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겨울 깁스 신세"…신수지, 홀로 개척한 리듬체조史[리와人드]
  • 입력 2018-11-08 12:51
  • 수정 2018-11-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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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대령기자]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선수." 신수지는 그런 선수였다. 여자 체조의 불모지로 불리는 한국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척박했던 리듬체조계에서 신수지의 등장은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신수지가 걷는 길, 남기는 발자국은 하나하나 역사가 됐다. 그리고 그 자산들을 물려받아 유망주들이 지금도 매트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꿈을 키우고 있다.


은퇴 후에는 스포테이너로서 완전히 자리 잡아 방송을 통해 밝은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신수지. 그가 오랜만에 밝히는 선수 시절 이야기를 서울 서초구의 한 골프 아카데미에서 직접 들어봤다.


◇3년을 졸라 잡은 리본, 날개가 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학부모 사이에서 축구붐이 일었듯 리듬체조 역시 신수지와 손연재를 거치며 엘리트체육으로서, 그리고 생활체육으로서 일상과 훨씬 가까운 스포츠가 됐다. 하지만 신수지가 처음 리본을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리듬체조는 생소한 스포츠였다.


신수지는 "어릴 때부터 보행기를 타지 않고 들고 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다. 그래서였는지 커서도 부모님께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라며 "리듬체조 중계를 우연히 봤는데 리본을 들고 연기를 하는 선수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때부터 이 종목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라고 리듬체조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전했다.


리듬체조를 하기로 마음먹은 신수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설득에 나섰다. 그는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까지 기계체조를 하셨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를 하셨다. 이 종목의 길을 걷는 것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라고 전한 후 "딸이 3년을 조르니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해주셨다"라고 웃었다.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은 신수지는 기쁜 마음으로 운동에 임했지만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았다. 리듬체조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서도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역사가 없는 종목이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 선수를 배출했지만 자력으로 출전권을 얻어 올림픽 무대를 밟은 선수는 없었다.


신수지는 "아마 처음부터 올림픽에 나서야겠다는 목표를 잡고 여기에 얽매여 체조를 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당시 신수지가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목표를 차근차근 잡았다. 대회에서 1등을 하면 다음 대회에서 1등, 내년에 1등을 목표로 잡는 식이었다"라며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길을 걸어온 비결을 전했다.


주니어 대회를 휩쓴 신수지는 2007년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 리듬체조선수권대회에서 상위 20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와일드카드나 초청 선수가 아닌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는 "체육관부터 열악했다"라며 "겨울이 가장 힘들었다. 기구를 던져야 하니 넓은 체육관을 사용하는데 그 큰 체육관에 난방비를 자비로 모두 부담해야 했다. 하루만 난방을 해도 엄청난 돈이 드니 그냥 영하의 추위에 운동복 하나 입고 운동을 했다. 결국 매년 겨울마다 깁스 신세를 졌다"라고 회상했다. 또한 "아시안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제외한 대회는 모두 자비로 다녀야 했다. 금전적인 부분을 모두 부모님께 기대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 됐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신수지가 가는 길은 역사가 됐다


올림픽 무대에 선 신수지는 개최국 출전권으로 참가한 중국 선수를 제외하면 유일한 동아시아 선수였다. 이 대회에서 한국 리듬체조사의 올림픽 최고 성적인 12위를 거두며 금의환향했다. 그는 "메달권도 아니었고 최연소 출전이었다. 만족스러운 성적이었다"라며 "대회에 나가면 네 종목 중 꼭 한 종목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올림픽 때는 네 종목 모두 실수 없이 해냈다"라고 웃었다.


신수지는 이때를 기점으로 올림픽 깜짝 스타로 조명받으며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는 "리듬체조를 중계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제 경기가 국내에 생중계되는지도 몰랐다"라며 "당시 미니홈피가 유행할 때였는데 대회가 끝나니 제대로 접속이 안 될 정도로 수많은 방문자가 제 미니홈피에 들어와 응원글을 남겨줬다"라고 웃었다.


올림픽 이후에는 스폰서가 생기면서 금전적인 부담을 더는 등 한결 나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부상의 악령이 찾아와 부침을 겪었다. 특히 2010년에는 발목 인대에 큰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 생활 자체에 타격을 입었다. 그는 "처음엔 인대가 살짝 틀어졌는데 그 상태로 거의 6개월을 강압적으로 훈련을 하다 보니 인대가 30%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대회에 참가했다"라며 "몸의 균형도 무너졌고 충분히 할 수 있는 기술도 안 됐다. 결국 이후 수술을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부상이 길어진 만큼 후유증도 길게 남으면서 신수지는 2012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선수로서 최고의 목표인 올림픽도 참가했고, 21세에 노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뛸 만큼 뛰었고, 은퇴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기대와는 달랐을 은퇴에 관해 후회나 미련은 없을까. 그는 "부상도, 몸 관리도 결국은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은 물론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그렇게 열심히는 단 하루도 못 할 것 같다"라는 답을 내놨다.


신수지가 은퇴한 후에는 손연재가 리듬체조 스타의 자리를 꿰찼다. 같은 세대의 경쟁자는 아니었지만 기록을 두고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없었을까 조심스레 물었다. 우문에는 현답이 돌아왔다. 그는 "리듬체조 선수로서 힘들게 길을 개척해놨는데 따라와 주는 선수가 없었다면 무의미했을 것 같다. 손연재가 등장해 오래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최고의 활약을 펼쳐줘서 고맙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은퇴 후에는 스포테이너로서 방송계를 종횡무진 누비는가 하면 새로운 종목인 볼링에 도전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사실 운동할 때는 방송계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선수가 운동 외에 다른 곳에 발을 들이면 실패한다는 생각도 했다"라고 의외의 답을 내놨다.



◇방송·볼링·골프까지 '도전왕' 행보에도 여전한 리듬체조 ♥


그는 "은퇴 후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 제의를 받았다. 무대와 관중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출연을 결심했다. 새벽 3시까지 연습했지만 정말 행복했다"라며 "그 후로 들어오는 방송은 다 한 것 같다. 주로 운동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나올 때마다 눈에 흰자만 보일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7년 차가 됐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지도자에 관한 생각은 없었을까. 신수지는 "너무 어릴 때부터 체육관에서만 살아서 지금 다시 체육관에 있고 싶지는 않다. 다시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골프를 치겠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리듬체조다. 지금도 해설도 하고 리듬체조로 자선캠프도 열고 후원도 하면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방송일을 조금 더 해보고 다른 종목에서도 땀을 흘려본 후에는 다시 매트 위에서 지도자로서 설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리듬체조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과시했다.


daeryeong@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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