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비선수 출신\' 한선태, KBO리그 첫 등판 역사
LG 한선태가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 KBO리그 LG와 SK의 경기 8회초 무사 데뷔 첫 등판을 하면서 밝게 웃고 있다. 한선태는 고등학교 때까지 등록 선수로 뛰어본 적이 없는 ‘비선수’ 출신으로 군 복무 뒤 사회인 야구와 2017년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 2018년 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활동했다. 25일에는 ‘비선수’ 출신으로 KBO리그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2019. 6. 25. 잠실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잠실구장에서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불과 2년 전까지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야구를 관람하던 야구팬이 당당히 프로구단 유니폼을 입고 잠실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입단 반 년 만에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쓰게 된 한선태(25)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으나 위기를 극복하며 실점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2019년 6월 25일은 한국야구에 새 역사가 기록된 날이다. 학창시절 야구부 활동이 전무한 LG 사이드암투수 한선태가 KBO리그 최초의 비선수출신 1군 무대 경험자가 됐다. 과거 롯데가 육상선수 출신 서말구를 영입했으나 서말구의 1군 출장 기록은 전무했다. 한선태는 8회초 마운드에 올라 17개의 공을 던지며 1이닝 1피안타 무실점했다. 직구 최고구속은 144㎞를 기록했고 커브와 포크볼을 섞었다. 첫 등판부터 자신의 구종 세 가지를 모두 던졌고 두 개의 땅볼을 유도해 마운드를 지켰다.

투구 밸런스가 다소 흔들렸고 마음대로 제구가 되지 않았다. 투구 메커닉 또한 왼발을 들기에 앞서 오른발부터 살짝 드는 굉장히 생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첫 타자 이재원에게 던진 직구가 우전안타로 연결됐지만 다음 타자 안상현을 2루 땅볼 병살타로 잡았다. 김성현에게 몸에 맞는 볼로 다시 출루를 허용했으나 후속타자 고종욱을 상대로는 몸쪽을 파고드는 완벽한 공을 던져 1루 땅볼을 만들었다. 고종욱에게 던진 마지막공이 이날 한선태 데뷔전의 하이라이트였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다. 한선태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보고 야구팬이 됐다. 당시 임창용의 투구를 따라했고 야구부에도 지원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야구부 입단에 실패했다. 그러나 한선태는 야구공을 놓지 않으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난 2년 동안 한국과 일본 독립리그에서 사이드암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지난해 8월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10구단 전체에 관심을 받았다. 한선태가 140㎞ 중반대 구속을 기록하자 각 구단 관계자가 한선태의 이력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비야구인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달 드래프트에서 LG가 10라운드 전체 95순위에서 한선태의 이름을 호명하며 한선태는 꿈에 그렸던 프로진입을 이뤘다.

이날 경기에 앞서 한선태는 “갑작스럽게 모든 게 빨리 진행됐다. 당초 목표는 2군 올스타전과 시즌 후 마무리캠프 참가였다. 이렇게 1군에 올라온 만큼 이제는 최대한 오랫동안 1군에 남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리고 한선태는 모두가 주목한 첫 경기에서 무실점 피칭을 하면서 새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이날 잠실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한선태의 공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내며 한선태의 도전을 응원했다.

한선태모자
6월 25일 잠실구장에서 데뷔전을 치른 한선태가 경기 후 자신의 모자에 써넣은 문구를 보여주고 있다. 한선태의 모자에는 ‘やればできる’(하면된다)는 문구가 써 있다. 한선태는 지난해 일본 독립리그에서 뛸 때 코치들의 권유로 모자에 이 문구를 적었고 제구가 안 될 때마다 모자를 보면서 제구를 다잡았다고 했다. | 윤세호기자 bng7@sportsseoul.com

경기 후 한선태는 “솔직히 투구 내용이 전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긴장했던 것 같다”고 미소지으며 “이재원 선수에게 안타를 맞은 후 투구 밸런스가 무너져 계속 볼을 던졌다. ‘큰일 났다’ 싶었는데 지난해 일본 독립리그에서 했던 것처럼 모자에 써 놓은 문구를 봤다. 이후 밸런스가 잡혔고 무실점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엉망인 경기였지만 마지막에 고종욱 선수에게 던진 몸쪽 공이 잘 들어간 것은 그나마 괜찮았다”고 이날 경기를 돌아봤다.

이어 그는 “2년 전 잠실구장 외야석에서 지인들과 응원하며 야구를 봤는데 어느새 마운드까지 올랐다. 사실 당시 야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과 마주했다. 파주 챌린저스에서 뛸 때였는데 회비를 내기 위해 부모님께 손 벌릴 명분이 없었다. 야구를 포기하려했지만 같이 뛰던 형들이 ‘네가 나중에 벌 돈을 생각하면 지금 회비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용기를 줬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군 첫 등판부터 경기 후 투구 영상을 꼼꼼히 챙겨보는 게 루틴이 됐다. 이날 경기도 돌아볼 부분이 정말 많을 것 같다”면서 “고칠 게 많은 만큼 나아질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집에 들어가서 영상 하나하나 확인하고 고쳐가겠다. 최일언 코치님도 변화구를 던질 때 투구폼 차이가 크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또 하나 배우면서 더 나아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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