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자극적인 15초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숏폼’과 ‘챌린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대중은 더 강렬한 도파민을 찾아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숨 가쁜 속도전 속에서, 묵직한 ‘3분의 서사’로 엔터테인먼트의 심장부를 뚫어냈다. 바로 11년차 가수 화사다.
화사의 신곡 ‘굿 굿바이(Good Goodbye)’의 파급력이 심상치 않다. 지난 10월 발매 이후 두 달 만에 미국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43위에 진입했다. 이는 화사의 2019년 솔로 데뷔 이후 해외 차트 최고 성적이다.
영어 가사로 범벅된 전략적 수출용 곡도 아니며, 억단위 규모로 진행된 글로벌 프로모션 결과도 아니다. 오직 한국어 가사에 담긴 절절한 감성 하나로 이뤄낸 ‘순도 100% 역주행’이다. 지난 3일 론칭한 ‘빌보드 코리아 핫 100’ 차트 1위 역시 당연하게 가져갔다.

기적 같은 역주행의 본진은 지난달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였다. 뮤직비디오처럼 화사는 이날도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화사의 곁에는 뮤비를 함께 찍었던 배우 박정민이 있었다. 곡이 후반부로 흐를 때쯤 빨간 구두를 들고 나타난 두 사람은 춤을 추듯 연기했다.
이별을 앞둔 남녀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이 박정민의 눈빛과 화사의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시상식장은 순식간에 한 편의 뮤지컬 무대로 변모했다. 마치 영화의 엔딩과도 닮았다. 완벽한 마무리 후 사라진 화사를 대신해 수줍게 카메라를 보다 “구두 가져가”라며 찢어지는 목소리로 작은 웃음을 남긴 박정민의 코믹 연기는 ‘쿠키 영상’의 맛도 살렸다.
최근 가요계의 성공 공식은 ‘15초의 자극’에 맞춰져 있다.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는 외면받고, 뇌를 자극하는 챌린지용 구간 반복만이 난무하고 있다. 화사와 박정민은 보란 듯이 비틀었다. 짧은 자극 대신 긴 호흡의 ‘이야기’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사 한 마디 없었지만, 두 사람이 보여준 ‘행복한 이별’ 서사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 팬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도파민이 아닌, 인간 본연의 감성을 자극하는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인위적인 바이럴 마케팅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증명하는 사례다. K팝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와 K배우의 연기력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가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잘되는 건 따라 하고 보는 국내 연예계 특성상 유명 배우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자연스럽다.
요란한 마케팅 없이 진심을 담은 서사로 국경과 플랫폼을 넘었다. 오묘한 손놀림에 담긴 우아한 이별이 전 세계를 관통했다. 도파민 중독의 시대, 점차 무의식마저 통제당하며 자아를 잃어가는 것에 위기도 못 느끼는 요즘이라, 화사가 맨발로 써 내려간 역주행 드라마가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