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국가대표 출신 스포츠 레전드들도 야구 앞에서는 초보였다. 첫 연습경기에서 0-36이라는 믿기 힘든 스코어를 찍었다. 그러나 여자 야구단 블랙퀸즈가 한 달 만에 몰라보게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이며, 침체된 한국 여자야구에 작은 희망을 던졌다.

2일 방송된 채널A 스포츠 예능 ‘야구여왕’ 2회에서는 김민지·김보름·김성연·김온아·박보람·박하얀·송아·신소정·신수지·아야카·이수연·장수영·정유인·주수진·최현미 등 각 종목 국가대표·프로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국내 50번째 여자야구단 블랙퀸즈의 첫 연습경기와, 한 달 뒤 첫 정식경기 장면이 연이어 전파를 탔다.

블랙퀸즈의 첫 상대는 여자야구 최강팀 리얼 디아몬즈였다. 여자야구 국가대표 출신만 8명이 포함된 팀과의 맞대결은, 말 그대로 ‘극과 극’ 현실 점검이었다. 1회 초 공격에서 블랙퀸즈는 2사 후 송아가 2루타를 뽑아내며 창단 첫 안타를 기록했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으며 득점에는 실패했다.

진짜 문제는 수비 이닝에서 시작됐다. 선발 투수 장수영이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상대 팀은 연속 도루를 성공시키며 블랙퀸즈 배터리를 흔들었다. 장수영이 삼진을 잡고도 낫아웃 규칙을 몰라 타자를 살려보내는 장면에서는 선수들이 “낫아웃이 뭐야?”라며 멘붕에 빠지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도루 저지, 중계 플레이, 베이스 커버 등 야구의 기본 전술을 익힐 시간조차 없었던 탓에 실책과 볼넷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과는 1회에만 27실점. 아웃카운트 3개를 잡는 데만 1시간 30분이 걸리는 악몽 같은 이닝이었다. 투수를 아야카로 교체한 뒤에도 흐름은 바뀌지 않았고, 2회 7점, 3회 2점을 더 허용해 스코어는 어느새 0-36까지 벌어졌다. 허리 통증을 호소한 장수영의 상태와 투수진의 체력을 고려한 추신수 감독은 결국 심판에게 경기 중단을 요청했고, 블랙퀸즈의 첫 연습경기는 3회도 채우지 못한 조기 종료로 끝났다.

추신수 감독은 “경기가 아니라 기합받는 느낌이었다. 집중력이 너무 떨어진다”고 냉정하게 평가했고, 단장 박세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오늘로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며 “정식 경기까지 남은 한 달을 성장의 시간으로 만들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국대 출신 선출들에게도 야구의 벽은 이렇게 높았다.

충격적인 첫 패배는 곧 훈련 강도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블랙퀸즈 선수들은 새벽 6시에 경기장으로 출근해 밤늦게까지 훈련을 반복했다. 외야 펑고, 내야 수비, 중계 플레이, 런다운 상황 대처, 기본기 투구 훈련까지, “수비부터 바로잡자”는 추신수 감독의 지시에 따라 야구의 ABC를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 이어졌다. 리틀야구단과의 연습경기로 실전 감각도 쌓으며 한 달 뒤를 준비했다.

한 달 후, 블랙퀸즈는 완전히 다른 팀의 얼굴로 첫 정식경기에 나섰다. 상대는 2024년 전국 여자야구대회 17위에 오른 경찰청 여자야구단. 올림픽·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포함된 탄탄한 전력에 선수들은 “쉽지 않다”, “긴장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연습한 만큼만 나오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에 이날 경기부터 ‘3패 시 선수 1명 방출’이라는 냉정한 룰이 적용되면서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후공을 택한 블랙퀸즈의 마운드에는 다시 장수영이 올랐다. 첫 연습경기에서 난조를 보였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첫 타자를 4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운 데 이어, 두 번째 타자까지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달라진 피칭을 선보였다.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 이선희에게 첫 안타를 허용했지만, 이어진 도루 시도 상황에서 1루수 박하얀과 유격수 주수진의 콤비 플레이로 도루 저지에 성공, 1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어진 1회 말 공격에서는 경찰청 선발 이선희의 제구 난조를 놓치지 않았다. 주수진, 박하얀, 송아가 연속 볼넷을 골라내며 무사 만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경찰청이 에이스 김청진을 긴급 투입하며 흐름 차단에 나선 가운데, 블랙퀸즈 4번 타자 신소정이 타석에 들어서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장면에서 2회차 방송은 마무리됐다. 0-36 참패를 당하던 팀의 첫 공식 경기에서 만들어낸 무사 만루 찬스는 그 자체로 ‘성장 서사’의 한 장면이었다.

프로야구의 인기와 달리 여자야구는 오랜 기간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야구여왕’은 첫 방송 직후 TV·OTT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 상위권에 오르고, 1회 풀버전이 유튜브 100만 뷰를 돌파하는 등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시청자들은 “야구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자야구단이 진짜로 생기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국대 출신 선출들조차 한순간에 무너뜨린 야구의 높고 복잡한 벽. 블랙퀸즈는 그 앞에서 처참하게 주저앉는 대신, 다시 새벽 그라운드로 걸어 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0-36이라는 스코어는 치욕일 수 있지만, 동시에 여자야구 부활을 향한 첫 페이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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