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글·사진 | 신안=원성윤 기자] 인생의 맛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그저 짜다고, 혹은 달다고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여운이 삶의 진짜 맛일 것이다. 수많은 섬이 보석처럼 박힌 신안, 그중에서도 증도에 발을 디딘 것은 어쩌면 그 ‘맛’의 근원을 만나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으로 찾은 태평염전은, 광활한 대지가 주는 압도감과 혀끝을 감도는 의외의 달콤함으로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깨우는 곳이었다.
◇ 광활한 대지, 혀끝에 맺힌 ‘달콤한’ 소금


눈앞에 펼쳐진 태평염전의 첫인상은 ‘광활함’ 그 자체였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아니더라도, 하늘과 땅을 반으로 가른 듯 펼쳐진 염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캔버스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밭은 바람과 햇볕이 빚어내는 대자연의 공방(工房)이다.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염전 위로 하얀 소금꽃이 피어나는 풍경은, 고된 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마치 하나의 대지 예술처럼 다가왔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맛’에 있었다. 염전에서 갓 채취한 천일염을 손가락에 살짝 찍어 맛보았다. 혀를 톡 쏘는 강렬한 짠맛 뒤로, 거짓말처럼 은은한 단맛이 고개를 들었다. ‘소금이 달다’는 형용모순 같은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과 청정한 자연이 만들어낸 이 ‘달콤한 끝맛’은, 우리가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들던 정제염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의 맛이었다. 역시, 본질은 달랐다.
◇ 소금이 예술을 품다, ‘스믜집’의 창작 열기



태평염전이 놀라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거대한 소금 공장이 ‘예술’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염전 한편에 자리한 ‘스믜집’. 이름마저 몽환적인 이곳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이다. 짠 기운 가득한 염전 한가운데서 예술가들은 어떤 영감을 얻을까.
최근 이곳에 머무르며 전시를 연 전희경 작가는 그 영감의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는 증도 갯벌에서 “인천 갯벌과는 다른,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강렬한 힘”을 느꼈다고 말한다.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을 넘어, 작가는 갯벌을 직접 채취해 여러 번 곱게 거른 뒤 아크릴 미디엄과 섞어 물감처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갯벌의 물성을 작품의 재료로써 직접 가져온 것이다.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종이와 종이를 ‘실’로 엮은 부분이다. 전 작가는 이를 ‘순환’의 의미로 설명한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가며 갯벌이 땅이 되었다가(드러났다가) 다시 바다에 잠기는(없어지는) 현상. 그는 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거대한 순환의 느낌을 ‘실을 엮는 행위’로 표현했다.
소금밭을 거닐며, 혹은 소금창고에 머무르며 자연의 순환을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산물(소금, 갯벌)과 인간의 창작물(예술)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짭조름한 노동의 현장이 창의적인 예술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 태평염전은 소금뿐만 아니라 ‘영감’을 생산하는 거대한 밭이었다.
◇ 짠 기운으로 속을 채우다, ‘소금치유센터’의 시간


여행의 마무리는 ‘소금치유센터’에서의 특별한 휴식이었다. 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일상의 소음과 긴장이 일순간에 멈추는 듯했다. 미세한 소금 입자가 떠다니는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짠 기운이 코와 폐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속을 정화하는 기분이다.
단순히 ‘쉰다’는 개념을 넘어 ‘치유’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소금은 바다의 노폐물을 걸러내듯, 우리 몸 안에 쌓인 피로와 독소를 씻어내는 듯했다. 소금의 짠맛이 실은 정화와 회복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는 순간, 이번 여행이 왜 그토록 남다르게 느껴졌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 신안 태평염전에서 나는 짠맛 속에 숨겨진 단맛을, 광활한 자연 속에 싹트는 예술을, 그리고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치유의 시간을 만났다. 인생이 팍팍하고 짜게만 느껴질 때, 그 뒤에 숨어있을 달콤한 끝맛을 찾아 이곳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인생은, 결국 그 ‘단짠’의 조화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행이니까.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