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이어온 뜨거운 여정…커튼콜까지 열광

이유 있는 명장면 뒤 복선…결핍과 성장 ‘오즈의 마법사’

웃다가 울게 되는 샤워장에 숨겨진 비밀

8월23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평범한 삶을 바라는 것은 시대와 지위,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사건과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린다. 창작 뮤지컬 ‘그날들’​은 바로 그 보편적인 삶과 기억, 인간관계를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

‘그날들’은 고(故) 김광석의 명곡을 새롭게 편곡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시대를 관통하는 명곡들은 단순한 넘버가 아니다. 익숙한 멜로디는 인물들의 감정과 맞물리며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 짙은 여운을 동시에 안긴다.

작품은 1992년과 2022년 청와대 경호실로 오가며 미스터리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구성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우정과 사랑, 희생과 그리움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다. 두 시대를 연결하는 서사는 자연스럽게 ‘그날’의 의미를 되짚는다.

장유정 작·연출은 작품의 생명력에 대해 “영화나 드라마는 재방송이나 리메이크로 가능하지만, 공연은 지속성이 필요하다”며 “소재보다 중요한 건 결국 주제다. 10년이 지나도, 그 이후에도 관객에게 끝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3년 만에 돌아온 ‘그날들’의 일곱번째 시즌은 ▲‘정학’ 역 엄기준·류수영·최진혁·김정현 ▲‘무영’ 역 박규원·윤시윤·산들·유선호 ▲‘그녀’ 역 이지수·박새힘 등이 이끈다.

◇ ‘165분 순삭’ 무대가 움직이고 객석이 뛰었다

‘그날들’​은 대극장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대 연출과 스케일로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회전무대를 비롯한 다채로운 무대 전환은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슬픔과 분노, 사랑과 그리움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작품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파워풀한 밴드의 라이브 연주가 더해져 밀도 높은 공연의 감동을 선사한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래 속 깊이 있는 가창, 절도 있는 군무 역시 작품의 서사를 더욱 깊이 있게 완성한다. 특히 대규모 앙상블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그날들’만의 대표 볼거리다. 국가행사를 연상케 하는 태권도와 검도, 아크로바틱 등 무술 중심의 역동적인 군무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더불어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진 합창은 감동의 전율을 선사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커튼콜이다. 배우들과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무대 위 또 하나의 공연으로 이어진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는 순간은 ‘그날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공연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방방 뛸 체력과 목청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공연장 전체를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그날들’은 뮤덕(뮤지컬 마니아)은 물론 처음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작품의 이야기를 채우는 김광석의 감수성 짙은 노래들은 공연 내내 웃음과 눈물을 끌어낸다. 부모님과의 추억 여행은 물론 맘껏 웃고 실컷 울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 작품 속 숨겨진 비밀…‘오즈의 마법사’의 진짜 의미

작품 속엔 관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상징적 장치가 숨어 있다.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가 열릴 때 정학과 무영, 그녀는 ‘그녀의 방(영빈관)‘에서 오직 세 사람만의 영화관을 만든다. 이때 보여지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인물들의 서사를 대변한다.

장 연출은 “해당 장면에 익숙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음악을 담고 싶었다”라고 운을 띄었다. 장 연출은 고민 끝에 ‘버찌의 계절’을 선택했고, 그 위에 ‘오즈의 마법사’를 입혔다.

작품 속 통역사인 ‘그녀’는 말을 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말과 글 사이에서 공허함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 실어증을 겪었던 설정 역시 결핍과 연결된다.

장 연출은 ‘오즈의 마법사’ 역시 결핍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뇌를 원하는 허수아비, 용기를 찾는 사자, 심장을 갈망하는 양철 나무꾼처럼 저마다 부족함을 안은 인물들이 도로시와 함께 여정을 떠나며 성장한다. 이는 운명 속에서 상처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정학과 무영, 그녀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결핍과 성장은 대칭적이다. 장 연출은 “친구와 연대해서 가는 여정”이라며 “도로시를 중심으로 걸어가는 허수아비, 사자, 양철 나무꾼처럼 정학과 무영, 그녀가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공유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의 대표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가 품은 그리움과 희망의 정서는 작품 전반의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장 연출은 “작품은 두 개의 ‘그날들’의 어긋남과 맺혀진 인생을 풀어가는 여정을 전한다. 인물들은 ‘그날들’을 그 시대의 기억 속 가장 찬란하고도 아픈 날로 기억한다”라고 덧붙였다.

◇ 샤워 장면 뒤 숨겨진 이야기 “오늘도 살아남았다”

‘그날들’​의 신스틸러는 앙상블이다. ‘근날들’이라고 불리는 앙상블은 남다른 피지컬로 완성한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매 장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작품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절도 있는 움직임과 강한 에너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또 하나의 서사를 구축한다.

1막에서 미리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앙상블의 진가는 2막에서 더욱 빛난다. 2막에 등장하는 파격적인 샤워장 장면은 ‘그날들’을 대표하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하루 임무를 마친 경호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웃고 장난치는 모습은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 이면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경호원의 숙명이 담겨 있다.

극 초반 “모든 훈련은 죽기 위한 연습이다”라는 대사는 해당 장면에서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샤워장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라는 안도감과 내일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각오가 교차하는, 경호원들에게는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다.

장 연출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제 청와대 경호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마가 반짝반짝하고 반듯해 ‘잘 깎아놓은 알밤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엔 슬픈 사연이 있다. 경호원들이 이렇게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이유는 ‘오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정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연출은 경호원들의 대답을 듣고, 이들의 삶과 책임감을 작품에 녹여냈다.

무대 위 앙상블 역시 높은 완성도를 위해 스스로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화려한 몸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발차기와 액션, 군무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춘 배우들이 끊임없는 연습과 운동을 통해 지금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기억을 김광석의 음악에 담아낸 ‘그날들’은 오는 8월 23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