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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검증된 스토리, 두터운 고정팬 덕에 드라마 시장에서 ‘리메이크’ 열풍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일드’(일본 드라마)를 넘어 웹드라마를 각색한 드라마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최근 영국 인기 원작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작품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지금까지 영국 리메이크는 수사물이나 장르물에 한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5년과 2017년 방영된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JTBC ‘부부의 세계’가 서양과의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 고무적이다. ‘부부의 세계’는 방송 한달 만에 시청률 20%(닐슨코리아 전국기준) 벽을 가뿐하게 넘었다. 이혼으로 끝나는 듯 했지만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가 지선우(김희애 분)에 대한 복수를 예고하며 더 치열해진 2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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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닥터 포스터’는 주인공 제마 포스터의 심리를 따라 휘몰아치는 전개로 당시 영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본국에서도 평균 시청자 수가 1000만 명이 넘으며 그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로 꼽혔다. ‘부부의 세계’는 원작 속 빠른 전개와 심리적 긴장감은 그대로 살리고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인간관계와 심리 묘사를 더해 개연성을 강화했다. 여기에 모완일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신 구성과 김희애표 섬세한 감정 연기가 힘을 더하며 신드롬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처럼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에는 장르적 장점을 강조하면서 국내 정서를 고려한 각색이 관건이다.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재구성이 필요한 것. OCN ‘라이프 온 마스’(2018)는 동명의 BBC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수사물로 ‘타임슬립’을 소재로 차용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스토리라인으로 주목도를 높였다. 연쇄살인범을 쫓던 원칙주의 두뇌파 형사 한태주(정경호 분)가 증거,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육감파 형사 강동철(박성웅 분)과 만나 펼치는 복고 수사극을 그린 한국판 ‘라이프 온 마스’는 원작의 틀은 유지하면서 캐릭터와 배경을 한국화해 디테일을 잡았다.
영국 BBC 드라마 ‘루터(Luther)’를 원작으로 한 MBC ‘나쁜 형사’(2018~2019)는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마의 아슬아슬한 공조 수사를 다루며 10%대의 시청률로 흥행에 성공했다. ‘루터’의 이드리아스 엘바를 ‘나쁜 형사’에선 ‘우태석 형사’로 분한 신하균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내며 잔혹한 범죄 리얼리티를 완성했다.
영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분명한 만큼 간극을 줄이지 못해 외면받은 사례도 있다. 비밀을 가진 네 여자와 그들에 얽힌 남자들의 뒤틀린 관계를 다룬 미스터리 관능 스릴러 OCN ‘미스트리스’는 원작 속 불륜과 살인 등 파격적인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며 19금으로 편성됐으나, 현지화에 실패하며 1%대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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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BBC 원작 드라마들이 줄지어 출격을 예고해 ‘부부의 세계’ 이후에도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BBC의 인기 드라마 ‘언더커버’가 올해 안방극장을 찾아올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원작은 영국 최초 흑인 여성 검찰총장 후보에 오른 변호사 마야가 20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밝혀지는 정치적 음모를 다룬다. 리메이크작에서는 이미연과 지진희가 주연 물망에 올랐고, ‘또 오해영’ ‘뷰티 인사이드’의 송현욱 PD가 지휘봉을 잡으며 현재 JTBC 편성이 논의 중이다. 또한 BBC 시트콤 ‘엉클’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제작을 논의 중이다. 백수 삼촌과 12살 조카의 이야기를 다룬 유쾌한 뮤직 드라마로, 박지숙 작가가 극본을 집필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스토리의 세계화’가 도래했다. OTT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동양과 서양의 드라마 경계도 사라지는 추세다. ‘킹덤’ 시리즈가 넷플릭스를 통해 서구권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예전엔 마니아층에 한정됐던 영국 드라마마들도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정서와도 맞닿으며 대중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며 “최근 들어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많아졌다는건 그만큼 한국의 드라마 제작 수준이 서구권의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셜록’ 시리즈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것에서 볼 수 있듯 영국 드라마(영드)는 추리와 수사, 스릴러 등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이 ‘부부의 세계’를 통해 또 한 번 확장하며 ‘영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봤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BBC 스튜디오, JTBC·MBC·OCN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