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하동=정다워 기자] “당황했다.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삼성화재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지독한 불운을 겪었다. 지난시즌 정규리그 6위에 자리한 삼성화재는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7위 KB손해보험이 비예나와의 재계약을 선택했고, OK금융그룹은 레오와의 손을 놓았기 때문에 삼성화재는 가장 높은 확률로 1순위 지명권을 확보해 여러 선택지를 손에 넣은 것처럼 보였다. 요스바니와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지명 상황에 따라서 다시 손을 잡는 그림도 그렸다.
‘구슬의 신’은 삼성화재를 외면했다. 삼성화재는 무려 여섯 번째로 밀리는 지독한 불운을 겪었다. 13일 경남 하동 훈련 캠프인 켄싱턴리조트에서 스포츠서울과 만난 삼성화재의 김상우(51)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리다. 그는 “정말 당황했다. 트라이아웃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했던 경우의 수에서 너무 크게 벗어났다”면서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누군가를 지명해야 했다. 우리가 검토한 대로 논의해 최상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선택한 선수가 우리카드에서 뛰던 마테이다. 마테이는 부상으로 후반기에 이탈하기 전까지 26경기에서 공격성공률 51.17%로 평균 25.7득점했다. 폭발력이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이면서 성실한 플레이로 우리카드 고공행진에 힘을 보탰다. 가장 큰 장점은 범실이 적다는 사실이다. 지난시즌 경기당 평균 공격 범실은 3.46회, 서브 범실은 2.92회에 불과했다. 요스바니가 4.22회의 공격 범실, 5.69회의 서브 범실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마테이는 우리 리그를 잘 알고 득점력도 괜찮은 선수”라며 “지난시즌 요스바니가 정말 잘해줬고 폭발적인 경기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의존했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범실이 많기도 했다. 안정감 있는 마테이가 왔으니 아시아쿼터 파즐리와 균형감 있는 좌우 공격을 구사할 생각이다. 파즐리는 실력도 그렇지만 인성도 좋은 선수 같다. 지명 후 단상에 올라와 ‘고맙다’라고 정중하게 말하더라. 그런 선수는 처음 봤다. 정말 잘해서 다음에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나오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란 출신 파즐리는 지난시즌 아시아쿼터 에디보다 높이, 힘, 공격력 등 모든 면에서 몇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스바니에 의존했던 지난시즌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마테이가 30~40%, 파즐리가 30% 정도의 공격을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이다. 국내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블로커가 나머지를 채우면 지난시즌보다 나아질 수 있다”라고 확신했다.
친정 삼성화재에서 치르는 세 번째 시즌. 김 감독은 더 나아지는 모습을 약속했다. 김 감독은 “경기장에서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경기를 하는 게 목표다. 서로 딱 들어맞는 조직력을 갖춰야 한다”라며 “봄 배구 목표를 잡지 않으면 힘이 빠진다. 목표는 높게 잡고 가야 한다”라며 지난시즌 아쉽게 놓친 플레이오프 티켓을 향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삼성화재는 남자부 팀 중 선수 연봉을 가장 적게 쓰는 팀이다.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약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감독은 베테랑의 안정감을 토대로 젊은 선수가 성장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명확하다. 김 감독은 “우리가 약하다고 남들이 우리가 지는 걸 인정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새 시즌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중심을 잘 잡으면서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 전력이 더 탄탄해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다음시즌 잘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남자부 7팀 중 무려 5팀이 외국인 감독으로 2024~2025시즌을 치른다. 국내 지도자의 ‘위기’라는 목소리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김 감독은 “얼마 전 한국전력 권영민 감독과 식사하며 대화했다. 우리가 잘해야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 한국전력은 외국인 감독이 있는 팀보다 전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외국 감독은 현재 성적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어린 선수 육성, 성장까지 신경 쓰는 입장이다.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며 국내 지도자의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