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용수기자]방송가에서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때 지상파 3사에서 공채 개그맨을 활용한 공개 코미디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현재 살아남은 건 KBS2 '개그 콘서트' 뿐이다. 그나마 위안은 tvN '코미디 빅리그(코빅)'가 갈 곳 잃은 개그맨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도 각자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1인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위상도 달라졌다. 이에 따라 갈 곳 잃은 개그맨들이 향하는 선택지로 유튜브가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두드렸다가는 큰 코 다치는 법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동료들보다 한 발 먼저 SNS 시장에 진입한 이가 있다. 남들보다 개그를 늦게 시작해 스스로를 '삐약이'라고 부르는 박상현은 1인 미디어로 활약하며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황무지를 개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7년째 무명이라고 지칭하는 박상현의 이야기속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Q : 6년 10개월째 무명 개그맨인데. 그동안 어떻게 활동했는지 궁금해요.


지난 2012년 김대범 소극장에서 개그맨 지망생 생활을 시작했어요. 극단에서 무대 경험 등 노하우를 쌓았죠. 개그맨 지망생이라면 필히 거쳐가는 코스를 경험한 거죠. 그렇게 1년 정도 했는데 개그맨 김대범 선배의 권유로 '코빅'에 시험을 볼 수 있었어요. 지금은 기획제작총괄 CP로 계신 김석현 감독님에게 오디션을 보고 2012년 8월부터 '코빅'에 출연하기 시작했어요.


운 좋게도 '코빅'에 들어간 다음주부터 바로 무대에 설 수 있었죠. 당시 '대범화재보험'이라는 코너로 무대에 섰어요. tvN '코빅 시즌4' 8회를 보시면 돼요. 당시 저는 '뜰 날만 남았다' '나는 된다' 장밋빛 청사진만 그렸죠.


작은 역할로 3주간 방송했어요. 하지만 제 연기력에서 준비 안된 게 티가 났죠. 개그맨 지망생이라면 최소 2~3년간 준비하고 무대에 올라요. 전 무대에 특화된 사람도 아니었어요. 소극장에서 1년 정도 무대 생활했는데 부족했죠.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었어요. 그 때 당시 전 왜 나를 안 쓰지 제작진 탓만 했는 걸요.


Q : 지금은 방송이 아닌 온라인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데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2016년까지 5년 정도 개그맨 생활을 했어요. 그 사이 방송에 비춰진 건 다섯 차례 뿐이었죠. 주머니 사정도 넉넉치 않았어요. 차비 아껴보자고 상암에서 안양까지 걸어간 적도 있어요. 코너를 짜다가 PC방에서 잔 적도 있고요. 되게 서글펐어요.


'코빅'에는 양세형, 이국주 선배 등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여기서 살아 남으려면 뭘 해야 될까 고민 많이 했죠. 하지만 개그 무대에서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캐릭터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Q : 5년이라는 시간동안 버티기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당시 수입은 어땠나요.


제가 원래 가계부를 적는 버릇을 들여놔서 당시 수입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코빅' 시작하고 그만 둘 때까지 수입을 월 평균으로 나눠 보니 딱 5만원 벌었더라고요. 그 수입은 방송 출연을 못하다 보니 돌잔치 같은 행사를 뛰어서 얻은 돈이었죠.


Q :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네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겠어요.


맞아요. 다시 취업해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SNS 페이스북 활동이었어요. 2년 전 페이스북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을 때니까 도전한 거예요. 여기서도 못 웃기면 난 안 웃긴 사람이다.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포기하려 했죠. 다행히도 페이스북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고 반응도 좋았죠.


Q :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길이었네요.


그래도 '코빅'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기가 지금 도움되는 게 사실이에요. 밑거름이 됐죠. 어떤 상황에서 대처하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이나 방향을 배웠어요.


Q : 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7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어요. 삶이 무료하더라고요. 한강에서 맥주 먹으며 '재밌게 살고 싶다'고 고민을 많이 했죠. 뭐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티비에 나가 볼까' 했어요. 하지만 배우하기엔 제가 못 생겼고, 가수 하기에는 노래도 잘 부르지 못했죠. 그래서 나온 게 개그맨이었어요. '개그맨? 맞아. 나 웃기지' 해서 개그맨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Q : 그래도 너무 뜬금 없이 인생의 방향을 튼 건 아닌가요.


