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글·사진 | 정선=원성윤 기자]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9월, 강원도의 산세는 유독 짙고 푸르렀다. 이번에 선택한 동반자는 SUV의 제왕이자 럭셔리의 정점을 찍은 모델, ‘레인지로버 SV 블랙(Range Rover SV Black)’이다. 3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압도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이 차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로 위의 하이엔드 라운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선 하이원리조트 체크인 센터 앞에 멈춰 선 레인지로버 SV 블랙의 자태는 고요하지만 강렬했다. 차체 전체를 감싼 칠흑 같은 블랙 도장면은 특유의 거대한 차체를 한층 더 단단하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특히 측면에서 바라보면, 큼직한 블랙 알로이 휠과 매끄럽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이 빚어내는 실루엣이 예술적이다. 후면부에는 군더더기 없는 일자형 테일램프와 함께, 우측 하단에 자리 잡은 세라믹 ‘SV’ 배지가 시선을 끈다. 이는 이 차가 랜드로버의 스페셜 비히클 오퍼레이션(SVO) 팀의 정교한 수작업과 장인정신을 거쳐 탄생한 특별한 모델임을 묵묵히 증명하는 징표다.





차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압도적인 고급스러움이 탑승자를 맞이한다. 운전석 공간은 직관적이고 시인성 높은 디지털 클러스터와 정교하게 마감된 스티어링 휠이 어우러져 운전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앞좌석을 감싸는 최고급 가죽 시트는 몸을 뉘었을 때 포근하게 감싸 안는 착좌감이 일품이다. 무엇보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빛을 발한 공간은 2열이었다.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하는 파노라마 선루프 아래로 1열 헤드레스트 뒤편에 마련된 고해상도 듀얼 모니터가 눈에 띈다. 장거리 여행에 지치기 쉬운 아이들에게 이 독립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마법과도 같았다.
본격적인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정선 아라리촌과 화암동굴을 지나, 추전역과 철암탄광역사촌이 있는 태백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해발고도가 높은 태백산 자락 특유의 꼬불꼬불한 산길과 거친 비포장도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육중한 차체를 지닌 거대한 SUV에게 이토록 험준한 고갯길의 연속은 가혹한 환경일 수 있다. 이리저리 쏠리는 롤링 현상에 뒷좌석 탑승객들이 멀미나 피로감을 호소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SV 블랙은 달랐다. 3억이 넘는 고가 차량에 걸맞게 최상급 에어 서스펜션과 차체 제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훌륭한 승차감을 만들어내며 노면의 충격과 진동을 마법처럼 흡수해 냈다. 급격한 코너링 구간에서도 차체의 수평을 완벽에 가깝게 유지하며 우아하고 부드러운 궤적을 그렸다. 산길을 거칠게 정복한다기보다는, 노면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한다는 표현이 적확했다. 거친 자연 속에서도 차량 내부는 외부의 소음과 진동이 철저히 차단된 채 흔들림 없는 안락함을 유지했고, 장거리 산길에서도 훌륭한 동반자가 돼 주었다.
이토록 유려한 드라이빙의 감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음악은 영국 출신의 네오 소울 싱어송라이터 올리비아 딘(Olivia Dean)의 ‘다이브(Dive)’다. 올리비아 딘 특유의 그루브 넘치면서도 소울풀한 음색, 그리고 잔잔하게 물결치는 듯한 리듬은 레인지로버 SV 블랙이 보여주는 매끄러운 주행 질감과 경이로울 정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 라인 위로 청량하고 섬세한 보컬이 얹어질 때, 최고급 사운드 시스템이 빚어내는 해상력은 실내를 완벽한 콘서트홀로 탈바꿈시켰다. 운전대를 쥐고 올리비아 딘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노래의 제목처럼 짙은 녹음이 우거진 태백산의 웅장한 자연 속으로, 그리고 자동차가 선사하는 궁극의 평온함 속으로 깊이 ‘다이빙’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레인지로버 SV 블랙은 거친 오프로드의 야성과 최고급 세단의 우아함을 한 몸에 품은 야누스 같은 매력을 지녔다. 험준한 산길마저 나만의 프라이빗한 하이엔드 라운지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승차감은 3억 원이라는 범접하기 힘든 가치를 오롯이 입증해 낸다. 태백의 고갯길을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차체, 사랑하는 가족들의 평온한 숨소리, 그리고 올리비아 딘의 낭만적인 선율까지. 가장 깊고 진한 럭셔리 드라이브였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