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칵테일(사보이 ‘아메리칸 바’)에도, 불길한 숫자 ‘13’에 얽힌 전설(사보이 ‘캐스퍼’)에도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호텔은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인 실화가 가득한 공간입니다.
‘원성윤의 인생은 여행처럼’을 통해 감각적인 여행의 순간을 포착해 온 원성윤 기자가, 이번에는 ‘호텔의 역사’로 시야를 넓힙니다. 전설적인 호텔에 얽힌 매혹적인 인물과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여행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을 선사할 것입니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1889년 빅토리아 시대 런던 템스강변에 문을 연 사보이(The Savoy) 호텔. 이곳은 하룻밤 묵어가는 단순한 숙소 그 이상이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에게는 템스강의 변화무쌍한 빛을 담아내는 ‘캔버스’가 되었고, 윈스턴 처칠에게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점심을 즐기던 ‘아지트’였다. 평범한 숙박 시설이 어떻게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전설’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까.
시작은 오페라 제작자 리처드 도일리 카트였다. 그는 자신의 ‘사보이 극장’을 찾은 부유한 관객들이 공연의 감동을 이어갈 화려한 ‘경험의 연장’을 원했다. 미국 여행 중 최신식 호텔에 감명받은 그는 “런던에서 가장 화려하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결심했다.


사보이는 ‘최초’라는 수식어로 런던을 충격에 빠뜨렸다. 런던이 가스등 아래 있을 때, 호텔은 1000개가 넘는 전구로 대낮처럼 밝혔다. ‘떠오르는 방(엘리베이터)’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무엇보다 혁명적인 것은 전 객실에 설치된 ‘개인 욕실’. 냉온수가 콸콸 나오는 욕조가 방 안에 있다는 것은, 공용 욕실이 당연하던 시절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사치였다.
최고의 하드웨어는 당대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끌어들였다. ‘셰프의 왕’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이곳에서 ‘페슈 멜바’를 탄생시켰고, ‘아메리칸 바’는 런던 최초로 미국식 칵테일을 선보이며 사교계의 심장이 다. 클로드 모네는 5층 객실에 머물며 창밖의 안개 낀 템스강 풍경을 70여 점의 화폭에 담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곳에서 스캔들을 일으켰고, 처칠은 단골이었으며, 마릴린 먼로부터 비틀스까지 수많은 스타가 이곳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설은 신비로운 이야기로 완성된다. 1898년, 13명의 만찬에 참석한 재벌 울프 조엘이 “13명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을 무시했다가 몇 주 후 피살당했다. 이후 사보이는 13명의 파티에 ‘14번째 손님’으로 직원을 합석시켰고, 1926년부터는 턱시도를 차려입은 검은 고양이 조각상 ‘캐스퍼(Kaspar)’를 그 자리에 앉혔다. 캐스퍼는 지금도 냅킨을 두르고 풀코스 요리를 대접받는 사보이의 가장 특별한 VIP다.
호텔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 시대의 기술, 욕망, 예술, 그리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교차하는 ‘무대’다. 런던 사보이는 그 모든 ‘특급 호텔’의 장대한 서막을 열었고,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