그 당시 한강에서 공연하던 한 젊은 친구를 보고 크게 한 방 먹었어요. 이렇게 사는게 맞나 하면서 고민하는데 한 친구가 기타치며 버스킹을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운동하던 모녀가 서서 구경하고요. 그런데 그 때 그 친구의 얼굴을 봤는데 세상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행복해보였어요. '쟤도 회사에서 돈 벌 수 있을 텐데. 이런 걸로 행복 찾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있게 개그에 도전하게 된 거죠. 개그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재밌어요.


Q : 버스킹 하던 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겠네요.


그렇죠. 당시 주변에서는 '네가 뭘 할 거야'라며 '그냥 회사나 다니라'고 조언했는데 그 친구 덕분에 용기를 낸 거죠. 오래돼서 그 친구 얼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유명한 가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Q : 어렵게 여러 길을 거쳐 크리에이터의 길을 선택했는데요.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점이 있을까요.


요즘 유튜브에는 콘텐츠가 다양해요. 저는 사람들이 제 영상을 보고 무조건 웃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촬영해요. 구독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웃을지 상상하며 촬영하죠.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고 피식한다든가. 학교에서 공부 중 스트레스 받은 친구가 잠시 잊고 제 영상 3~4분을 보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Q : 개그 무대보다 반응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입적인 측면에서 만족하는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아요.


1년 정도 걸렸어요. 그 전까지 개그맨을 시작한 뒤로 금전적인 부분에서 모든 게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집에 도움되지 못하는 아들이었던 점이 가장 힘들었죠. 제가 오랜기간 버티고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좋은 친구들 덕분이에요. 힘들 때 도움을 많이 얻었어요. 지금은 한 명, 한 명 갚고 있어요.


Q : 부모님이 많이 좋아하시겠어요.


그렇죠. 좋아하세요. 우리 아들이 어떤 일을 하는데, 그걸 인정받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Q : 그래도 부모님이기에 걱정이 많을 것 같아요. 또 크리에이터가 뜨고 있긴 하지만 불확실한 직업이잖아요.


지금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지만 기획 회사를 차리는게 꿈이에요. 광고기획자(AE)처럼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회사, 제 머릿속 내용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싶어요. 저만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기획을 해보려고요.


Q. '코빅'에 설 때는 연예인이었는데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나요.


큰 욕심은 없어요. 어차피 공개 코미디는 저와 맞지 않았는 걸요. 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건 온라인 영상이 딱 맞아요.


Q : 지금은 크리에이터도 방송 활동하는 시대잖아요. 진짜 욕심 없나요.


욕심만 없다는 거예요. 제안만 온다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활동하죠. 다만 개그하면서 하나 좌우명으로 생각한 게 있어요. '욕심 갖지 말자'예요. 욕심부리면 얼굴에서 티가 나거든요. 그러면 제가 하려던 것도 잘 안돼요.


저도 사람인데 방송 욕심은 당연히 있죠. 하지만 제가 여기서 잘해서 '방송까지 가야 해'가 아닌 기회가 되면 하는 거죠. 여기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남을 시기 질투하는 순간 제가 재미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다른 경쟁자의 콘텐츠를 잘 보지 않아요. 잘 되는 사람의 아이디어를 저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따라할 것 같아서죠.


Q : 콘텐츠를 만드는 자체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거라서 쉬운 일이 아닌데요.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보다 부지런해야 되는게 더 힘들어요. 유튜브는 재밌는 콘텐츠를 하나 올리는 것보다 매일 콘텐츠를 하나씩 올리는게 맞아요. 그래야 도달율이 높아지죠. 1주일에 하나 올려 조회 수 100만 나오는 것과 7개 올려 100만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나아요. 도달율이 더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지런함이 쉽지 않아요.


