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 상처의 흔적을 가리고 싶어서, 사랑하는 반려견의 모습을 혹은 자녀의 첫 손편지를 기억하기 위해. 각자의 감정과 결심들로 몸에 기억을 새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타투를 받은 인구는 1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이제 타투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간직하는 하나의 예술 행위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현행법상 타투는 불법이고, 타투를 몸에 지닌 사람과 이를 행하는 타투이스트(문신사)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타투이스트이자 유튜버 '안리나(26)'도 이로 인한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타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길을 지나가다 욕설을 듣고 목욕탕, 워터파크 등에서 쫓겨나는 건 부지기수였다. '불량아' 취급을 받고 혐오적인 표현들과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던 그는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게 이젠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비난이 제겐 '폭설'처럼 느껴졌어요. 우산을 써도 우비를 입어도 막을 수 없는, 폭설이요. 하지만 이젠 스스로 견디는 법을 배운 거 같아요. 춥고 매서운 폭설이 오면 스스로 이글루를 만들어요."


최근 서울 이태원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안리나를 만났다. 팔다리와 가슴, 심지어 뒤통수까지 타투로 가득 메운 안리나의 모습에 시선이 쏠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강렬했던 등장보다 더욱 놀라운 건 안리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였다.


그는 문득 인터뷰 도중 자신이 직접 쓴 글이라며 에세이 한 편을 읽어줬다. 하늘을 보며 자신만의 감성을 오롯이 담아낸 '당신의 하늘'이란 글을 나긋이 읽어 내려갈 때마다 타투이스트를 '거친 사람' 혹은 '일탈'로 치부해버렸던 편견은 계속해서 산산 조각났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혔던 기자에게 고민 끝에 내놓은 그의 생각들은 참 깊고 감성적이었다.


Q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타투이스트 겸 유튜버 꿈나무 안리나입니다. 아, 주부이자 딸 유하의 엄마이기도 합니다.(웃음)


Q: 몸에 타투가 정말 많네요.


손바닥부터 두피까지. 세어보진 않았는데 몸의 70~80% 정도 있는 거 같아요. 얼굴을 제외한 온 몸에 꽉꽉 채울 예정입니다.(온몸)


Q : 타투 할 때 제일 아픈 부위는 어디였나요?


뒤통수랑 배요. 배는 숨을 참게 돼서 고통도 너무 심하고, 뒤통수 문신은 삭발하고 해야 하는데 드릴로 뚫는 느낌이에요. 너무 아파서 잠시 기절하기도 했어요.


Q : 고통이 어마어마 한데도 계속 타투를 하는 이유는 있나요?


타투를 좋아해서 하는 건 물론이고 주관적인 통증이긴 하지만, 손님에게 어느 부위가 어느 정도 아프다고 설명해드리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Q : 타투를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타투이스트를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배우기 시작한 건 20세 때부터고, 사람 몸에 그리기 시작한 건 21세부터예요. 원래는 꿈이 화가였어요.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또래보다 잘 그린다는 평가도 받았어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기도 했고, 남아선호 사상이 있었던 집안 환경 때문에 학원에 다니지 못했죠.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타투를 받은 걸 보고 거기서 딱 느꼈어요. '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사람 몸에 그림을 그려서 걸어다니는 전시회를 만들자'라고요. 지금은 아이를 낳고 일을 잠시 쉬고 있어요.


Q : 그렇군요. 그럼 크리에이터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이 보는 저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주변에서 제게 개그맨 시험 보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다고 해주는 친구도 많아서 크리에이터에 도전하게 됐어요. 2년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육아 문제 등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웠죠. 그런데 딸 유하를 낳고 아이와 관련된 동영상을 찍다 보니 예쁘게 편집해서 소장하고 싶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아이뿐만 아니라는 나 '안리나'라는 사람의 기록을 하고 싶어요.


Q : 나이가 어린데 아이가 벌써 두 살이네요.


