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 박정태 "'흔들 타법' 파급력에 고생 좀 했죠"
  • 입력 2017-12-07 06:55
  • 수정 2017-12-0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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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대령 인턴기자] 1990년대 구도(球都)를 뒤흔든 박정태(48)라는 이름의 탱크가 13년 전 전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탱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산을 위해 험준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최근 부산 금정구의 레인보우희망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박정태는 "대한민국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다문화가정 자녀들부터 비행 청소년 출신까지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야구를, 그리고 삶을 가르치고 있었다.



▲ 무서운 신인, 롯데의 우승을 이끌다.


박정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불우했다"고 설명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박정태는 장사를 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과 친해졌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야구 선수로서 성공하게 됐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리고 이 시절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후에는 첫 시즌부터 팀내 안타 1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으로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신인왕을 노려볼 만한 활약이었지만, 신인왕은 그의 절친한 친구 조규제에게 돌아갔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는 "불만 많다. 내게는 신인왕이 아니다"라고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유독 조규제에게 강했던 박정태의 자신감이다. 하지만 "조규제는 뛰어난 선수다. 나와 비슷한 체구임에도 그 정도의 구속을 내고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서운 신인' 박정태에게 2년 차 징크스는 없었다. 두번째 시즌이었던 1992시즌 롯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박정태는 "개인이 아닌 팀이 만든 우승이다"라며 당시 팀의 끈끈한 결속력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강병철 감독님이 팀을 훌륭하게 이끌었다"라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과 용병술이 뛰어났다. 아버지 같은 분이기도 했다. 은퇴 후 나의 지도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도 항상 보고 싶다"라고 강병철 감독의 리더십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고(故) 유두열, 故 조성옥, 김민호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좋은 선배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교 때 맞으면서 야구를 하다가 프로에 갈 때는 '맞을 일은 없겠다'고 좋아했다. 그리고는 입단 첫날 맞았다"고 웃으며 "지금은 다르지만, 그때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팀 단합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라고 회고했다.


▲ 위기 뒤 맞은 전성기


그러던 1993년 5월 23일,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그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태평양과의 경기에서 2루로 슬라이딩하다 발목뼈가 조각나는 복합골절을 당한 것이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부상이었다. 하지만 박정태는 피나는 재활을 거쳐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내가 쓰러지면 가족이 쓰러지는 것이었다"라고 가족을 언급한 뒤 "두 번째는 팬들이다. 경기장에서 버스로 4, 5정거장 되는 거리를 걸어서 병문안와 응원을 해줬다.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팬들에게 그 빚을 다 갚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라며 재기의 원동력이 된 팬들에게 고마워했다.


선수 생활의 위기를 딛고 일어난 후 전성기를 맞았다. 백미는 1999시즌 세운 31경기 연속 안타 대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역대 2위, 단일 시즌으로는 1위로 남아있다. 25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던 한화와의 경기는 극적이었다. 8, 9회 단 두 이닝이 남은 상황. 8회 첫 타석은 4번 타자 호세였다. 이날 안타를 때리지 못한 3번 타자 박정태의 안타 행진은 여기서 끊기는 듯했다.


하지만 8회에만 8명의 타자가 공격에 나섰고, 기적처럼 9회에 박정태의 타석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를 놓치지 않고 안타를 날리며 극적으로 기록을 이어갔다.


박정태에게도 당시 상황은 생생했다. 그는 "8회가 시작하기 전 미팅을 하는데 나보고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다"라며 "경기 후 들어보니 후배들이 모여 '정태형의 기록이 여기서 끝나게 할 순 없다. 공을 맞아서 출루하든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자'라고 각오를 다졌다고 하더라"고 영화같은 스토리를 공개했다. 이어 "그런 동료애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31경기 연속 안타는 나 혼자 세운 기록이 아니다. 동료들이, 그리고 기를 불어 넣어준 팬들이 함께 세운 기록이다"라고 겸손해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롯데맨으로 살아왔지만, 은퇴를 두고는 구단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분노한 팬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구단 홈페이지와 전화기를 항의로 마비시키기도 했다. 비록 힘든 시간이었지만, 박정태에게는 자신을 향한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내가 아프면 팬들도 아픈 것이다. 그리고 팬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나는 팬과 하나라고 생각한다. 팬들에게 죽을 때까지 갚겠다."