아이디어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얻어요. 영상 콘텐츠는 대부분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거예요.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서도 부지런하게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예전에는 10개 중 5개 효과를 봤다면 지금은 더 확률이 높아지고 있어요. 감을 찾고 있죠. 그런 점에서 매일 콘텐츠를 올리는 게 흐름을 읽고 감을 유지하는데 도움되고 있어요.


Q. 본인의 감을 바로 평가 받는 거네요.


유튜브는 전부 감독님이에요. 공개 방송은 감독님만 재밌게 해드리면 돼요. 감독님 코드만 맞추면 돼죠. 그런데 유튜브는 모두가 감독님이에요. 영상 하나, 하나 모두 피드백 받죠.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이나 공개 방송은 피드백을 바로 받죠. 하지만 영상은 댓글로만 피드백을 받아요. 가끔 웃음 소리가 간절할 때도 있어요. 장‧단점이 있죠.


Q. 최근에 개그맨들이 SNS 시장에 많이 뛰어 들고 있는데요. 이런 장‧단점을 감안해서 조언을 한다면요.


제가 SNS에 뛰어들 때만 해도 동료 개그맨들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었어요. 평가가 좋지 않았죠. 하지만 전 당시 먹고 살아야 했기에 뛰어든 거죠. 이를 갈면서 했던 게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 됐어요. 물론 그 때 동료들과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는 개그맨들이 많아지면서 후배들이 조언을 얻으러 많이 찾아와요. 전 그러면 '열심히 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어. 공개 코미디와 똑같아. 유튜브 하는 모두가 라이벌이다. 그 사람이 하나 올릴 때 넌 두개 올려야 해'라고 조언하죠. 100만 유튜버가 하루에 한 개 영상을 올리는 것과 1만 유튜버가 하나 올리는 건 차이가 크기 때문이죠.


Q. 여러 면에서 이제는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있네요. 얼마 전에는 '부산 코미디 페스티벌'도 다녀왔던데.


지난해에는 개그맨으로 가서 공연도 하고, SNS 홍보대사도 했죠.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SNS 홍보대사로만 개막식에 참여했어요. 많은 선배들이 축하해주셨어요. 김인석, 윤성호 등 개그 오래하셨던 선배들은 '너 잘됐다'며 칭찬해주고 덕담해줬죠. 작년보다 더 제게 다가와 말도 걸어주시니 기분이 좋았어요.


Q :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여 좋네요. 하지만 '셀럽'인 만큼 기억 남는 팬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분들을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제가 SNS 팔로워 4만명 정도 일 때였는데 팬클럽 하자는 분들이 있었어요. 당시 전국에서 30명이 모였죠. 저를 보려고 부산, 대구에서 올라왔어요. 너무나 놀랐죠. '내가 뭐라고? 날 보려고 먼 곳까지 찾아왔어?'라고 묻기도 했어요. 그 때 정말 기분 좋아서 오래동안 시간을 보냈어요. 그 땐 돈벌이가 좋지 않다보니 친구들이 회비를 모아서 음식 값을 내더라고요. 그 때 힘을 준 친구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잘 되면 그 친구들을 모아서 보답하고 싶어요.


Q :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꿈이나 포부가 있다면.


저는 솔직히 개그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SNS 활동을 할 뿐이죠. 개그맨 타이틀을 갖고 있다고 해서 더 웃기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더 웃겼으면 방송에서 활동하는 게 맞죠. 그래도 지금의 저를 충분히 인정하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냥 꾸준히 웃기고 싶어요. 저를 보면서 '영상이 기다려진다' '스트레스가 풀린다'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영상 보고 위로가 됐다'는 글을 보면 더 열심히 하는 힘이 돼죠.


결국 꾸준히 소소한 웃음을 주고 싶은 게 바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유세윤 선배가 조언해 준 말이 떠오르는데요. 그 말이 가슴 깊히 박혔죠.


"상현아, 지금 세상에 웃긴 게 너무 많아서 웃길 수 없어. 사람들에게 너를 보여주고 소소하게 웃음을 주면 그게 웃긴 거야. 웃기려고 빵 터트리려고 노력하면 네 머리가 빵 터질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소소한 웃음을 주다보면 자연스럽게 웃긴 게 나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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