연애 넉달 만에 아이를 임신했어요. 혼전임신이죠(웃음).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에 덜컥 겁이 났었어요. 당시 제 커리어와 관련된 일들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더욱 고민이 됐죠. 그런데 남편이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려진 걸 보자마자 '내가 책임질게'라고 태연하게 말하더라고요.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얼마 안 있어 혼인신고를 했죠. 남편이 항상 타투이스트란 제 직업을 지지하고 응원해줘요. '남들은 너를 보면 문신을 먼저 보지만, 난 너를 보면 네 문신이 안보여'라는 고백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어요.


Q : 새롭게 기획하고 있는 영상이 있나요?


육아에 대한 영상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들 장난감이나 이유식 등 리뷰를 콘텐츠로 담아보고싶어요. 또 문신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 문신 도안 짜는 법 등도 영상으로 찍고, 꼭 문신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쉽게 그리는 법도 구독자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어요.


Q : 타투이스트로는 언제 복귀할 계획인가요?


빠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하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장르가 '블랙 앤 그레이'라는 장르인데 그림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장르라 요즘 그림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요.


길고 무섭고 지루한 시간인데, 견뎌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타투이스트란 일을 '내가 즐거우니까'란 단순한 이유로 했지만, 이제는 실력적으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아이가 큰 다음에도 제 직업에 대해 설명해주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또 시부모님께서 최근부터 제 문신을 이해해주기 시작하셨으니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Q : 타투가 이전보다 보편화되긴 했지만 아직 문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잖아요. 남들의 시선이 불편하지는 않나요?


불편하죠. 누려야 할 권리를 못 누릴 때도 많은데 일부 사람들은 '당신들은 불법으로 시술하는 사람이니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다'라는 식으로 말해요. 지나가는데 욕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신고를 당한 경우도 비일비재해요. 물론, 문신이 몸에 가득한 사람을 피하거나 싫어하는 건 이해해요. 취향의 차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거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혐오 표현은 큰 상처가 돼요.


Q : 본인 외모에 대한 평가나 악플로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스무살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시작해서 팔로우가 20만 명까지 된 적이 있어요. 초반에는 댓글이 전부 다 욕이었어요. 이전까지는 타투이스트들이 본인들 만의 바운더리 안에서 활동했는데, 이렇게 대중 앞에 공개한 타투이스트는 제가 처음이었던 거예요.


당시엔 그 악플들이 제겐 '폭설'처럼 느껴졌어요. 우산을 써도 우비를 입어도 막을 수 없는, 폭설이요. 무겁고 힘들고 춥고 외로웠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 덕에 용기를 얻어 타투를 해본다', '리나 씨로 인해 문신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등 응원이 이어지고 악플도 점점 선플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제 악플은 제게 '진눈깨비' 같아요. 오면 오는 거고, 와도 금방 녹아버리는 허상 같은 느낌이에요. 우울증을 치료 중인데 가끔 악플들이 무겁게 폭설처럼 다가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젠 오래 안 가요. 폭설이 오면 이글루를 만들면 되고, 언젠가는 진눈깨비로 바뀐다는 걸 아니까요.


Q : 우리나라에서 타투는 불법(의사에게 받아야 합법)이에요. 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법이란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 타투이스트로서 생각은 어떤가요?


몰려오는 쓰나미를 막을 순 없어요. 국내 타투이스트만 2만 명이 넘고, 타투를 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알고 있는데, 무조건 불법이라고 규제만 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료법을 재정비해서 해외처럼 타투이스트에게 라이선스를 따게 한다던가, 정기적으로 위생 점검을 나선다던가 하는 대안이 시급해 보여요.


Q : 마지막으로, 안리나에게 '타투'란 무엇인가요?


그냥 저요. 타투란 안리나 그 자체인 거 같아요. 26세의 안리나도, 육아하는 엄마의 모습도 저이듯, 타투도 그냥 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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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ㅣ정하은 기자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