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용수기자]게임부터 모델, 방송, 강의, 성우, 쇼핑몰,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유튜버 김라희는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재다능하다'는 말보다는 '열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말이 어울리죠. 그는 뜨개질 하나로 다양한 연령층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구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김라희가 사랑받는 건 단순히 뜨개질을 잘하는 손재주만 지녀서가 아닙니다. 그의 뜨거운 열정이 영상에서 느껴지기 때문이죠. 김라희는 호기심을 가지면 무조건 시작하고 보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그가 현재 뜨개질 크리에이터로 조명받지만 급변하는 뉴미디어 시장에서 또 어떤 콘텐츠로 주목받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김라희가 많은 구독자에게 사랑받는 건 '뜨개질'입니다. 그의 뜨개질 영상은 학교, 문화센터 등 전국 각지에서 뜨개질 교본으로 쓸 정도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그만큼 누구나 따라하기 쉽고 재밌게 뜨개질을 가르쳐 주는 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그의 전시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핸드아티코리아' 현장에서 김라희가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이를 보고 구매하기 위해 찾는 그의 구독자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어요. 현장을 찾은 구독자들은 그동안 즐겨 보던 영상 속 주인공과 사진을 찍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취했습니다.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그를 사랑하는 구독자 층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수공예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시대가 오기를 희망하는 김라희가 어떻게 다양한 연령층의 구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는지 한 걸음 다가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 김라희, 이름이 익숙한데요. 혹시 구면인가요?


그건 아닌 것 같네요. 활동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수공예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다양하게 활동했어요.


Q. : 어떤 일들을 했나요?


원래 모델 일도 했고, 방송 쪽으로도 활동했어요. 제가 게임을 10년 넘게 좋아하고 주 활동무대가 온라인이다 보니 게임과 광고마케팅으로 강의도 했고요. 또 모바일게임의 성우도 한 적 있어요. 많죠? 호기심이 생기면 그 분야를 공부하고 도전하는 성격이거든요. 이것 저것 무서워하지 않고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Q : 어쩐지 게임 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로 방송에 입문했나요?


어릴 때 모델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모델학과로 들어가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어릴 때부터 게임도 좋아해서 게임 관련 코스튬 플레이도 했거든요. 그러다 10년도 더 전에 한 게임이 막 론칭됐을 때 온게임넷(현 OGN)에서 코스튬 플레이로 모델 일을 했어요. 이를 계기로 FPS 게임 모델로도 활동하면서 게임 생방송 프로그램 진행도 맡게 됐어요. 당시 여성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게임에 관심많은 제게 모든 기회가 열렸어요.


Q : 지금은 방송에서 활동하지 않고 영상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어쩌다 그만 둔 건가요?


네, 방송 출연했던 건 오래전 일이에요. 온게임넷에서 오래 일했어요. 저는 '스타걸' 도입 이전 세대인데요. 스타리그 4~5시즌 정도 했어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만둔 건 건강 때문이죠. 리그가 열리는 경기장 조명은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강해 제 각막이 잘못됐어요. 아직도 오른쪽 시력이 측정되지 않을 정도죠.



Q : 지금은 괜찮은가요? 방송 일만 한 게 아니잖아요. 다른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각막이)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모델은 대학 입시 전인 18세에 일본에서 데뷔했어요. 격투기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모델로 활동한 건데 국내에서 찍은 모습이 일본 격투기 카탈로그에 실리는 정도였죠. 게임에서도 했고 드라마나 광고에도 출연했어요. 드라마는 KBS2 '황진이'에서 기생 단역으로 출연했고, 광고는 보험 광고나 포털사이트 광고에 출연한 적 있어요. 다 오래전 일이에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운 좋게 좋은 결과로 얻은 것들이죠.


Q : 모델, 배우 말고도 더 있던데요?


건강 때문에 방송 활동을 못하게 됐는데 성격상 잉여로운 제 모습이 싫더라고요.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 나태로워진 모습을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임 관련 글을 쓰자 해서 열심히 게임을 하면서 글을 썼어요. 운 좋게도 농사짓는 게임을 하다가 농업 관련 국가기관에서 기획한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됐어요. 방송 경력이 있다보니 교양 프로그램 메인 MC를 6개월간 맡을 수 있었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죠. 그러더니 블로그 운영으로도 충분한 수입이 생겼고, 온라인 마케팅 관련 공부도 했어요. 알고 지내는 게임 해설위원의 소개로 e-스포츠 강의 제안을 받아 직업학교에서 한 학기동안 마케팅 게임 관련 강의를 맡았어요. 발전하는 내 모습을 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Q : 하지만 현재는 '금손' 뜨개질의 여왕인 유튜버로 활동 중이잖아요. 뜨개질 방송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성격상 하고 싶으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지난 2014년에 제가 봐둔 예쁜 모자가 있었어요. 가격은 10만원 정도였죠. 하지만 당시 제 주머니에 그 모자를 살 돈이 없었어요. 마침 어머니와 시장을 갔는데 뜨개질로 모자를 만드는 아주머니를 보고 떠올렸죠. '나도 만들 수 있겠군' 그래서 시장 뜨개방에서 기초를 배웠어요.


원래 제 방송을 운영할 생각이 없었어요. 제 방송 채널도 소소하게 구독자들이 찾는 게임 공략 채널이었죠. 그런데 '유튜브'에서 뜨개질하는 외국 할머니를 보고 번뜩였어요. '내가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뜨개질을 해야 하겠구나'라고요. 게임은 평생 할 수 없지만 뜨개질은 평생 할 수 있겠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나만의 방식으로 연습한 걸 기억하기 위해 찍은 영상을 올리면서부터죠. 뜨개방에서는 어려운 용어로 말해서 기억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단어로 얘기하면서 영상을 찍어 뜨개질을 익혔어요. 그런데 그게 독자들에게 먹혔어요. 전문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내가 찍은 영상이 통하더라고요. 조금씩 꾸준히 올리던 영상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죠.



