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무섭노”

리센느 원이가 무의식적으로 던진 이 말이 불씨가 됐다. 사투리인가, 일베(일간베스트)식 혐오 표현인가. 문법 논쟁은 무의미하다. 국어학자들조차 ‘~노’의 활용엔 이견이 갈린다. 핵심은 화자의 의도다. 과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할 악의가 있었느냐다.

상황은 단순했다. 유튜브 ‘납량특집’ 콘텐츠였다. 으스스한 배경에 PD가 먼저 “무섭노”라고 뱉었다. 원이는 “무섭노”라며 맞장구를 쳤다. 원이는 거제도 출신이다. PD의 억양 역시 짙은 경상도 베이스였다. 놀란 상황에서 튀어나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고향 말이다. 악의적 밈과 사투리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에 자체 검열을 강화해야만 하는 제작 현장의 고충은 깊이 공감하지만, 원이의 발언이 정치적이라는 주장은 무리한 측면이 짙다.

지나친 트집은 왜 발생했을까. 켜켜이 쌓인 혐오의 역사 때문이다. 혐오를 즐기는 자들은 십 년간 故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해 왔다. 혐오를 조직적으로 부추긴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마치 영화 ‘파묘’처럼 정신의 뿌리를 파괴하려한 일제강점기 일본의 추악한 행태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역시 오랜 정신의 뿌리를 흔들려는 시도인 셈이다.

혐오를 즐기는 자들은 맥락 없는 단어에 억지로 ‘~노’를 붙이며 언어를 오염시켰다. 또 은밀하고 교묘했다. 최근 웹툰 ‘김부장’ 속 “5분 23초” 대사와 ‘Rock owling(부엉이 바위)’ 간판이 겹친 논란이 대표적이다. 불쾌감을 지적하면, 늘 “사투리인데 왜 그러냐” “정치적 의도가 아니다”며 대중을 기만했다.

피해자의 분노는 응축돼 있었다. ‘표현의 자유’란 방패 뒤에 숨은 혐오 세력을 단죄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가 기름을 부었다. 5.18에 불거진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광주제일고를 향한 배재고 야구단의 혐오 조롱, 정치권 내홍에서 파생된 혐오 표현의 확산까지, 이러한 일베식 조롱에 반감을 가진 자들의 울분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 폭발한 분노가 애꿎은 원이에게 오조준된 셈이다. “모든 갈등은 사회적 구조에서 출발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원이의 ‘무섭노 사태’는 사회적 갈등과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낳은 슬픈 사건이다.

하지만 힘없고 어린 아이돌에게 맹폭을 가하는 건 정의가 아니다. 과도한 검열은 고인을 모욕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故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동서 화합’과 지역주의 타파를 부르짖었다. 맹목적인 마녀사냥은 고인의 뜻과도 완벽히 배치된다.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진짜 혐오 세력과 삶의 언어를 쓰는 이는 구분해야 한다. 일베를 혐오한다면서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무고한 이의 입을 틀어막는다면, 그것이 곧 지는 것이다. 똑같은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른다. 그리고 더 현명하게 분노해야 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