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영 "롯데는 돌아가고 싶은 곳, 삼성은 제2의 고향"[리와人드]
  • 입력 2018-09-20 13:00
  • 수정 2018-09-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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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마해영은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며 "입단해서는 자리를 빨리 잡았는데, 자유계약선수(FA) 이후에는 여러 팀을 돌아다니면서 2군에 있는 골치 아픈 베테랑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마해영은 데뷔 첫해 팀의 4번 타자를 도맡으며 중심 타자가 됐고, 1999년에는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으로 팀을 옮긴 뒤에는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국내 우타자로는 최초로 3년 연속 30홈런 고지에도 올랐다. 하지만 KIA-LG의 유니폼을 입고선 1군과 2군을 오갔고, 7년 만에 돌아간 고향 팀에서도 32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는 올해 1월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 팬더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마해영은 이제 선수가 아닌 한 팀의 지도자로서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몸쪽 공' 공략이 만들어낸 1999년 '타격왕'


부산고-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군 문제를 해결하고 1995년 롯데에 입단했다. 김용희 감독은 마해영을 개막전부터 4번 타자로 낙점하며, 그를 향한 기대감을 표했다. 신인이 데뷔 시즌에 주전 4번 타자를 맡은 것. 그는 "부담감이 많았다. 당시 롯데 주축이 전준호, 이종운, 김응국 등 좌타자였기에 우타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저를 빨리 기용한 거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데뷔 첫해 타율 0.272 87타점 18홈런을 때려내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마해영의 타격 실력은 1999년 만개했다. 타율 0.372 119타점 35홈런을 기록하며 그해 타격왕에 올랐다. 그는 "1998년 시즌을 마치고, 팀에 일본인 타격 인스트럭터 모토이 코치가 왔다. 몸쪽 공 타격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왕정치(오 사다하루) 타법'을 배웠다"고 밝히면서 "제가 몸쪽 공에 약하다는 전력분석이 있었는데, '왕정치 타법'을 배운 이후 몸쪽 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몸쪽 공에 대한 해결책이 생기다 보니 야구가 쉬워졌고, 덩달아 성적도 좋아졌다"고 비결을 공개했다.


승부욕이 이끈 1999년 플레이오프 극적 승리


1999년은 마해영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해이지만 롯데에도 잊기 힘든 시즌이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때문이다. 때는 두 팀의 플레이오프 7차전. 0-2로 뒤지던 롯데는 6회 펠릭스 호세의 홈런으로 추격의 고삐를 당긴다. 하지만 그때 관중석에서 호세를 향한 이물질이 날아들었고, 호세는 배트를 관중석으로 집어 던지며 퇴장을 당한다.


어수선함이 흐르던 경기장, 타석에는 마해영이 들어섰다. 그는 보란 듯이 동점 홈런을 때려냈고, 어퍼컷 세레모니와 함께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포효했다. "호세가 배트를 던진 건 물론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호세를 퇴장시킨다는 건 '너네 져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억울한 마음에 지기 싫었다. 경기가 재개되면 다음 타자가 저였다. 경기를 안 하면 결국 지는 거니까 저는 덕 아웃에서 준비하고 있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선수협 사태→트레이드→삼성의 창단 첫 '우승'까지


마해영의 홈런에 힘입어 롯데는 삼성을 꺾고 그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화에 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이 경기가 마해영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오프를 치른 마지막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마해영은 2000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사태' 이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며 고향 팀을 떠나게 된다. 그는 "1999년 한·일 슈퍼게임에 참여한 25명의 멤버가 '선수협을 만들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다. 어쩌다 보니 제가 강성 이미지가 되어 버렸고 트레이드됐다. 선수협은 어쨌든 지금도 존재한다. 운영이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푸른 유니폼을 입은 마해영은 그곳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마-양(이승엽-마해영-양준혁)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중심타선에서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 그리고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으로 삼성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마해영은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이 6-9로 뒤진 9회말 1아웃 상황에서 이승엽은 LG의 마무리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트렸다. LG는 이상훈 대신 최원호를 마운드에 올렸고, 타석엔 마해영이 들어섰다. 그는 "동점이었기 때문에 몸쪽 승부는 하지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바깥쪽 공을 노렸는데 이 부분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제가 홈런을 안 쳤으면, 아마 양준혁 선배가 쳤을 것이다"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안경 분실 사건'. 마해영은 끝내기 홈런을 치고 안경을 분실한 듯한 포즈를 취해 많은 이들이 안경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는 "세레모니를 하다가 안경이 깨질 거 같아서 3루 베이스를 돌고 맨 앞에 있던 누군가에게 안경을 건넸다. 그런데 홈플레이트를 밟고 난 뒤에도 아무도 안경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라커룸에 들어가서 다른 안경을 쓰고 나왔다"면서 "안경을 받은 누군가가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라고 밝혀 논란(?)을 종결시켰다.


