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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은 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영월로부터 백두대간 고원이 열린다. 사진은 청령포 솔숲.

[영월=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햇볕도 이쯤되면 칼날이다. 차라리 해를 돌려준 연오랑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시원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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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임금 단종이 한이 서린 영월 청령포.
여행이 아니라 피난에 가까운 여름날의 행선지로 영월을 잡았다.영월(寧越), 산과 강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에 아니 좋을 수 없는 여행코스다. 월(越)은 커다란 산맥을 앞둔 고을 지명에 붙는 명칭이다. 일본 니가타(新潟)현도 에치고(越後)라 불렸다.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에서 뻗어나온 고산준령을 등진 영월 이름 역시 고려 때 이미 붙여졌다.백운산, 태화산, 두위봉 등 해발 1000m 이상 급 ‘칼같은 산’들이 득실하다.동강과 서강이 있어 물도 좋다. 서쪽에는 술 담그기 좋은 주천강도, 동북에 평창강도 흐른다. 한마디로 산수가 좋단 얘기. 산수는 풍경을 뜻하니 그야말로 풍광이 좋단 뜻이다. 고려말 후기 문신 정추(鄭樞)는 자신의 시문집 원재집에서 영월을 “칼같은 산들은 얽히고 설키었는데, 소나무와 전나무에 달이 비치고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찬란한데 풀과 나무에는 연기가 잠겼다”고 묘사했다.산따라 물따라 그곳 영월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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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영월은 예쁜 도시가 됐다. 청령포 나룻배 앞 화장실에는 디자인을 덧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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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젊은 왕과 방랑시인. 홍진을 등진 이들의 땅 영월

#이홍위(왕·1441~1457). 영월은 멀었다. 김종서(가수가 아니다)를 죽인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영월로 보냈다. 멀고도 험한 곳이니 뒷탈이 없을 거라 여겼다. 열세살 단종은 노산군이 되어 강물이 돌아나가는 청령포에 갇혔다. 숲도 좋고 물도 좋은 아름다운 곳이라 참 역설적인 유배지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번이고 복위 움직임이 일자 사약을 보내 결국 살해하고 만다. 왕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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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오르는 길.

고래등같은 궁궐을 두고 청령포 단촐한 초가에 여린 몸을 누인다. 하늘을 가릴만큼 껑충한 솔숲을 거닐며 단종은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랬다 한다. 고즈넉한 청령포 앞 냇물은 지금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었겠지만 그의 두려움을 달랠만큼 넉넉해 보이진 않는다.

인근 장릉(莊陵).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강원도 심산 유곡에 있다. 언덕에 올라앉은 능마저도 고독하고 외로워보인다. 다만 꼿꼿한 노송들이 서러운 왕의 영면을 지금껏 지키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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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가장 비운의 왕으로 꼽히는 단종이 영면해있는 영월 장릉.

#김병연(시인·1807~1863). 워낙 유명한 별명(김삿갓)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월 태생이 아니지만 영월군은 김삿갓면을 두고 그를 기리고 있다. 김병연은 그의 조부 김익순을 능멸했다. 김익순이 조부임을 모르고 과거에서 그를 비판했다. 특유의 풍자와 타고난 글재주로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김익순의 죄를 나무랐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김병연은 스스로 죄를 물었다. 벼슬을 버리고 삿갓을 쓰고 방랑했다. 시를 써 세상을 풍자·조롱했다.

영월은 그의 집안이 숨어지냈던 곳이자 김삿갓이 묻힌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이 감탄을 자아해는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는 김삿갓의 묘와 주거지, 묘, 노래비, 시비 등이 서 있다. 전남 화순군에서 유명을 달리했지만 영월로 이장했다. 김삿갓문학관도 이곳에 있다.

천재 시인의 감성은 영월의 산수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라디오스타
영화 라디오스타는 영월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최곤(가수·1960년초 생으로 추정). 1988년도 가수왕 타이틀의 스타 최곤(박중훈 분). 이후 대마초 사건과 폭력 등으로 얼룩진 이미지를 안고 ‘왕년’만 바라보고 살아간다.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분)는 동생처럼 그를 챙기지만 천방지축 최곤은 그의 진심을 몰라준다.(사실 이 두 명은 ‘투캅스’와 ‘인정사정 볼것없다’에서도 죽을 때까지 싸운다)

라디오스타
소외된 사람들이 이곳 영월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 라디오스타 중에서.

합의금 마련을 위해 박민수의 손에 이끌려 원주MBC 영월지국까지 내려온 최곤. 이곳엔 수많은 ‘비주류’들의 삶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지국장도, 박PD도 그렇고 시골 록밴드 이스트리버(노브레인 분)까지. ‘주류’의 때가 묻어 이를 잊지못하고 살던 최곤은 비주류와의 공존, 그리고 전파를 통한 소통으로 많은 것을 깨우친다. 영월의 맑은 자연만큼이나 깨끗하게 정화되어 가며 소중한 사람 박민수의 존재를 비로소 깨닫는다. 퍼붓는 장대비 조그만 우산 속에서.

