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학원도 못 간 연극부 출신의 프로 성장기

10년 무명 배우가 던진 일침 “쉽게 생각할 직업 아냐”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화려한 수식어보다 ‘배우’라는 한 단어로 기억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있다. ‘스타’가 되는 것보다 ‘무대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 그리고 배우로서의 기본과 태도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철학으로 10년을 버텨왔다. 배우 배형빈(28)의 이야기다.

2016년 파주시가 제작한 창작뮤지컬 ‘율곡 이이’로 데뷔한 배형빈은 연극과 뮤지컬은 물론 드라마와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지난해에는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과 올해 뮤지컬 ‘몽유도원’에서 앙상블 배우로서 대극장에 진출, 오는 15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 날다’를 통해 첫 중극장 주연에 도전한다.

◇ 아이돌 보며 키워온 꿈…한 번의 선택은 인생 바꾸는 기회로!

누군가에게는 다소 늦은 출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형빈은 지난 시간을 단 한 번도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단단한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5일 스포츠서울과 만난 배형빈은 배우를 꿈꾸게 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봤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부보다 노래와 춤을 좋아했던 그는 카라와 샤이니 등 2세대 아이돌이 큰 사랑을 받던 시절 막연하게 가수를 꿈꾸기도 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토요 방과 후 수업으로 운영되던 뮤지컬반에 혼자 지원하면서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배형빈은 “친구들과 함께하려 했지만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예체능을 경험할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혼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라며 “당시 노래와 춤, 연기를 모두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라고 운명의 시작 시기를 회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이나 입시학원은 현실적으로 어려움 탓에 쉽지 않았다. 그때 뮤지컬반 선배의 추천으로 고등학교를 지원·선택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세원고 연극부였다. 그는 그곳에서 연기뿐 아니라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을 배웠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난타, 사물놀이, 탈춤, 기계체조, 검무 등 공연에 필요한 다양한 신체 훈련을 익혔다. 1학년 때는 전국연극제와 거창연극제에 참가해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 10년 여정 속 가장 큰 깨달음 ‘배우의 자세’

배형빈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기 기술보다 태도다. 그는 연습실에서는 바닥을 닦으며 무대를 신성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고, 공연장에서는 복장과 행동 하나까지도 배우의 품격이라며 몸에 익혔다.

그는 지금도 당시 배운 기본기가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배형빈은 “만약 입시학원만 다녔다면 정해진 틀 안에서 연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배우가 되는 방법보다 배우로서 살아가는 자세를 먼저 배우려고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만든 것은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가르침이었다. 배형빈은 “‘좋은 학교’보다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단순히 탤런트가 아닌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한 뒤 “동시에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배웠다. 나 역시 그런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라고 덧붙였다.

배형빈은 “무대에서 자연스러우려면 일상부터 바르게 살아야 한다. 올바르게 걷고 서고 말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무대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라며 “배우는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업이다. 자기 삶조차 성실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배우 지망생이 많아진 현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는 꼭 강조했다. 바로 책임감이다.

배형빈은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배우는 절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스태프와 동료 배우, 관객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예술이다”라며 “앙상블 중 한 명이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관객에 대한 모독이자 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배우에 대해 “잠깐 흥미가 생겨 시작했다가 몇 달 만에 그만둘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늦지 않은 새로운 시작…포기보단 전진!

배형빈의 배우 인생에도 슬럼프는 있었다.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아직도 이 자리인가”라는 불안과 조급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또래 배우들이 먼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힘든 시기마다 중심을 잡아준 것은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2년 전 연극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에서 함께한 표재순 연출과 배우 고(故) 이순재는 “배우는 연극에서 얻는 힘이 있다. 무대를 절대 놓지 말라”라며 그를 응원했다.

그는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는 매체에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자산”이라며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와 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배우가 진정한 전문 배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이들과의 비교보다 자신의 속도를 선택했다. 배형빈은 “남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려고 한다”라며 “어떠한 시련과 고난과 부딪혀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또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계속 배우를 하고 있을 것 같다”라고 자신했다.

20대 초반 다양한 공연과 전통예술을 경험했던 시간 역시 지금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탈춤과 한국무용 등 공연장에서 배운 모든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 모든 시간과 경험이 있었기에 대극장 앙상블까지 올 수 있었고,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도 생겼다”라며 미소 지었다.

배형빈이 꿈꾸는 미래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이름 앞에 붙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누군가 ‘배형빈이 어떤 배우냐’라고 물었을 때 ‘그 배우는 ‘Just 배우’야’라는 말을 듣고 싶다”라고 말했다.

‘Just 배우.’ 이 한마디에는 무대를 향한 존중과 사람을 향한 예의, 그리고 1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온 배우 배형빈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무대 중심에서 한 작품을 이끌어갈 배형빈은 오는 15~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 날다’ 무대에 오른다. 이어 9월 3~6일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창작뮤지컬 ‘충분한 이별’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