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였죠"…레전드 스포츠스타들이 기억하는 스포츠서울 그때 그시절[창간특집]
  • 입력 2019-06-20 11:00
  • 수정 2019-06-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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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용수 김대령 윤소윤기자] 1985년 6월 22일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떼는 발걸음 하나, 하나가 곧 한국 체육의 역사였다. 80년대 프로스포츠가 시작되고 대중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한 당시 본지는 스포츠가 대중의 생활 일부분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스포츠 현장의 많은 이야깃거리를 전했다.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등을 비롯해 세계 무대에서 선전한 한국 체육의 든든한 토양이 되어준 미디어가 바로 스포츠서울이었다.

스포츠서울은 창간 32주년이던 2017년11월부터 현역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레전드들을 직접 찾아가는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 총 66명의 전설들을 만났다. 축구 유상철, 송종국, 야구 양준혁, 마해영 뿐만 아니라 농구 우지원, 배구 장윤창, 탁구 유남규, 레슬링 심권호, 테니스 이형택, 봅슬레이 강광배, 씨름 이태현, 육상 장재근, 컬링 이슬비, 루지 성은령 등 우리 기억 속에 찬란했던 선수들의 근황을 전했다. 스포츠서울이 만난 많은 스포츠 스타들은 선수 개인의 역사와 함께했던 ‘스포츠서울’에 얽힌 특별한 추억을 갖고있었다. 그들에게 스포츠서울의 과거의 미래를 물었다.
박찬숙

박찬숙 WKBL 경기운영본부장이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스포츠서울의 시작을 기억하는 스포츠 스타

박찬숙 WKBL(여자프로농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은 농구대잔치가 시작된 지난 83년 이전부터 아시아 무대를 평정하며 한국 여자 농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당시 박찬숙 본부장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언론은 종합지를 제외하면 일간스포츠 뿐이었다. 농구대잔치가 시작되고 85년 본지가 창간하면서 보다 깊숙하고 전문적인 스포츠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짝반짝했다”며 당시 막 창간한 본지를 기억한 박찬숙 본부장은 “스포츠지가 생기면서 박찬숙도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당시는 스포츠가 핵심이 돼서 이야기가 전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스포츠서울 덕분에 박찬숙이 전면에 나올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스타가 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박찬숙

태평양화학에서 뛸 당시 박찬숙(맨 앞). (스포츠서울DB)


박찬숙 본부장은 ‘무적함대’로 불리던 태평양화학에서 활약하다가 85년 3월 은퇴했다. 88년 대만 진출 이후 92년 국내로 돌아와 다시 태평양화학에서 코치 겸 선수로 뛴 박 본부장은 96년까지 코치로 활약했다. 그 시절 박 본부장은 본지와의 특별한 인연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골프, 농구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전문 기자로 30여년간 활약하면서 본지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故 이병진기자(2016년 작고)를 기억했다. 박 본부장은 “너무 끈질기다 못해 집요할 정도로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히 했다. 어린 그때는 너무 싫었다. 오죽하면 취재하러 오면 반가워하지 않고 째려보기도 했다. 지금와서 보면 ‘박찬숙’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팬들에게 전하려고 열심히 했던 것이다. 집요하게 취재를 많이 한 덕분에 기사가 많이 나왔다”라며 “그렇게 지내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 (이병진기자의) 결혼식도 찾아가 축하해줬다”라고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유남규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탁구단 감독. 이용수기자

88 서울올림픽에서 탁구 초대 챔피언에 오른 유남규 여자 탁구대표팀 감독 역시 본지를 특별하게 기억했다. 유 감독은 “스포츠서울에서 탁구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준 덕분에 좋은 기억을 지니고 있다. 당시 일간스포츠와 양대산맥이었다. 대회가 있으면 항상 (스포츠서울 기자가) 취재와서 함께 식사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최근 10년 사이 탁구장에서 얼굴을 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심권호

심권호 대한레슬링협회 이사. 이용수기자

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96 애틀란타올림픽, 98 방콕아시안게임, 2000 시드니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서 연이어 레슬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심권호 LH공사 인천지역본부 경영지원부장은 본지를 ‘하나의 낙’이라고 기억했다. 심 부장은 “스포츠지가 많이 없을 당시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 당시 우리들의 이야기가 스포츠서울을 통해 전해지면 그걸 보는 맛에 운동했다. 당시 내가 태릉선수촌에서 지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신문 배달을 담당했다. 지금은 휴대전화로 간편히 기사도 읽고 만화도 보지 않느냐. 그 당시에는 배달하면서 소식을 훑어 보고 연재만화를 보는 재미, 그게 운동하는 낙이었다”고 떠올렸다.

특히 심권호 부장은 레슬링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 본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심 부장은 “내가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 희망을 줬다. 나를 북돋아 주는 희망적인 기사를 많이 써줬다. 그런 기사들이 나를 더 열심히 운동하도록 도왔다”고 기억했다.

유상철 인천 감독, 선수단 상견례 및 첫 훈련 지도 나서 (3)

유상철 인천유나이티드 감독. 제공 |인천유나이티드

2000년대 초반은 스포츠서울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였다. 2002년에는 공 하나로 세계인 모두가 즐기는 월드컵이 국내에서 열렸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본지는 푸른 잔디 위를 누비는 선수들의 소식 그리고 거리응원전을 펼치며 온국민이 붉은 악마로 하나가 됐던 뜨거운 축구 열기를 전했다. 2002 월드컵 전사였던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본지를 “가장 친숙한 신문”으로 기억했다. 유 감독은 “신문으로 스포츠 소식을 접하던 과거, 스포츠서울을 항상 끼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스포츠서울은 스포츠지의 선구자 같은 역할을 했다. 내 선수 시절을 함께하고 나와 함께 발전해온 신문이라는 생각에 애착이 크다”라며 “부모님께서는 내가 신문에 나오면 항상 기사를 오려 스크랩했다. 집에 아직도 그 기사들이 남아 있다. 신문이 내 역사에 기록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영광의 순간을 기억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말한 스포츠서울의 미래

지난 34년간 스포츠서울은 멈춤 없이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달리고 있다. 당대 스포츠 스타들을 주목하는 한편, 한국 체육의 미래를 걱정하며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유 감독의 딸 유예린(11·청명초5)처럼 스포츠 스타 2세로서 부모의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다만 종이 신문에서 웹으로 다시 모바일로 뉴스를 접하는 창이 바뀌어가면서 본지의 영향력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건 현실이다. 유 감독은 “휴대전화로 기사를 읽으면서 신문은 점점 잊혀져 간다. 현장의 젊은 선수들은 스포츠서울을 잘 모른다. 다양한 종목, 선수들을 조명해주면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남겼다.
많은 스타들은 스포츠서울을 기억하는 공통의 키워드로 ‘전통’을, 앞으로 스포츠서울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키워드로 ‘관심’과 ‘꾸준함’을 꼽았다. 34주년을 맞은 스포츠서울은 과거의 영광을 함께 했던 스포츠 스타들의 조언을 새기며, 앞으로 또 다른 레전드 스포츠스타의 탄생을 돕는 ‘스포츠 미디어의 산실’로서 새로운 도약을 약속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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