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분명 코미디는 아닌데 웃기다. 동시에 그래서 슬프고, 기괴하다. 25년 만에 재회한 배우 이병헌과 박찬욱 감독이 ‘어쩔수가없다’로 비극적인 코미디를 그려냈다. “웃길수록 좋다”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주문이었고, 이병헌은 그것이 주무기인 배우다.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제지 회사에 재직했던 만수(이병헌 분)가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미국 소설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가 원작이다.

국내 관객과 만나기 전 ‘어쩔수가없다’는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서 글로벌 관객에게 선보였다. 잘 만든 영화는 늘 그렇듯 국가와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한다. 이병헌이 바라본 ‘어쩔수가없다’도 그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장마다 반응이 다르잖아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웃음 포인트가 달라요. 저희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빵빵’ 터지는데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아마 만수의 처지 때문이 아닐까요? 저런 짓까지 저지를 거란 생각을 못 한 거죠.”

만수의 처지. ‘어쩔수가없다’는 주인공 만수가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25년간 재직했던 회사에서 ‘토사구팽’ 된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한 명씩 제거해간다. 지극히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그만큼 만수에게 있어선 ‘어쩔수없는’ 선택인 셈이다.

“저는 만수를 연기해야 하니까 무조건 응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라는 이병헌은 그런 만수의 선택을 이해했다. 다소 극단적인 만수의 방식에 감정 이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평생을 바쳐온 업이고, 여우 같은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토끼 같은 두 자녀가 있으니 작품의 영제처럼 만수의 살인은 ‘노 아더 초이스(NO OTHER CHOICE)’다.

이병헌은 “저는 이 영화가 커다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객은 일련의 사태가 있었음에도 모든 것이 봉합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에게만큼은 비극”이라며 “만수가 죽이는 인물은 모두 자기와 닮아있다. 그 인물들을 죽여나갈 때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해석했다.

남편의 만행을 눈감아주는 미리의 모습은 결국 만수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정이 파괴됐음을 일깨워준다. 만수도, 이를 연기한 이병헌의 입장에서도 ‘비극’이다.

여기에는 박찬욱 감독 표 블랙코미디가 녹아있다. 당초 외화로 제작 예정이었던 ‘어쩔수가없다’는 1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며 지금의 한국 영화가 됐다. 영어 버전의 대본을 봤을 당시 이병헌의 소감은 “현실감이 없네”였다. 한국의 정서와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후 각색 작업을 거쳐 지금의 대본이 됐다.

“그제야 현실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캐릭터도, 상황도 한국에 맞춰져 있으니까요. 감독님께 ‘이거 웃기는 거죠?’ 여쭤봤더니 ‘웃기면 웃길수록 좋지’ 하셨어요. 감독님과 저의 유머결은 조금 달라요. 물론 웃음 적중률은 제가 감독님보다 조금 더 높죠.”

이병헌은 이번 작품을 통해 ‘공동경비구역 JSA’(2000) 이후 25년 만에 박찬욱 감독과 재회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작이 망한 감독과 배우’의 위치였다. 잃을 게 없던 두 사람이 만나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었고, 지금은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기댈 수 있는 분이죠. 인생의 큰 형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영화계의 큰 버팀목이에요. 제가 작품이 고민스러울 땐 가장 먼저 물어보는 좋은 형입니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