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해낼 수 있을까…시노래 1000곡의 김창훈, 첫 솔로 콘서트로 새 역사 열다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산울림의 멤버이자 작곡가, 화가, 그리고 스스로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라 부르는 ‘종합예술인’ 김창훈이 시노래 1000곡 완성후 첫 솔로 콘서트를 성대하게 마쳤다.
숫자만으로도 벅찬 프로젝트의 결산이었지만, 공연장을 채운 공기는 ‘기념’보다는 ‘환대’에 가까웠다. 제목 그대로, 필경 환대가 되는 밤이었다.
공연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는 지난 15일 서울 강남 거암아트홀에서 열렸다. 객석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무대는 심플했지만, 그의 기타와 노래, 그리고 시노래 25편이 극장을 빈틈없이 채웠다. 시인 25명의 언어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투사됐고, 동시에 김창훈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김창훈은 23편의 시노래와 산울림 시절 자신의 곡 ‘독백’, ‘회상’까지 총 25곡을 통째로 암송하며 불렀다. 인문포럼 ‘지니어스 테이블’의 김덕준은 이 장면에 대해 “25편의 시 가사를 토씨 하나 틀림없이, 단 한 줄의 프롬프트 없이 모두 암송하며 노래했다. 그 방대한 언어의 울림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어떤 마음으로 시와 대화해 왔을지를 생각하면 경외감마저 들었다”고 감탄했다.
김덕준은 또 이날 무대를 “시와 음악, 그리고 한 인간의 깊은 영혼이 하나로 엮여 흐르는 장대한 여정”이라고 표현하며 “각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자신의 목소리와 음률로 여과 없이 전달해냈다. 그 시가 가진 리듬과 정서를 후렴구까지 완벽히 맞춘 작곡은 ‘해석’이자 ‘공감’ 그 자체였다”고 높이 평했다. 단지 곡을 붙이는 차원을 넘어, 시인의 언어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하는 능력이 무대 위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는 감탄이다.
특히 그는 김창훈을 “시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시의 여백을 자신의 감성으로 채우는 화가”라고 표현하며 “눈을 감으면 시 속 장면이 펼쳐지고, 눈을 뜨면 무대 위 한 사람이 ‘시·음악·그림’이라는 예술의 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고 논평했다. 공연장을 나온 뒤에도 오래 남는 잔향은 “시 한 편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예술과 인생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깊은 감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콘서트는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 연가곡 형식으로 이어졌다. 한 곡이 끝나도 박수는 없었고, 뒤편 스크린에는 시 전문과 김창훈의 회화 작업이 교차했다. 관객은 눈으로는 시와 그림을 오가고, 귀로는 선율을 따라가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김덕준의 말처럼 ‘시·음악·그림이라는 예술의 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성이 공연의 골격을 이뤘다.
김창훈은 이번 무대를 위해 4년 동안 ‘한 시인, 한 노래’라는 원칙을 지켜 시노래 1000곡을 완성했다. “시노래 1000곡을 하려면 1년에 250곡, 주 5일 빠짐없이 해야 된다”고 말해온 그는 “처음부터 1000편을 목표로 했다면 엄두가 안 났을 숫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이 무모한 도전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시를 “글로 된 보석”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예술관에서 비롯됐다.
이날 무대는 김창훈의 현재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완선과 2인 미술전 ‘Art beyond Fame’을 열어 추상화와 구상화를 병렬 전시했으며, 음악·글·그림을 넘나드는 행보는 더 이상 수식이 아닌 실체가 됐다.

공연 중간에는 형 김창완도 등장했다. 김창완은 고 김창익을 떠올리며 신곡을 기타와 카주 연주에 맞춰 들려준 뒤, 산울림의 명곡 ‘어머니와 고등어’를 불렀다. 두 형제가 한 무대에서 나누는 순간은 공연장을 조용한 추억으로 물들였다.
‘독백’과 ‘회상’이 흘러나오자, 중장년 관객들 얼굴에는 오래된 학창 시절이 스치듯 번졌다. 한 칼럼니스트는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어쩌면 ‘길을 걸었지…’로 시작하는 ‘회상’을 되뇌었을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시노래 1000곡 프로젝트는 한국 대중음악사와 문학사를 동시에 건드리는 작업이다. 시인 1000명의 언어에 각각 멜로디를 붙였고, 일부는 앨범 ‘당신, 아프지마’로 묶였다. 또 시인 23명의 산문을 엮은 시에세이집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를 출간하며, 시가 음악으로 재탄생한 과정을 기록했다.

김창훈은 “가장 축복받은 건 나”라며 시의 언어와 대면한 시간이 자신의 예술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다음 계획 또한 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전국에 시인과 작가들의 문학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싶다”며 “지자체와도 연계해 문화 거점들을 연결하는 시노래 투어를 준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시의 유익함과 노래의 아름다움을, 책장이 아니라 공연장과 문학관에서 관객과 나누겠다는 구상이다. kenny@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