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굽이진 국도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하염없이 쏟아지던 궂은날, 시야를 가득 채운 강렬한 카민 레드(Carmine Red) 색상의 차 한 대가 매혹적인 긴장감을 뿜어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포르쉐가 전동화 시대를 맞이해 순수 전기차로 새롭게 빚어낸 고성능 SUV, 마칸 GTS다.
이 붉은 야수를 마주하는 순간, 귓가에는 특유의 당당함과 세련미로 무장한 르세라핌(LE SSERAFIM)의 ‘메이드 마이 나이트(Made My Night)’가 자연스레 맴돌았다. 평범하고 우울할 수 있는 비 내리는 날을 단숨에 가장 짜릿하고 완벽한 순간으로 뒤바꿔버리는 마칸 GTS의 주행 감각은, 리스너의 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르세라핌의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와 완벽한 궤를 같이한다. 전동화 시대의 파도를 타고 새로운 심장을 얹은 포르쉐 마칸 GTS와 르세라핌의 세련된 비트를 교차하며 그 치명적인 매력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 전동화 시대에도 포기할 수 없는 스포츠카의 헤리티지

마칸 GTS의 외관은 정지해 있는 순간에도 역동적인 비트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민 레드 색상은 깊고 짙은 선혈을 연상시키며, 빗물에 젖어 물기를 머금었을 때 그 관능미는 극에 달한다. 내연기관의 흔적을 지우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 위에서 공기역학을 극대화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전면부 라인 속에서도, 특유의 공격적인 범퍼 디테일과 쩍 벌어진 차폭은 차가운 도로를 집어삼킬 듯 맹렬한 인상을 풍긴다.
측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GTS 전용 21인치 블랙 휠이 시선을 압도하며, 휠 안쪽에 자리 잡은 강렬한 레드 캘리퍼는 이 차가 품고 있는 폭발적인 제동 성능을 암시한다. 도어 하단부 사이드 블레이드에 선명하게 새겨진 ‘GTS’ 로고는 가문의 영광을 증명하는 표식과도 같다. 르세라핌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우아하면서도 타협 없는 당당한 카리스마가 전기 마칸의 웅장한 실루엣과 묘하게 겹쳐진다.


묵직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탑승자를 맞이하는 것은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블랙과 레드의 짜릿한 조화로 꾸며진 실내는 이 차가 친환경 전기차임에도 철저히 레이싱카의 유전자를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고급 가죽과 카본 인테리어 패키지가 아낌없이 사용되었고,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을 따라 꼼꼼하게 수놓아진 레드 스티칭은 장인의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다.
운전자의 몸을 단단하게 지지해주는 GTS 전용 스포츠 시트 헤드레스트에는 붉은색 ‘GTS’ 로고가 각인되어 있어 스티어링 휠을 잡기 전부터 심박수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타이칸에서 영감을 받은 12.6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첨단 디지털 감성을 뽐내지만, 대시보드 중앙 상단에 오뚝하게 솟아있는 아날로그 스포츠 크로노는 전동화 시대에도 포르쉐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낭만이자 고유의 헤리티지다.
◇ 내연기관을 잊게 만드는 폭발적 토크와 정교한 핸들링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이 차가 품은 진짜 포르쉐의 영혼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연기관의 거친 배기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치 우주선이 광속으로 이륙할 듯한 포르쉐 특유의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가 귓가를 파고든다. 모터로 구동되는 전기차 특유의 차갑고 직선적인 질감은 포르쉐의 집요한 엔지니어링을 거치며 가장 완벽한 스포츠카의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터져 나오는 지연 없는 폭발적인 토크는 르세라핌의 칼군무처럼 즉각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엔진의 터보랙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체는 빗길 위에서도 총알처럼 튕겨 나간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포르쉐가 전기차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조율해 낸 방식이다. 대용량 배터리 탑재로 인해 무거워진 차체는 자칫 둔탁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포르쉐는 이 거대한 배터리를 차량 바닥에 넓고 낮게 깔아 내연기관 시절보다 무게 중심을 극한으로 낮췄다.

여기에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와 에어 서스펜션, 그리고 정교한 토크 벡터링 시스템을 더해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듯한 날카로운 코너링을 완성했다. 비가 내려 노면이 극도로 미끄러운 굽이진 길에서도 네 바퀴는 아스팔트를 끈적하게 움켜쥐었고, 차체의 롤링과 피칭은 완벽에 가깝게 억제됐다. 특히 회생제동 특유의 이질감을 덜어내고 기계적인 브레이크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내연기관 포르쉐를 몰던 선형적인 제동 감각을 고스란히 이식했다. ‘전기차’이기 전에 ‘포르쉐’임을 시승 내내 묵묵히 증명한 셈이다.
◇ 어두운 빗길을 완벽한 순간으로, ‘Made My Night’

전기차 특유의 쾌적한 정숙성은 역설적으로 마칸 GTS의 실내를 완벽한 청음실로 탈바꿈시켰다. 엔진 소음과 진동이 사라진 고요한 실내 공간에서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흘러나오는 르세라핌의 ‘메이드 마이 나이트’는 차창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한층 더 깊은 감성적 몰입감을 선사했다. 음악이 주는 위로와 차가 주는 쾌감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마칸 GTS와의 동행은 궂은 풍경마저도 찬란하게 바꿔놓는 마법과 같았다. 평소에는 정숙하고 편안한 패밀리 SUV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만,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의 주행 모드 다이얼을 ‘스포츠 플러스’로 돌리는 순간 도로 위의 무자비한 고성능 머신으로 돌변한다.
당당한 태도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르세라핌의 음악이 리스너의 밤을 온전히 아름답게 만들어주듯, 전기차의 낯선 질감을 가장 ‘포르쉐답게’ 빚어낸 마칸 GTS 역시 시승하는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빗방울 맺힌 앞 유리 너머로 묵묵히 빗길을 가르던 카민 레드의 짙은 잔상이 르세라핌의 멜로디와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 맴돌 것 같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