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이강인. 강영조기자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이제 더는 ‘희망 고문’을 견딜 수 없다.

스페인 라리가 발렌시아에서 충분히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고심이 큰 ‘골든보이’ 이강인(19)은 올여름 유럽 커리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한 마디로 ‘모 아니면 도’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 국제적 재능을 공인받은 그는 당시 대회 직후 라리가 내 팀은 물론 유럽 5대 리그 주요 팀으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2018~2019시즌 1군 데뷔 첫해 정규리그에서 교체로만 ‘3경기 21분’을 뛰는 데 그친 그는 성장의 가속페달을 밟기 위해 임대 이적을 적극적으로 노렸다. 하지만 싱가포르 출신의 억만장자로 불리는 피터림 구단주를 비롯해 구단 임원진은 가치가 상승한 이강인을 주력 요원으로 키우기를 바랐다. 이강인은 사실상 팀 내 입지 변화를 기대하고 잔류했다. 그러나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이 구단과 충돌해 물러난 데 이어 유스 선수 활용에 뜻을 뒀던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도 성적 부진 속에서 결국 한정된 자원을 활용했다.

이강인이 올 시즌 현재까지 그라운드를 누빈 건 라리가 15경기(선발 2회) 363분이 전부다. 코파델레이(컵대회·2경기)와 챔피언스리그(5경기)를 포함해도 614분이다. 한 경기 90분 풀타임으로 환산하면 7경기도 채 되지 않는 출전 시간이다. 특히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바야돌리드와 홈경기에서 후반 막판 왼발 결승포로 2-1 신승을 이끈 뒤에도 여전히 선발진에 합류하지 못하는 건 현재 이강인이 처한 현실을 느끼게 한다. 한국 나이로 이제 만 스무 살에 불과한 그는 조급한 마음에 거친 플레이가 나오며 올 시즌 두 번이나 퇴장당하는 등 자제력을 잃은 모습도 노출됐다. 그만큼 정신적 피로가 급상승한 듯하다.

결국 이강인은 최근 발렌시아와 재계약을 거절, 새 시즌 새 둥지를 찾는다는 현지 보도가 지속하고 있다. 팀 내 입지와 미래를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물이 놓여 있다. 그는 발렌시아와 1군 프로 계약을 맺을 때 8000만 유로(1099억 원)의 바이아웃을 매겼다. 이게 결국 족쇄가 된 모양새다. 아무리 이강인의 재능을 높게 산다고 해도 유럽 내에서 10대 선수에게 이 정도 금액을 지급할 팀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건 여전히 ‘임대 이적’이다. 최근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 등도 이강인에 관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프랑스 ‘90min’도 14일 ‘(리그1) 마르세유가 출전 시간 확보를 노리는 이강인을 영입 리스트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다만 라리가 사정을 잘 아는 한 에이전트는 “발렌시아가 내년 유로파리그 출전까지 불발되면 대대적인 개혁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며 “구단주 애초 뜻대로 어린 선수 위주로 재편이 예상되는데 당연히 이강인 잔류를 강력하게 원하면서 여러 제안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임대를 원하면 (2022년 6월까지인) 현 계약을 연장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이강인을 붙잡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강인의 확고한 결심과 표현이 중요해졌다. 발렌시아에 남아 한 번 더 생존경쟁을 할 것인지, 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전달해 어떻게 해서든 새 둥지를 틀 것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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