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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양수경이 최근 발매한 스페셜 앨범 ‘명작’의 플레이리스트는 흥미롭다. 가요계의 전설적인 가수들이 부른 전설적인 히트곡들이 망라돼 있다. 타이틀곡 조용필의 ‘Q’를 비롯 서브 타이틀곡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태진아의 ‘옥경이’, 김범룡의 ‘바람바람바람’, 남진의 ‘가슴 아프게’ 등 명곡 10곡이 수록돼 있다.

데뷔 이후 창량한 목소리와 깔끔한 창법으로 호평받아온 양수경이지만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불려오진 않았다. 이번 앨범은 어쩌면 양수경 가수 인생 2막의 최대 도전이다. 전설적인 원곡들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앨범 총괄프로듀싱을 맡은 이가 하광훈 작곡가라는 걸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 작곡가는 리메이크 앨범의 최고 히트작으로 꼽히는 조관우 2집 ‘메모리즈’(1995년 발매)의 프로듀싱, 편곡을 맡았던 이다. 당시 ‘메모리’ 앨범은 비공식 450만장이 판매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었다. 하 작곡가가 리메이크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건 23년만이다. 조관우 이후 양수경이 첫 도전이다.

최근 만난 하 작곡가는 “개인적으로 이번 양수경의 앨범은 내가 만든 앨범 중 제일 잘 만든 것 같다. 내 음악 인생 최고작이다. 조관우 리메이크 앨범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고, 더 잘 만든 것 같다”고 자평했다.

하 작곡가는 87년 변진섭의 데뷔곡 ‘홀로 된다는 것’을 만들며 가요계에 혜성같이 데뷔했다. 저작권 등록된 노래만 400여 곡에 이르는데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김범수의 ‘약속’, 김민우의 ‘사랑일 뿐이야’,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등 무수한 히트곡을 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앨범 총괄 프로듀싱을 맡은 적이 거의 없다.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몇차례 양수경의 프로듀싱 제안을 거의 20여년 동안 거절해왔다. “양수경이 정말 오래전부터 프로듀싱을 해달라 했다. 이상하게 자꾸 틀어졌다. 미국까지 찾아와 ‘오빠가 안 도와주면 가수 안하겠다’고 엄포를 놓길래 ‘마음대로 하라. 네 인생을 왜 나한테 기대냐’고 한 적도 있다. 2016년 양수경이 20여년 만에 가요게게 복귀한 뒤 어려울 때 도와줘야겠다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지난해 컴백 콘서트 편곡을 도와주는 등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되돌아봤다.

올해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은 양수경은 원래 신곡들을 발표하려 했지만 하 작곡가가 말렸다. “30주년이 뭐가 대단한가.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30년이 흐른다. 명분이나 철학이 없다면 굳이 축하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신곡을 내도 시장에서 알릴 수 없다. 차라리 진짜 좋은 가요들을 양수경 식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 작곡가는 “예전 양수경은 깨끗하고 소녀스럽게 노래를 불렀지만 가창력이 화려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다 10년전 함께 노래 하나를 녹음해 봤는데 이전에 못느껴본, 절절한 ‘뽕끼’가 있더라. 그걸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예전 양수경만 아는 분들이라면 이번 앨범을 듣고 깜짝 놀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예쁜 척 하지 않고, 인생을 노래해야 한다는 내 주문을 양수경이 실천해 냈다”고 평가했다.

노래 선곡과정에서 양수경의 ‘저항’도 있었다. 양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노래들을 골랐기 떄문이다. “처음에 양수경 본인은 죽어도 못 부르겠다 하더라. 나는 계속 ‘할 수 있다. 네가 나이 50을 넘어 바라본 방식으로 사랑을 얘기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엔 엄두를 못내던 양수경이 어느날 갑자기 영어가 트이듯 노래를 하더라. 그 이후 순조롭게 녹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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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작곡가는 “나는 내가 만드는 이번 앨범이 늘 마지막 앨범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양수경에게 해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라 생각하며 만들었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나가는 가수에게 하나의 확실한 무기를 장착해주고 싶었다”며 “천하의 김범수, 조관으 변진섭, 이승철도 못 내는 양수경 만의 목소리를 가지라는 자신감을 주고 싶었고, 아직 지신이 가진 걸 인지하지 못하던 양수경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양수경은 이번 앨범에 대해 “기대감은 없다”며 웃었다. 그는 “조용필, 이미자 등 이름만으로 존경받는 대선배들의 노래를 감히 불러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감히 엄두도 못냈던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양수경은 “앨범을 준비하며 많이 힘들었다. 내 색깔이란 게 뚜렷이 없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내 색깔이 생긴 거 같다. 1집을 냈을 떄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수경은 오는 28~29일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워커힐씨어터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파티’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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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스카이엔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