혹시 영월에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소나기는 도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구름은 같겠지만 무엇을 거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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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한반도지형 마을(선암마을)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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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고씨동굴의 유석(流石).

◇뗏군과 고씨굴, 세상을 향한 땅 영월

“술 잘 먹고 돈 잘 쓸 때는 금수강산이더니 술 못 먹고 돈 못 쓰니 적막강산일세”, “돈 없어 술도 못 마시는 뗏꾼을 누가 알아 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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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한반도지형 마을(선암마을)에선 뗏목체험을 할 수 있다.

뗏꾼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소나무를 베어다 떼(뗏목)를 띄워 한양까지 내다 팔던 이들을 일컫는다. 떼는 운목용 배요, 떼돈은 운목으로 받은 거액의 삯과 나뭇값이다. 거친 여울에도 휩쓸려 죽지않고 무사히 한양에 도착해 떼돈을 번 뗏꾼들. 그들이 육로로 올라오는 갈이면 어김없이 들병이들이 목을 지켰다가 술과 음식, 웃음을 팔았다. 결국 떼돈을 탕진하고 빈털털이가 되서 집이라고 찾아 돌아오니, 이때 생겨난 노래가 바로 ‘뗏꾼 아라리(아리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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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은 자체에 부력이 있어 안정감있다.

뗏꾼들이 출발했던 곳이 바로 영월과 정선 일대다.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에는 뗏목체험을 할 수 있다. 한반도 모양의 포항 즈음에서 출발해 서해 인천까지 돌아나오는 코스다. 심산유곡에서 돈을 벌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떼를 타고 머나먼 도성으로 나갔던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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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한반도지형을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

숨소리 하나도 메아리쳐 돌아올 것같은 적막한 물길. 고즈넉한 그곳에선 청정 산수의 매력에 빠져든다. 절벽 아래 바위에는 자라도 올라앉아 볕을 쬐고 떼 아래 수정같은 물 속에는 버들치, 쉬리 등 토종 물고기가 산다. 산그늘 물그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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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고씨동굴

여러 박물관을 품은 영월은 ‘지붕없는 박물관’이란 별명을 얻고 있지만 특히 석회암 지대로부터 비롯된 고씨동굴은 그야말로 천연 자연사박물관이다.

1969년 일찌감치 천연기념물(제219호)로 지정된 고씨굴은 면적 48만 762㎡, 길이 약 3.4㎞에 이르는 중대형 동굴이다. 약 4억8800만년 전 오르도비스 기부터 형성된 굴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우던 의병 고씨(高氏) 고종원(1538~1592)의 가족들이 한때 그곳에 피신하였다 해서 지금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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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영월 고씨동굴

굴 안에는 4개의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 10개의 광장 등이 있으며, 각각 저마다 재미난 이름이 붙은 종유석·석순·석주들이 조화있게 배치되어 있다. 여러 신비스러운 풍경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시원해서 매력적이다. 동굴 내부의 기온은 약 16도를 유지하는 까닭에 초대형 천연 청정 에어콘 속에서 정수리까지 저릿저릿 시원한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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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고씨동굴

자연과 문화, 그리고 스토리 등 다양한 매력을 지닌 영월은 산의 길목, 여름의 길목인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였고, 실제 다녀오니 더욱 아귀가 딱딱 들어맞은 덕에 스스로 신통방통 대견함을 느끼고 있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 청록다방은 젊은 여행객들이 들르는 필수코스. 그냥 다방 커피맛이지만 왠지 낯익은 분위기 속 쉬어가는 기분이 색다르다.

그랜드호텔 주경 (2)
하이원 그랜드호텔.

●상품=영월에서 가까운 하이원리조트는 정선, 태백, 영월, 삼척 등 4개 시군에서 즐기는 ‘정태영삼’ 여행코스를 제안하고 있다. 영월에선 동강어라연코스 래프팅과 요선암 돌개구멍, 장릉, 별마로천문대를 둘러볼 수 있다. 하이원리조트는 현재 여름을 맞아 5성급 그랜드호텔에서 럭셔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I love Me 패키지’와 ‘럭셔리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원한 청정자연 속 고급호텔과 워터파크 등 주변 시설을 한번에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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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성호식당 다슬기 비빔밥.

●먹거리=영월읍 덕포리 성호식당은 다슬기 해장국으로 유명한 곳. 토실토실한 다슬기에 우거지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다슬기탕은 어떤 숙취도 해소해낸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뿔소라만한 다슬기를 잔뜩 넣고 쓱쓱 비벼먹는 다슬기비빔밥도 맛이 좋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다슬기 국물을 한그릇 주는 것도 일종의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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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고향칡칼국수.

고씨동굴 앞 고향원조칡칼국수는 이름처럼 칡칼국수를 잘하는 집. 덥지만 이열치열로 뜨거운 국물에 김치를 송송 썰어넣은 칡국수 한그릇이면 허기를 한방에 떨쳐낼 수 있다. 시원한 비빔국수도 있다. 이름처럼 강원도 명물인 감자로 만든 감자전과 감자떡도 입맛을 딱딱 끌어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