Q : 지금은 뜨개질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영상이 먹히고 있는지를 느꼈나요?


영상을 찍으면서 사용했던 실이 동난 적이 있어요. 제가 공식 카페도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곳에서 독자들과 소통하기도 하는데(김라희는 파워블로거로도 활동 중이다) 제가 제품 사용 후기 등을 솔직하게 평가하니깐 제 말을 신뢰해주더라고요.


Q : 방송하면서 기억에 남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를 응원해주고 좋아해주는 모든 분이 기억나요. 그중 가장 기억 남는 건 항암치료 받는 분이었어요.(울먹이며) 그분이 병실에서 제 영상을 보고 힘을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병실에 누워 무료하다 보니 시작한 뜨개질이라 예쁘게는 못하지만 작은 바늘을 가지고 꼼지락거리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어요. 무엇보다 감동하고 감사했던 건 제 영상을 보고 병원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해주더라고요. 제 영상을 보고 제가 바로 옆에서 얘기해주는 것 같다고.(눈물 흘리며) 정말 제가 힘이 더 나고 고마운 분이었죠.


꼬마 팬도 있어요. 말도 잘못하는 꼬마가 어린이 프로그램보다 제 영상을 더 좋아한다고요. 실제로 만났을 때는 정말 해맑게 좋아해서 기억에 남아요.


또 저를 만나자마자 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일상 속에서 제 영상이 힘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영상이나 글에는 감정을 숨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분들에게 더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찍으려 해요.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쁘거든요.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에요.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Q : 많은 분들과 마음까지 소통하면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제 영상은 10~60대까지 다양하게 보세요. 그래서 나이든 어르신 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휴대전화로 보기엔 화면이 작아서 TV로 제 영상을 보는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제 영상이 '노동요'라고도 했죠.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이 TV로 화질 깨짐 없이 보실 수 있도록 최고화질(4K) 지원 가능한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요. 저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노력하면서 연구하고 접목시키고 있어요.



Q :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뿌듯할 것 같아요.


네! 뿌듯하죠! 제 영상으로 뜨개질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제 영상 콘텐츠인데 '자코빡(자네 코바늘 빡세게 배워보지 않을 텐가)'이라고 있는데 기초부터 따라할 수 있게 찍은 것이죠. 단계별로 찍어 올렸는데 제 카페에서 '자코빡'으로 시작했다는 글을 보면 감개무량해요. 또 한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께도 연락을 받았는데요. 학교 교과 과정에 뜨개질이 있다더라고요. 그래서 제 영상이 수업에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전국의 문화센터, 뜨개질 공방 등에서 제 영상이 많이 쓰인대요. 이럴 땐 정말 뿌듯해요.(웃음)


Q : 영상이 수업 교본으로 쓰일 정도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래도 수입적인 측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영상에서 제작한 제품을 팔기도 하나요?


저는 영상에서 만든 뜨개질 제품을 팔지 않아요. 제 것을 사지 말고 직접 만들라고 권할 뿐이죠. 그래서 누가 산다고 가격을 물어보면 '100만원, 200만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요. 가격 듣고 놀라면 '이거 직접 만들면 된다'며 뜨개질로 끌어들이는 거죠.


제 영상을 안 보더라도 수공예 문화 자체를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수공예 시장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인정받기 쉽지 않거든요. 예를 들면 뜨개질로 가방 하나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렸으면 최저 임금만 계산해도 단가가 높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가방 하나에 무슨 10만원이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럴 땐 저는 '그럼 가죽이기만 한 가방은 10만원이 뭐냐 그 이상 가격이어도 못사서 난리지 않느냐?'고 따져요. 그냥 지금 우리나라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저 혼자만의 사명감인데. 많은 사람이 수공예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제 인생 목표는 많은 사람이 수공예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거예요.



Q : 그렇죠. 저부터 생각을 달리해야겠어요. 다른 수공예도 관심이 많은가 봐요?


손으로 하는 건 다 좋아해요. 도자기 공예도,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죠. 유튜브를 통해 하고 싶은 건 다 할 생각이에요. 제 영상 채널을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긴 한데 현재까지 메인은 뜨개질인 거죠. 뜨개질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기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머니가 버리는 액세서리도 제가 직접 리폼해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걸요.


Q : 역시 손재주가 있으니까 뭐든 잘 만드나봐요. 독자들에게 어떤 '김라희'가 되고 싶으세요?


전 사회에 나온 이후 많은 것을 경험했어요. 그렇기에 전 딱 정해진 직업이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단지 내가 좋아서, 나태해지기 싫어서 한 것들이죠. 저 자신이 만족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 반응이 감동인 거죠.


지금도 바쁘게 살고 있어요. 최근에는 수공예 관련 방송 프로그램 메인 MC직을 협의 중이고 주얼리 브랜드 '로다'도 론칭했어요. 이걸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능력 안에서 해보 싶었던 것을 실천한 거죠. '로다'는 이루리로다의 약자로 사용하는 분들이 염원하는 소망을 모두 이루라는 마음을 담아서 지었어요. 저는 제품이라기도 보다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극소량만 제작하고 있어요.


Q : 꾸준히 다양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멋집니다. 최종적인 김라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금 하는 모든 게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지금처럼 살다 보면 누적된 경험치가 쌓일 것 아니에요. 그러다 보면 20년 후 이렇게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리하면 백종원이 떠오르듯 수공예하면 '김라희'가 떠오르는 시대를 만들고 싶어요. 20년이 안되면 30년이 걸려서라도 꼭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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