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나 오주임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지금 주임님 되게 더럽고 꾀죄죄한데, 근데 이뻐요.”
여운이 깊다. tvN 드라마 ‘태풍상사’가 최고 시청률 10.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종영했다. 단순한 IMF 극복기가 아니었다. 철없던 아들 강태풍(이준호)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핵심은 직원들을 “우리 가족들”이라 불렀던 선대 사장이자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을 깨달으며, 강태풍이 ‘태풍상사’의 가장(家長)으로 거듭나는 서사였다.

‘태풍상사’가 기존 청춘 성장극과 궤를 달리한 지점은 로맨스의 활용이다. 극 중 강태풍과 오미선(김민하)의 러브라인을 가벼운 흥밋거리로 치부하지 않았다. 잡무를 맡던 경리 오미선이 위기 때마다 보여준 프로페셔널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은 강태풍의 성장에 있어 결정적인 밑거름이었다. 즉, 오미선을 향한 강태풍의 감정은 사랑과 동경의 복합체로 작용했다. 그녀와의 사랑은 강태풍이 진정한 어른이자 사장으로 자라나는 직접적인 동력이 된 셈이다.
이러한 절묘한 주제 의식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준호, 김민하의 완벽한 연기 호흡이 있었다.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격랑의 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성장과 사랑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지켜준 ‘태풍의 눈’과 같았다.

이준호는 강태풍 역을 통해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 폭을 한층 확장했다.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 로코 드라마 ‘킹더랜드’에 이어 ‘태풍상사’까지 완벽하게 흡수하며 배우 인생의 정점으로 향하게 됐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이준호가 표현한 성장 과정은 매우 단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반의 가벼운 목소리와 태도는 회사가 어려움을 딛고 일어날 때마다 점차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로 변모했다. 단지 감정을 쏟아내는 기법이 아닌, 캐릭터의 감정을 차근차근 쌓아 올린 이준호의 치밀한 전략이 엿보이는 결과였다.

김민하는 오미선 역을 통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가 지닌 힘을 증명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연기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표정 변화와 눈빛으로 오미선의 내적 갈등과 IMF 시대 속 ‘K장녀’의 현실적 역경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오미선의 흔들리지 않는 강단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두 배우의 연기력이 가장 빛을 발한 지점은 로맨스 신이었다. 이준호, 김민하의 로맨스 장면은 마치 대본 없이 실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자연스러운 호흡이 도드라졌다. 이들이 대사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 덕분이다.

이준호는 능글맞으면서도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고백했고, 김민하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에게 떨리면서도 망설여지는 감정의 교차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감정이 무르익는 장면이 마치 실제로 동료에서 연인으로 나아가는 듯한 설렘을 안긴 이유다.
특히 여타 드라마의 극적이고 화려한 로맨스와 달리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연인 같은 사랑이었기에, 도리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준호, 김민하의 내공 있는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존재할 수 없던 강태풍과 오미선이었다. roku@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