 관(館) 자를 붙였다. ‘옥’자를 사용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식당 이름에는 야(や.屋)를 즐겨 쓴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규동집 요시노야(吉野屋), 마츠야(松屋) 등이 이에 해당한다.이제 대한민국도 근대상업 역사가 한 세기를 넘었다. 노포(老鋪)의 시대가 도래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찾던 집을 아들과 딸이, 또 손자를 데리고 가서 밥을 먹는다. 입맛이 유연하게 상속되고 있다. 식당이 오래갈 수 있었던 것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돼 폭발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노포의 장사법(박찬일 글.노중훈 사진. 인플루엔셜 펴냄)’에는 창업한지 오십년을 넘긴 국내 노포 26곳이 등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포 중에도 ‘옥자 돌림’이 많다. 아직 남아있는 집 기준으로 1920년 안성 안일옥(설렁탕)이 생겼고, 1931년 강경 황산옥(복집)이 개업했다. 이듬해에는 서울 용금옥(추어탕)이 생기고, 잼배옥(1933년), 청진옥(1937년), 옥천옥(1941년) 등이 줄줄이 문을 열었다. 이쯤되면 ‘노포의 인증’, ‘맛의 증표’로 통용되는 글자다. ‘핵ZONE맛’은 우리 ‘옥(屋)’들을 찾아봤다.●서울 다동 부민옥=

1956년 개업해서 환갑을 훌쩍 넘긴 서울 다동(무교동)의 대표적 노포다. 메뉴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철저한 서울식이다. 육개장도 그렇고 양곰탕도 그렇다. 최근 재개발에 따라 인근으로 가게를 옮겼지만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다.손님들도 역시 따라 옮겼기 때문이다. 노포의 분위기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손님이 좌우한다. 단골손님의 경우 한 사오십년씩 이상 이집 밥을 들고 안주를 집었다. 오십대 중반 김승철 사장(2대)보다 이집을 다닌 지 더 오래됐다는 이도 있다.

점심엔 주로 선지국과 양곰탕, 육개장을 먹고, 여기다 당연히 소주 한 병씩 곁들인다. 오후부터는 술꾼들이 몰린다. 곱창전골, 부산찜, 양무침 등 안줏거리가 푸짐하고 맛있다. 고기 중심이지만 부산찜은 해물이라 여러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입안에 소주를 털어넣고 야들야들한 양무침을 집어 우물우물 씹어 잘 섞으면 아무리 퍼마셔도 그리도 든든할 수 없다. 평소보다 얼큰하게 취한 다음날이면 다시 해장삼아 이집을 찾아와 시원한 선지국 뚝배기를 벌컥 들이켜고 있다. 술 한잔에 딱 어울리는 안줏거리와 시원한 해장국을 같이 파는 것은 분명히 ‘상도의 상 반칙’이 아닐 수 없다.

★가격=사골우거지 6000원, 양곰탕 1만원, 육개장 9000원, 선지국 8000원, 도가니 수육 3만원, 양무침 2만8000원, 부산찜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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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 전경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주교동 ‘우래옥’=

우래옥은 서울 최고 평양냉면집 중 하나로 서울 방산시장에서 70년을 지켜온 노포다. 평양의 이름난 냉면집 ‘명월관’ 출신이 월남해 1946년 개업한 이래 3대 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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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 평양냉면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한우 양지와 사태살을 고아 낸 깔끔하고 진한 육수에 메밀향 가득한 면발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함께 곁들여내는 밑반찬을 비롯해 마늘, 고춧가루 등 모든 식재료를 국내산만 고집한다. 이 집은 냉면뿐만 아니라 불고기와 등심, 갈비 등 고깃집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맛의 비결은 바로 엄선된 최상급 한우다. 대신 가격은 특급호텔 뺨친다. 인기메뉴 불고기 1인분(150g)이 3만3000원. 주문은 2인 이상만 받는다.

이 밖에도 시골장터의 인심이 느껴지는 담백한 장국밥과 보기만 해도 푸짐함이 느껴지는 갈비탕, 결대로 찢어지는 부드러운 양짓살과 대파 등을 가득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육개장까지 모든 음식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있다. 한번 맛보면 우래옥(又來屋) 이름처럼 또다시 찾게 되는 집이다. 단, 유명 맛집이 늘 그렇듯 긴 대기시간은 필수다. 대기자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순서대로 호명해 좌석을 안내한다.

★가격=평양냉면 물냉면 1만3000원, 불고기 1인분(150g) 3만3000원, 장국밥 1만1000원, 육개장 1만2000원, 갈비탕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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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옥 전경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주교동 ‘문화옥’=

우래옥 바로 옆에 자리한 문화옥은 우래옥과 함께 서울미래유산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노포다. 6.25 전쟁으로 궁핍하고 어려웠던 1952년, 고 이영옥 씨가 동대문시장 근처에서 연탄불에 설렁탕을 끓여 팔던 게 시초다. 5년 후 이곳 주교동으로 옮겨와 며느리인 이순자(78)씨를 거쳐 현재는 딸 김정원 씨가 66년 3대의 전통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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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옥 양지설렁탕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이 집의 설렁탕은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일체 화학조미료는 물론 소금도 넣지 않는다. 국물의 비법은 한우사골과 엄선된 국내산 쇠고기. 창업 때부터 거래해온 마장동의 한 축산업체에서 당일 선별한 국내산 쇠고기를 공수받아 사용한다. 양지 수육 또한 야들야들 부드럽고 담백하다. 상위에는 각자 간을 맞출 수 있게 신안에서 올라온 천일염도 마련되어 있다.

이 집은 설렁탕만큼이나 김치맛도 특별하다. 아삭아삭하면서 상큼하게 톡 쏘는 맛이 설렁탕과 함께 환상의 조합을 이뤄낸다. 특히 이 집은 매달 말일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렵게 사시는 독거노인에게 무료 점심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이순자 사장이 28년째 이어온 선행이다.

★가격=양지설렁탕 9000원, 도가니탕 1만5000원, 꼬리곰탕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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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금옥 ‘추탕’

●서울 다동 용금옥=

이용상 시인이 쓴 ‘용금옥 시대’란 책이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말할 때 가게 이름을 넣어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평생 용금옥을 다니며 변영로, 박종화 등 수많은 문인과 언론인, 예술인, 정치인 등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뜨끈한 서울식 추탕과 막걸리 주전자가 역사가 됐다. 백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 용금옥은 그런 곳이다.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 전쟁 후 20년 만(1973년)에 서울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에서 북측 대표단 박성철 부주석이 남측에 물어본 말이다. 노포에는 그 집을 함께 다닌 추억이 있다.

서울 최고(最故) 원조 번화가였던 다동(무교동)에서 80여년 세월을 지켜온 용금옥은 서울식 추탕을 끓여파는 집이다. (북어구이와 부침개 등 안주할 것도 많다.) 된장을 넣고 뻑뻑하게 끓여낸 남원식과는 달리,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이 찰방찰방하다. 유부만 빼면 육개장과도 살짜기 닮아있다. 미꾸라지를 갈아 낸 것도 있지만, 그대로 쓴 통마리가 인기다. 용금옥을 찾는 손님 중 많은 이들이 수염까지 매달린 미꾸라지를 빤히 들여다보며 추탕을 먹는다.

근데 왜 서울식은 통마리를 고집할까. 3대째 이어받은 신동민 사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 미꾸라지가 안보이면 안넣었다 의심해서 그랬대요”.

★가격=추탕 1만원, 미꾸라지부침 1만8000원, 모듬전 1만3000원, 북어구이·더덕구이 1만3000원.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