▲ "'흔들 타법' 따라하는 아이들 말리느라 고생했죠"


독특한 타격폼은 박정태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성적이 아닌 타격폼으로 주목받는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절대 튀려는 목적은 없었다. 신체적 조건을 만회하기 위해 2, 3년 동안 만든 폼이다."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따라 해서 고민이었다"라며 "장난으로 따라 하는 건 상관없다. 문제는 내가 그 폼으로 신기록도 세우면서 잘나가니 당시 야구를 배우는 선수들까지 따라 했다는 것이었다. 기본기도 갖추지 않은 상황에 무작정 특이한 타격폼을 따라하면 성장에 치명적이다. 이들을 말리느라 고생했다"라는 뒷이야기를 전하며 웃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후엔 롯데에서 타격 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쳤다. 야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바꿔놓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처음엔 지도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2군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력을 피나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연구에 집중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선수들을 무시하기도 했다"고 되돌아봤다.


하지만 "몇 년 있으니 아이들을 이해하게 됐다. 금방 성장하는 선수도 있는 반면, 대기만성형 선수도 있다. 개개인 특성에 맞춰 그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기억에 남는 2군 선수로는 손아섭에 이어 조정훈을 꼽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선수였다"면서도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은 엄청났다. 큰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야구와 삶을 가르치다


박정태는 현재 레인보우희망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야구로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2년 동안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던 기간은 내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야구 선진국들은 클럽 야구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야구를 배워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유소년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을 분명히 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우리가 외국인이었다. 무시를 많이 당했다. 그렇게 생활하다 한국에 오니 다문화 아이들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단법인으로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재단을 설립한 계기를 털어놨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정태의 눈은 빛났다. 그는 "나쁜 아이들은 없다. 다만 환경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회에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쁜 길로 흐르는 것이다"라는 소신을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바꿔 다른 아이들과 평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조심스럽게 지도하고 있다. 소외계층 아이들이 사회성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가면 일반 학생들과 무조건 부딪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문이 닫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진 않을까. 그는 "관심과 사랑이 결핍된 아이들일 뿐이다.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해준다. 그렇게 2, 3주가 흐르면 아이들이 하나가 된다. 그 후 본격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한다. 그때부터는 내가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을 내도 이를 모두 받아들인다"라고 설명했다.


▲ 레전드가 보는 롯데의 현재


박정태는 지도자에서 물러난 후에도 롯데의 야구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최근 삼성으로 적을 옮긴 강민호에 대해 "아쉽다"라고 운을 뗀 뒤 "감독으로서 가장 좋은 선수는 다치지 않는 선수다. 감독은 1년 플랜을 준비해놓는데, 실력과 상관없이 구상에 있는 선수가 다치면 계획이 모두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강민호는 특히 더 좋은 선수였다"라고 평가했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을 함께한 선수로서 생각하는 세번째 우승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팀의 결집력과 간절함을 꼽았다. "간절함, 선수와 코치, 선배와 후배 사이의 신뢰, 감독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또 선수와 구단, 그리고 팬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우승의 문턱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 "강병철 감독님은 선수 간의 경쟁을 유발했고, 이것이 우승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고 우승 당시 비결을 공개했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끝으로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난 박정태. 그를 언제쯤 다시 프로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그는 "항상 팬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팬들을 위해 늘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박정태의 인터뷰를 마치며 '롯데 팬들이 다른 팀의 팬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정이 많다. 그리고 빨리 꺼진다"라며 웃은 그는 "조원우 감독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라며 끝까지 응원해준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과의 관계를 박정태와 박정태의 팬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죽을 때까지 팬들과 관계는 그렇게 설정하고 싶다"라고 덧붙이며 팬들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박정태는 오는 11일 열리는 '2017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에 참석해 유소년 발전 기금을 전달받을 예정이다. 그는 "상을 받을 만한 더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받게돼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추운 겨울이 왔다. 겨우내 강추위와, 그보다 더 아려오는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들을 꼭 돌아보고 재단의 활동에 큰 관심을 부탁한다"라며 소외계층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거듭 당부했다.


1990년대 부산을 달군 것은 '탱크' 박정태의 승부욕과 근성이었다. 잡지 못할 것 같은 공에도 몸을 내던지던 그의 모습은 부산시민들을 뜨겁게 달궜다.


2017년 선수 박정태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야구로 행복을 전하겠다는 박정태는 부산 야구의 심장으로 남아 부산의 겨울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다.


daeryeong@sportsseoul.com


사진ㅣ김도형기자 wayn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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