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LG 선수단, 구본무 회장별세로 근조리본
LG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이 20일 잠실 한화전에 앞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로 이날 선수단은 어깨에 근조리본을 달았다. 2018. 5. 20 잠실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한국 야구에 한 획을 그은 LG 그룹 구본무 회장이 20일 별세했다. LG 그룹은 이날 오전 9시 52분께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발표했다. 구 회장은 LG 트윈스 창단 첫 해인 1990년부터 2007년까지 구단주를 역임한 바 있다. 이날 LG와 한화의 잠실 경기는 응원단 앰프 사용을 자제한 채 진행됐고 LG 선수들 또한 당초 계획된 서울 유니폼이 아닌 LG 홈경기 유니폼을 입었다. LG 선수단 전체가 유니폼 왼쪽 어깨에 검은 리본을 달고 조의를 표했다.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검은 양말을 종아리까지 올려 입었다.

구 회장의 야구 사랑은 트윈스 황금기 그리고 1990년대 한국 야구 흥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0시즌을 앞두고 LG 그룹은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 첫 해부터 우승을 차지했다. 4년 뒤인 1994시즌에도 통합 우승을 달성한 LG는 1990년대 거의 매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수도권을 대표하는 강팀이었다. 수도권 맹주로서 잠실구장이 한국야구 흥행의 메카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LG와 해태의 잠실구장 경기는 새벽부터 티켓을 사기 위한 야구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1988년 MBC 청룡에서 신인왕을 수상하고 1990년부터 1992년까지 LG 유니폼을 입었던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구 회장에 대해 “정말 야구 사랑이 각별하신 분이셨다. 야구 선수들 입장도 잘 들어주시고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도움도 많이 주셨다. 기업 뿐이 아닌 야구계에도 큰 도움을 주신 분이라 더 안타깝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 위원은 트윈스가 창단과 우승을 차지했던 1990년 두 가지 에피소드를 밝혔다. 그는 “1990시즌 우리가 우승했는데 전반기까지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당시 백인천 감독님의 거취를 두고도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다”며 “그런데 회장님께서 회식자리를 열고 백 감독님을 격려하셨던 기억이 난다. 전반기에 6위할 때 ‘걱정하지 마시라. 계속 믿고 가겠다’고 하셨고 후반기 반등해 우승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1990시즌 LG는 여름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서도 시리즈 전적 4승 0패로 삼성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1990년대 신바람 야구의 시작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들에게 족쇄와도 같았던 연봉인상 상한선 25%를 실질적으로 푼 것도 구 회장이었다. 이 위원은 “LG가 창단하고 첫 연봉협상을 하는데 우리 팀만 25% 이상을 인상해 주셨다. 당시 구단주였던 회장님의 지시였다”며 “우리가 처음으로 시행하니까 이후 다른 팀들도 25% 이상을 인상했고 결국 상한선이 철폐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들을 정말 아끼셨던 분”이라고 과거 생각에 잠겼다. 이 말을 듣던 LG 류중일 감독은 “LG가 가장 먼저 상한선을 없앴던 기억이 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확인 결과 연봉 상한선 25%는 수년 동안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1994시즌 종료 후 이사회를 통해 폐지됐다. 구 회장의 결정이 굵직한 첫 번째 발자국이 된 것이다.

LG 그룹은 스포츠단이 먼저 그룹 명칭을 사용한 다소 특이한 전력이 있다. 1994년까지 LG 그룹의 이름은 ‘럭키 금성’이었는데 1995년부터 ‘LG’로 전면 교체됐다. 이를 두고 LG 구단 관계자는 “1995년 이전부터 그룹명 교체는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야구단이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 우승하면서 새 그룹명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알리는 홍보 효과를 발휘했다. 야구 덕분에 그룹명 교체가 원활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구씨 일가의 야구단을 향한 사랑과 적극성이 그룹명 변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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