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권 감독
한국 배드민턴 전설 하태권 요넥스 감독이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oprtsseoul.com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윤소윤 인턴기자] 운동선수들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건 ‘천운’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구슬땀을 흘려 일궈내는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그만큼 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가장 높은 단상에 오른 하태권(43) 요넥스 감독 역시 ‘천운’이 따랐다고 자평한다. 하 감독은 당시 동갑내기 죽마고우 김동문 원광대 교수와 남자복식 조를 이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태권 감독
한국 배드민턴 전설 하태권 요넥스 감독이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oprtsseoul.com

◇허리 디스크, ‘멘붕’ 등 악재에도 얻은 값진 금메달

하태권 감독에게 2004 아테네 대회는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올림픽이었다. 더욱이 이전까지 금메달을 목에 건 적 없기에 누구보다 절실했다. 반면 김동문 교수는 1996 애틀랜타 대회 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엇보다 한국 배드민턴이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기대한 건 남자복식이 아닌 라경민(42) 전 배드민턴 대표팀 코치와의 혼합복식이었다.

“김동문이 혼합복식 14개 대회 연속 우승, 70연승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김동문이 혼합복식에 집중하도록 대회 전인 2003년 11월 남자복식 파트너를 바꾸려 했다. 그때 김동문이 안 바꾸고 나와 함께 하길 선택했다. 그래서 조를 유지하고 대회에 임했는데 남자복식 전 혼합복식에서 떨어진 김동문이 풀이 죽었다.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돼서 왔더라. 금메달 0순위였기에 대표팀 모두 혼란스러웠다. 나도 대회 전 다쳐 난감했는데 김동문의 ‘멘붕’에 내 마지막 올림픽도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

당시 하태권 감독은 올림픽 4개월을 앞두고 출전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올림픽 출전 랭킹 포인트를 확보한 상황이었기에 대회 출전은 가능했지만 배드민턴 라켓 조차 잡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회에 출전해서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발가락을 꼬집어도 감각이 없을 정도로 허리디스크는 심각했다. 메달권을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료마저 무너지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래도 김동문에게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포기하지 말자’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러더니 운이 뒤따랐다. 올림픽 금메달은 ‘천운’이란 걸 실감했다. 모든 게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3번 시드를 받은 하태권-김동문 조는 폴란드-인도네시아 승자와 대결했다. 죽마고우는 기술 좋은 인도네시아를 꺾은 폴란드와 만난 덕택에 악재 속에서도 다음 라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운은 계속 이어졌다. 8강에서는 경험이 적은 중국을 만났고 점차 경기를 치르면서 두 사람의 경기력도 제 컨디션을 찾아갔다. 4강에서는 1번 시드 강자인 덴마크와 맞붙는 대진이었지만 초-중-고-대학 3년 후배인 김용현-임방언(현 KGC인삼공사 감독) 조가 16강에서 덴마크를 잡으며 비교적 쉽게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후배들이 덴마크를 이겨줬던 게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후배들이 대회 전 나온 대진표를 보고 한 달 내내 비디오를 보고 분석했다더라. 비록 다음 경기를 준비 못 해 패하긴 했지만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됐다. 결승에서 만난 건 1년 선배인 이동수-유용성 조였다. 강팀들을 모두 잡아주고 올라온 것이 우리에게 ‘천운’이었다. 선배들은 국내와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 붙은 적 있었다. 국제 대회에서 승률은 우리가 좋았기에 자신 있게 경기할 수 있었다. 솔직히 참가에 의미를 두고 출전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니 단상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 울컥했다.”

하태권 감독
한국 배드민턴 전설 하태권 요넥스 감독이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마친 뒤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oprtsseoul.com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금메달 딴 소년 “김동문은 내 은인”

사실 하태권 감독은 친구 덕을 본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김동문 교수의 권유에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하 감독은 죽마고우와 영광의 순간까지 함께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금메달 따게 된 거다. 김동문은 내게 은인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금메달 따고 큰 영광을 누릴 수 있던 건 김동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배드민턴을 시작할 때만 해도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였던 하 감독과 김 교수는 큰 두각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 감독은 심지어 5명의 동기 중 5번째였을 정도다. 소년체전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이었지만 두 사람은 후보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하 감독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어머니께서 운동 그만두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도 좋고, 지방에 살다 보니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게 너무 좋은 거다. 다른 종목 선수들은 간식 줘서 운동했다는데 난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게 좋았다. 부모님께 표면적인 이유는 운동이 좋다고 해서 운동한다 했지만 돌아다니는 게 좋았다.”

