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유해진 주연의 영화 ‘말모이’(엄유나 감독)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각색해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됐던 일제강점기에 말과 마음을 모아 우리말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과자에 까막눈인 판수(유해진 분)가 아들의 학비를 위해 한글을 뗀다는 조건으로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으로 취직하고, 조선어학회는 일본의 감시망을 피해 우리말사전 편찬을 앞두고 있는 모습으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다소 뻔할 수 있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지만, 여전히 힘이 있고 감정이 복받치는 이유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소재와 연기력이 뒷받침 되는 배우 덕분이다. 유해진도 영화를 결정한 이유로 “한 사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재밌고, 거기서 확장돼 영화적인 재미와 우리가 몰랐던 한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니까 좋았다.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더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유해진이 “의미”를 꼽아 말하듯 이 영화의 힘은 시대적인 배경이 주는 묵직함과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우리말을 지켜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라는 역할의 모습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유해진은 “그동안 배울 생각도 없던 한글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다른 결심을 하게 된 건 그 원천이 자식이었다. 학비를 마련하겠다고 거기에 들어간건데, 그렇게 무시를 받으면서 배우고 버틴게 첫째에 대한 미안함으로부터 시작된거다. 또, 첫째와 딸의 이름을 지켜내려고 더 우리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내가 한글을 지켜야되겠다고 큰 뜻을 품게 된건 아이들에게서 출발하는거다. 어느날 갑자기 한글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보다 자식때문에 했다고 하면 확 더 감정이 올것”이라고 말했다.

유해진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는 울컥 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데, 유해진에게 가장 울컥 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는 “(조선어학회 대표인)정환(윤계상 분)에게 ‘이제 그만 나와야겠다’ 말할때였다. 가장 힘들때 그런말을 하는게 미안했다. 물론 그 뒤에 편지를 읽고 하는 모습들에서는 모두가 다 그랬을텐데, 나는 특히 정환에게 미안했던 순간이 울컥했다”고 돌이켰다.

뿐만 아니라 유해진의 친근한 이미지가 관객들로 하여금 판수에게, 그리고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데 한몫한다. 이에 유해진은 “판수가 아버지로서 변화하는 모습은 한글을 깨치는 과정으로 많이 보여진다. 그 모습을 누구나 이해할수 있게, ‘처음 한글 배울때 저랬지, 저런 재미가 있었지’ 하며 관객들이 ‘무리다’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했다”고 자신의 연기 포인트를 설명했다.

그런 판수를 그린 유해진은 “판수는 화낼때 화내고 자기 감정대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다가도 “자기 혼자만의 감정일때는 그렇게 표현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좀 묻어두는 것 같았다. 그러다 그냥 실천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자신과 판수를 비교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부친상을 당한지 얼마 안돼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영화로 인해 더 도드라지는 듯했다. 그는 “나도 판수 같은 게 있다. 아버지가 얼마전에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에게 그런 감정표현을 못하다가 군대 갔다와서 좀 달라졌었다. 저에게는 그게 변화인데, 아버지에게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려고 노력했었다”라고 말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영화가 우리말사전 편찬을 소재로 해서인지 최근 국어사전을 샀다는 그는 “예전부터 사전을 좋아했다. 영어사전이든 국어사전이든 옥편이든”하면서 “이번에 산건 제 평생 사전으로 쓰려고 한다. 큰 걸 샀다. ‘이보다 더 큰 것 있나요?’ 하고 물으니 ‘그건 도서관용이에요’ 해서 ‘아 그래요’ 하고 나왔다”며 웃었다.

유해진

우리말을 지키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유해진이 남은 평생 쓸 사전을 샀다기에 요즘 유행하는 각종 줄임말과 신조어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유해진은 “변화하는 말들에 대해 다 나쁘다고 할건 아닌 것 같다. 그것도 다 흐름인 것 같고, 큰 틀안에 있는 흐름이라면 나쁘진 않은 것 같다”면서 “우리 어릴때도 우리들만의 은어가 있었다. 그중에 사전에 오르는 말도 있는거고, 국어 자체를 흔드는게 아니라면 어느정도 변화되는 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렇다고 줄임말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뒤쳐진다 생각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영화 홍보 등을 위해 어디 나가면 가끔 줄임말을 물어보는데 ‘모르겠는데요’ 하고 만다. 그 줄임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는 것 같다.” 또, “그냥 이슈와 재밌거리이지 그런 줄임말이 우리말을 해칠 수준이 될거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남다른 기획의 작품들이 많은 모습이다. 유해진은 “‘말모이’가 그 시작을 알리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cho@sportsseoul.com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