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매혹시킨 바이올리니스트…천재인가, 악마인가?

한 줄 바이올린에 ‘숨멎’…7분 라이브가 남긴 전율

8월3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를 따라다닌 수식어다. 하지만 뮤지컬 ‘파가니니’는 시작부터 이 별명이 얼마나 잔혹한 오해였는지를 보여준다. 무대 위에 선 그는 악마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고, 그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은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거짓이었다.

‘파가니니’는 19세기 유럽 전역을 매혹시킨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삶을 바탕으로 그의 영광과 몰락을 교차시키며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위인전이 아니라, 한 시대가 천재를 어떻게 소비하고 버렸는지를 그려낸 심리극에 가깝다.

작품은 권력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과 소문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군중 속에서 파가니니가 점점 고립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은 결국 그의 삶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안식마저 빼앗는다. 공연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가짜뉴스와 마녀사냥, 집단적 편견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파가니니가 24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무대 위에서 천상과 죽음을 오가는 연주를 시작한다. ‘파가니니’ 역 콘(KoN), 홍석기, 홍주찬이 그의 연주를 대신한다. 이들과 함께 ‘루치오 아모스’ 역 김종구·김경수·윤형렬, ‘콜랭 보네르’ 역 이준혁·황민수·조훈·이승준, ‘아킬레’ 역 신수빈·이세헌·박주혁, ‘샬롯 드 베르니에’ 역 유주연·안리나 등이 무대에 오른다.

◇ 거짓 소문이 천재를 죽였다…다시 증명한 예술의 힘

실제 역사 속 파가니니는 상상을 뛰어넘는 연주로 수많은 음악가의 찬사를 받았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그의 연주를 듣고 “나는 파가니니의 아다지오에서 천사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라고 극찬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공연 도중 감탄을 금치 못해 기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심지어 관객들은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유령들도 그의 연주에 춤췄다는 설이 있겠는가.

‘파가니니’는 당대 상상을 초월하는 재능으로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상징적인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한다. 동시에 천재를 향한 경외와 두려움이 어떻게 악의적인 소문으로 변질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즉, 단순히 천재 음악가의 일대기를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 편견과 질투, 거짓이 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비춘다. 240여 년 전 파가니니에게 씌워졌던 ‘악마’라는 낙인은 시대가 달라진 지금도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 클래식과 뮤지컬의 경계 허문 액터뮤지션

‘파가니니’의 백미는 ‘액터뮤지션’이라는 형식이다. 배우들은 연기와 노래를 넘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극을 이끈다. 특히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콘과 홍석기, 그리고 작품을 위해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다는 홍주찬은 고품격 라이브 연주로 작품의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1막 마지막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모든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에 단 하나의 줄만 남은 상황에서 연주되는 ‘악마의 연주Ⅱ(Variations in the G Starting on Rossini’s ‘Moses’)’는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명장면이다. 실제 한 줄 바이올린 연주는 관객을 숨죽이게 만들고, 파가니니가 왜 전설로 불리는지를 단번에 증명한다. 더불어 2막의 마지막 장면까지 펼쳐지는 신들린 선율은 뮤지컬을 보는 동시에 클래식 리사이틀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 질투가 만든 괴물…천재를 죽인 묵직한 경고

‘파가니니’의 무거운 주제와 장르로 인해 어렵게 받아들이는 관객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보면 어떨까? 동양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 구도가 여전하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선’으로 보느냐인데, 둘 다 ‘악’의 시점이 언제이냐에 따라 논리는 바뀐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을 논쟁이다. 선천적과 후천적 규범을 따지기 전에 시기와 질투, 거짓 선동 등으로 인해 추악한 인간의 단면은 계속해서 드러날 것이다.

작품은 설명보다는 음악과 무대로 뇌리를 자극한다. 빛과 어둠의 양면적 삶을 차갑고 어두운 검푸른 파도색의 조명, 360도 회전 무대로 그의 삶을 표현한다. 악랄한 시기와 질투로 인해 천재 음악가가 끝없이 추락하는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파멸로 몰아넣는 과정의 빛과 움직임은 한 예술가의 외롭고 처참했던 시간을 따라간다. 소문은 의심이 되고 거짓을 낳는 인간의 욕망은 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구는 돈다(정확히는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돌고 돌지만, 또 한편으로는 파가니니의 천재성을 결국 인정하게 된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이렇듯 무대는 진실과 거짓, 영광과 몰락이 끊임없이 뒤바뀌는 파가니니의 운명을 상징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인물 서사의 깊이

파가니니의 삶을 단순히 비극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사회에서 외면당한 천재 예술가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고난의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

아들 아킬레는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모스는 혼돈에서 벗어나 양심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베르니에는 파가니니를 끝까지 믿는 음악적 뮤즈로 남으며 차가운 이야기 속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파가니니는 “나는 끝까지 파가니니로서 연주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벼랑 끝에서도 예술가로서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이 한마디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세상이 무엇이라 말하든 진정한 예술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강렬한 록 사운드와 수준 높은 라이브 바이올린 연주, 묵직한 서사가 어우러진 ‘파가니니’는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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