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2000년생 여자 복싱 기대주 김채원. 제공 | 인천시청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사실 멀리 있는 꿈은 잘 꾼다. 현재에 충실하며 도전하고 싶다.”

‘여자 복싱 기대주’ 김채원(20·인천시청)은 국가대표 간판 오연지(30·인천시청)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한국 복싱은 이전보다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고 내부 파벌 다툼 등으로 휘청거릴 때도 이처럼 진실한 노력으로 성장한 이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여자 51㎏급 강자인 김채원은 고등학교 시절 국내에 적수가 없는 1인자였다. 고교부가 겨루는 전국대회 시상대 정중앙은 늘 그의 차지였다. 김채원이 한국 복싱을 이끌 ‘괴물’ 소리를 들은 건 고1 시절인 지난 2016년이다. 당시 여자 복싱은 선수 저변이 부족한 관계로 전국체육대회 일반부 경기에 고교 선수도 출전했다. 덕정고에 재학 중이던 김채원은 당시 전국체전에 나서 쟁쟁한 선배 사이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뽐내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당시엔 (전국체전 입상한 게) 대단한 것인지 잘 몰랐는데 주위에서 큰 관심을 보이더라. 자신감을 품게 됐고 이후 고교 시절 출전한 대회는 거의 다 우승했다”고 말했다.

김채원은 지난해 대통령배 전국시·도복싱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무난하게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이밖에 러시아에서 열린 콘스탄틴 코로트코프 메모리얼 대회에 출전하는 등 국제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는 “확실히 시니어 무대는 다르더라. 고교 시절엔 힘이 특출나거나, 체력이 좋은 선수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시니어 무대는 모든 게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순간 판단력이 좋아야 하는데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화하면서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복싱 글러브를 낀 사연은 흥미롭다. 김채원은 “네 살 어린 남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한테 맞고 들어왔다. 동생이 워낙 내성적이었는데 보호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함께 파주 교하에 있는 복싱 체육관을 찾았다. 그런데 관장께서는 오히려 내 재능을 보시더니 ‘복싱 제대로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셨다”고 웃었다. 그저 취미로만 생각하다가 생활체육 대회 등에 출전한 그는 남다른 운동 능력을 발휘하며 정식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그는 “복싱부가 있는 덕정고에 입학했는데 중간에 해체가 됐다. 이후 체육관에서 개인 훈련하면서 기량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시니어 무대를 향하는 과정에서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는데 고교 시절 그의 기량을 눈여겨 본 인천시청 레이더망에 포착돼 실업 무대에 뛰어들게 됐다.

인천시청엔 김채원이 롤모델로 여기는 오연지가 몸담고 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2연패(2015 2017) 주역이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오연지와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김채원에겐 커다란 자산이다. 그는 “연지 언니는 정말 성실하다. 초반 시니어 무대에서 곧바로 잘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벽이 느껴졌을 때가 있었다. 그때 연지 언니가 ‘지금 네 나이에 맞게 하고 있다. 사람은 때가 있으니 스스로 믿음을 갖고 운동하라’고 조언해줬다. 너무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오연지는 내달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있다. 그 역시 훗날 오연지의 뒤를 이어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다만 멀리 있는 꿈을 잡으려 하기보다 지금처럼 하루하루 스스로 떳떳하게 운동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제 갓 20대에 들어선 김채원의 꿈이 영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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