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원로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배우 김나운, 김영철, 박상원, 이무생, 이원종, 유동근, 유인촌, 유태웅, 원기준, 최수종, 정태우, 정일우, 정준호, 정동환, 정준하, 방송인 장성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사회와 약력 보고는 배우 정보석이 맡았다. 정보석은 2009∼2010년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고인의 사위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

이날 정보석은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고, 선생님은 제일 앞에서 큰 우산이 되어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추모사는 배우 김영철과 하지원이 낭독했다. 김영철은 동양방송(TBC) 탤런트 후배로, 2011년 KBS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아 김종서 역할인 고인과 호흡을 맞췄다. 하지원은 2012년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고인과 함께 연기했으며, 평소 고인의 팬을 자처해왔다. 이순재는 지난해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팬클럽이 생겼다며 하지원이 회장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원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재 선생님.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의 보내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 올 것만 같다. ‘더킹 투 하츠’를 통해 선생님을 처음 뵀고, 선생님은 늘 조용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저를 지켜봐 주셨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작품 앞에서는 정직하게, 사람 앞에서는 따뜻하게, 연기 앞에서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겠다. 이 자리는 선생님의 연기를 사랑해 온 후배들과 대중의 마음이 함께 모인 자리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긴 여정에 누를 끼치지 않는 후배가 되도록 늘 노력하겠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깊이 기억하겠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철은 “선생님은 우리에게 연기의 길을 보여주셨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신 분이다.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다. 작은 끄덕임 하나가 우리 후배들에게는 늘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다. 선생님이 어느 날 저에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절대 만만치가 않다. 항상 겸손하고, 늘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울림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저와 많은 후배들은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감사했고, 존경한다. 그리고 정말 많이 그리울 거다.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라고 덧붙였다.

영결식이 마무리된 뒤에도 슬픔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김나운은 상주 곁에서 손수건을 여러 번 들어 올렸다. 정준하는 눈가를 붉힌 채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하지원 역시 끝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연신 눈물을 훔쳤다.

운구차가 천천히 장례식장을 빠져나가자 후배 배우들은 줄지어 서서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떠나는 차를 향해 마지막까지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고인에 대한 애틋한 존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편 고인은 지난 25일 새벽 별세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영화·무대·예능을 넘나들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약해왔다. 지난해 10월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뒤 연극에서 하차하고 회복에 힘써 왔으나 끝내 영면했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이산’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등 대표작만 140편이 넘는다.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도 따뜻한 존재감을 뽐내며 세대를 아우른 사랑을 받았다.

이순재는 1991년 정계에 입문한 뒤 1992년 14대 총선에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서울 중랑 갑 지역구에서 당선,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연극 무대에도 애정을 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청기와집’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게트’ ‘우리 읍내’ ‘춘향전’ ‘빠담빠담빠담’ ‘세일즈맨의 죽음’ ‘돈키호테’ ‘앙리 할아버지와 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리어왕’ 등에 참여 했다.

이순재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올해 8월 건강 악화로 재활 치료를 받는다고 알린 바 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