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위수정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산업계로 번지고 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기업들이 온라인 여론에 대응해 광고 댓글을 제한하는가 하면, 공공기관 임직원의 단체관람 비용을 지원한 금융회사는 경찰에 고발됐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업들까지 광고모델과 고객 마케팅을 고리로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휘말리는 모습이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유통·금융업계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미수와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등을 둘러싼 의혹을 설정에 포함하면서 정치권에서 공방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은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상영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허진호 감독과 제작 관계자 등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감독 등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 데 대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논쟁은 영화 제작사와 감독을 넘어 출연 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기업으로까지 옮겨붙었다.
버거킹은 이달 가을 시즌 메뉴를 선보이며 영화 주연 배우 유해진을 광고모델로 내세웠다. 그러나 영화 논란이 확산한 이후 일부 누리꾼들이 버거킹의 소셜미디어(SNS)와 광고 영상 등에 영화와 배우를 둘러싼 비판을 제기했고 모델 교체를 요구하는 반응도 등장했다.
현재 버거킹 공식 유튜브에 게재된 유해진 출연 광고 영상은 댓글 작성이 제한된 상태다. SNS에서도 유해진이 등장하는 일부 게시물의 댓글이 제한됐다.
키움증권 역시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유해진을 모델로 제작한 퇴직연금 광고 영상의 댓글 기능을 제한했다.
두 회사 모두 영화 제작·배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광고모델의 출연작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기업 브랜드와 광고 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통상 기업이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할 때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회적 물의, 범죄 연루 여부 등이 주요 리스크로 꼽혀왔다. 이번에는 모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출연 작품의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광고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광고모델이 아닌 고객 마케팅을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은 최근 경남 진주의 한 영화관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암살자(들)’ 단체관람 행사를 진행했다. 영화관 대관 비용은 두 기관의 퇴직연금 사업자인 미래에셋증권이 부담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30일 미래에셋증권과 LH, 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들을 청탁금지법 위반 및 뇌물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 전 의원은 금융거래 관계에 있는 미래에셋증권이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공공기관 관계자가 이를 받았다면 관련 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다만 고발 단계인 만큼 실제 법 위반 여부는 수사 등을 통해 가려져야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해당 행사가 특정 영화나 정치적 목적과는 관계없는 통상적인 고객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연금 고객 대상 단체 영화관람 지원이 퇴직연금 마케팅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존에도 진행해온 행사라는 입장이다. 올해도 ‘짱구’, ‘오디세이’ 등 다른 영화의 단체관람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LH 역시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제공한 통상적인 복지·문화 서비스 차원의 행사로, 상영작 선정이나 관람에 정치적 목적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고객 행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관련 운영 기준을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기업의 광고모델 및 마케팅 리스크 관리 범위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모델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출연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고, 통상적인 고객 마케팅도 정치·사회적 이슈와 결합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평판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문화계를 넘어 유통·금융·공공기관까지 번지면서 기업들도 관련 여론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wsj0114@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