7년 만에 친정팀으로…그리고 은퇴


삼성에서 화려했던 3년을 보낸 마해영은 FA 자격을 얻어 KIA로 팀을 옮긴다. 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에도 1군과 2군을 오가며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KIA-LG에서 보낸 4년 동안 6명의 감독이 바뀌었다"고 전하면서 "개인적으로 꾸준하게 운동하는 스타일인데, 못하면 바로 2군으로 내려 갔고 그러다 보니 만회할 기회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KIA와 LG에서 4년의 시간을 보낸 마해영은 2008년, 연봉 5000만 원에 고향 팀 롯데로 돌아온다. 그가 롯데를 떠난 지 7년 만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팬들의 성원 덕분에 고향 유니폼을 입었기에 기회를 보장받아서 더 잘하고 싶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담담히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한테 '두 달만 기회를 달라. 두 달 동안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고, 로이스터 감독이 6월 11일 저를 불러 '은퇴'를 권유했다. 저는 은퇴 대신 2군을 선택했다. 그러다 올스타전에 참가하게 됐고, 그게 선수로서 마지막"이라면서 "목표로 했던 300홈런, 40세까지 선수생활, 2000안타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2008년 시즌을 끝으로 마해영의 선수생활은 막을 내린다. 은퇴식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는 "은퇴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식적으로 야구를 그만하는 거니까 슬플 것 같았고, 울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은퇴식을 하지 않아 서운한 건 없다. 다만 '재계약 불가'를 전화로 통보하는 처리 과정에 관한 아쉬움은 있다"고 진심을 내비쳤다.


다시 현장으로…프로구단 감독을 꿈꾸다


은퇴 후 마해영은 XTM, Xports 등 여러 채널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펼쳤다. 그는 "해설위원을 하고 싶었다. 선수 시절에도 경기 준비나 분석을 좋아해서 수비위치나 투수 교체 타이밍을 유심히 보곤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해설위원으로 바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석·박사 과정을 모두 수료하는 배움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드러냈다. 그는 "열정이 많다기보다 지도자의 꿈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준비가 잘 되어있으면 프로팀에서 서로 데려가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프로에서 싫어하는 일만 한 것 같다"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배움은 그를 다시 현장으로 이끌었다. 지난 1월 성남 블루 팬더스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 하지만 독립구단을 이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는 "블루 팬더스는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가 따로 있어서 저는 선수들과 훈련만 하면 된다"고 전하며 "프로에 가지 못한 친구들 혹은 프로에 있던 친구들이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거라 선배로서 잘됐으면 하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진심을 전했다.


이어 블루 팬더스의 감독으로서 목표도 밝혔다. 그는 "단기적인 목표는 김성민(2018 2차 5라운드·SK 와이번스 지명)처럼 선수들이 프로에 많이 진출했으면 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건 선수가 많아지면 두 팀으로 나눠 운영해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좋은 선수가 늘어날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더불어 지도자 마해영의 목표도 덧붙였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목표이자 꿈은 프로구단 감독이다. 안될 수도 있겠지만, 코치·스카우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감독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롯데와 삼성', 그에게 소중한 야구인생의 한 페이지


마지막으로 그에게 '마해영에게 롯데와 삼성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사실 두 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말하기 되게 어렵다"면서 "롯데는 저의 고향이자 저를 성장하게 해준 팀이다. 그렇기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고 밝혔다. 또 삼성에 대해선 "저도 삼성에서 잘했지만, 삼성도 저의 끝내기 홈런으로 첫 우승을 이뤘기에 서로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제2의 고향이다"라며 애정을 표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해영은 "유니폼 입을 때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beom2@sportsseoul.com


사진 l 스포츠서울 DB, 박준범기자 beom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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