친구가 좋아, 돌아다니는 게 좋아서 계속한 운동이었지만 하 감독의 운동신경도 한 몫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키가 1년에 10㎝씩 자라 선수로서 본 궤도에 안착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 감독은 복식 뿐만 아니라 단식에서도 재능을 보여줬다. “지금도 김동문과 만나면 자주 다투는 것 중 하나가 학창시절 단식 랭킹이었다. 서로 1위였다고 기억한다. 확인하려면 고등학교 은사께 찾아가서 물어도 되고 당시 수기로 기록된 것도 찾아보면 가능하지만 우리 의가 상할 것 같아서 ‘그래 너 때문에 잘 됐으니까 한 번 더 참아주지’라고 웃어넘기고 있다. (웃음)”

하 감독이 죽마고우를 위하는 마음이 있는 건 그 역시 김 교수에게 받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1996 애틀랜타 대회 때 금메달을 따며 군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하 감독은 2000 시드니 대회 때 군 문제 해결을 위해 메달 획득이 시급했다. 하 감독은 김 교수와 1999년부터 남자복식 조를 이뤄 좋은 성적을 내며 군 문제까지 해결했다. “2000년 시드니 때 내가 메달을 따니 김동문이 눈물을 흘리더라. 그땐 잘 몰랐다. 나는 그냥 좋아서 입이 찢어졌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내 군 면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얘기하더라. 그게 가장 기뻤다고 말하더다. 그때 내가 모르고 있던 친구의 진심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더 각별하게 생각하게 됐다.”

하태권 감독
한국 배드민턴 전설 하태권 요넥스 감독이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윤소윤 인턴기자 younwy@sportsseoul.com

◇하태권 감독이 말한 한국 배드민턴의 현재

하태권 감독은 선수 은퇴 이후 배드민턴 국가 대표팀 코치로 2008 베이징 대회도 경험했고 실업팀 지도자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 배드민턴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한국 배드민턴을 바라봤을 때 안타까운 현실뿐이었다. 하 감독 때와 달라진 운동 환경과 정신력 등은 세계 무대에서 하락세 중인 한국 배드민턴의 입지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베이징 대회를 거치면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방식을 배우고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가르치다 보니 훌륭한 선수는 훌륭한 지도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더라. 훌륭한 선수는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 같다. 요즘 선수들은 우리 때와 아주 다르다. 부족함 없이 운동하기에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없다. 이런 건 국가대표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된 것만으로 만족하고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목표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흐름은 배드민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모든 종목에 걸쳐 달라진 문화와 환경에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흐릿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배드민턴은 최근 대회인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여자복식),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노메달 수모를 당했다. 의식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배드민턴이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던 건 성실함과 투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지금의 선수들은 이전과 비교해 이 부분이 많이 떨어지다 보니 국제 경쟁력을 잃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 선수들을 보면 운동을 즐기는 건 좋은데 힘든 건 안 하려고 한다. 생활체육 시장이 활성화되다 보니 선수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힘들이지 않고 생활체육 시장에서 운동을 가르치면 생활 여건이 더 나은 게 현실이다. 개탄스러울 뿐이다.”

하태권 감독
한국 배드민턴 전설 하태권 요넥스 감독이 소속팀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oprtsseoul.com

◇“제자들에게 기억 남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스승의 임무다. 하태권 감독 역시 제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있다. 다양한 스승이 있지만 제자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는 스승이 제일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하 감독 역시 제자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스승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요넥스를 맡은지 5년차인 감독이다. 아직 우승이 없어 우승도 시급하지만 선수들이 나를 오래 기억하는 스승이 되고 싶다. 선수 생활 끝난 다음 ‘그때는 힘들었어도 감독에게 잘 배웠다. 좋은 걸 배웠다’고 회상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내가 잔소리를 많이 하기에 선수들은 전화하는 걸 싫어하지만 요즘 은퇴하려는 선수나 은퇴한 선수들에게 자주 연락이 오더라. 나름 뿌듯했다. ‘감독 덕분에 성장했고 감독처럼 지도하고 싶다’고 얘기를 듣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puri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