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김수철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거인(巨人)’이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잘 어울리는 문화예술인이 또 있을까.

‘작은 거인’ 김수철은 한두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예술인이다. 가요계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그는 대중음악계를 훌쩍 뛰어넘어 순수와 대중문화 전반을 종횡무진 누벼왔다.

그는 대중가수이자 로커이고, 기타리스트, 대중음악 작사·작곡가이기도 하지만 국악의 현대화를 37년간 연구해온 순수예술인이면서 영화 및 드라마 음악 감독이기도 하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 올림픽을 비롯해 93년 대전엑스포, 2002 한일월드컵 등 국내의 굵직한 행사들의 음악 감독, 작곡가로도 활약했다. 심지어 영화배우로 84년 백상예술상 신인상도 받고, 무용 음악 으로 대한민국 무용제 음악상까지 받았다.

1977년 스무 살에 KBS 방송에 출연하며 데뷔한 그는 최근 40년의 음악 여정을 정리한 책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까치)를 펴냈다. 연대기 순으로 기술한 책에는 기타와 씨름하던 중고교 시절부터 1977년 첫 방송 출연, 1978년 밴드 ‘작은 거인’을 결성해 이듬해 첫 앨범 ‘작은 거인 1’을 내고 1983년 솔로로 데뷔한 과정, 1980년부터 우리 소리인 국악의 현대화 작업에 천착한 37년의 시간을 세밀하게 담았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김수철은 열 달 동안 두꺼운 노트에 연필로 직접 이 책에 담긴 글을 써내려갔다.

-최근 근황은.

책이 의외로 반응이 좋다. 베스트셀러까지 됐다. 그래서 열심히 인터뷰도 다니고, 바쁘게 지낸다.

-책을 낸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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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었다. 책은 함부로 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거절해오던 터에 데뷔 40주년이 됐는데 앨범을 낸 것도 아니고 공연을 한 것도 아니라 책이라도 내야겠다고 지난해 마음먹었다. 5~6개 출판사 중 내 생각에 좋은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를 택했다. 올해 초부터 꼬박 열달 동안 책을 썼다.

-직접 연필로 글을 써서 책을 펴냈다. 대필 등 편리한 방법도 있었을텐데.

음악 이야기를 대필작가에서 구술하고,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을 거라 봤다. 대필은 내 느낌과 다른 방향으로 글이 나올 수 있다.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세계적인 행사들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경험 등 여러 기억과 자료를 후배들에게 전해주려면, 눌변이고 졸필이지만 내가 직접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진실됨과 진솔함은 결코 대필로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컴퓨터 타이핑을 하는 세대가 아니라 아주 두꺼운 노트 두권에 연필로 빼곡히 적은 내용을 추려서 책을 만들게 됐다. 쓰고, 지우고, 만나고, 확인하며 썼다. 멋부리고 미사여구를 쓰려고 하는게 아니라, 실제 사실과 내 생각을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정리하는데 중점을 뒀다.

-앞으로 책을 더 낼 생각은.

지금까지 써온 작곡 노트를 정리해서 공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다. 내 작곡 노트는 그 시절의 일기다. 각각의 음악을 만들 때 나의 단상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걸 보면 내가 어떻게 각각 음악을 구상했는지, 왜 그런 음악이 나왔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작곡 구상을 할 때 쓴 글과 그린 그림, 오선지 등을 사진 찍듯 그대로 노트에 옮기고 싶다. 이번 책엔 내용의 일관성 등 여러 이유로 뒷부분에 텍스트로 짧게만 수록했다.

이번 책은 진솔한 음악 이야기를 담은 책에 맞는 표지 디자인을 사용했지만 내 작곡 노트를 출판하게 된다면 내가 그린 오선지와 그림, 일기 등을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활용해 보고 싶다.

\'작은 거인\' 김수철

-작곡을 할 때도 오선지에 연필로 직접 음표를 그려넣나.

오선지를 앞에 놓고 연필을 깎으며 우선 마음의 정리를 한다. 선을 그으며 멜로디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제2의 창작이 진행된다. 나는 아날로그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예술 분야에선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설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발명왕 에디슨도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하더라.

요즘 대중가요계 후배들 중엔 작곡을 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장일단이 있다. 10년, 20년 계속 작곡가, 싱어송라이터로 남으려면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접목하는 게 유리하다.

물론 나도 디지털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500인조, 1000인조의 소리를 만들려면 상상하는 것보다 디지털로 확인하며 작업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창작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컴퓨터로 샘플을 쓰면서 작업하는 방식은 여러 모자이크를 짜맞추는 과정을 닮아있다. 그런 요령이 느는 건 작곡가로 길게 가기 위해선 좋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밀고 나가고, 추리하기보다는 자꾸 컴퓨터로 확인하려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곡작업을 할 때 사용한 몽당연필을 약 10년전부터 안버리고 모아두고 있다. 양이 상당하다. 예전엔 버렸는데 어느 순간, 나와 함께 가는 일기 같은 느낌이 들어 버릴 수가 없다. 내 음악적 흔적들이다. ‘몽당 연필’이란 노래도 만들었다. 아직 발표하진 못했다.

-책에도 잘 나오지만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영화·드라마 음악 감독도 했고 월드컵, 아시안게임, 엑스포 등 국가적인 대형 행사에 작곡가 혹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영화 배우로도 활동하기도 했고,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각 작업의 매력이 다를 것 같다.▲드라마 및 영화 OST 작업=

영화 음악은 여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주인공의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음악이 달라져야 하고, 평소 잘 하지 않던 장르의 음악도 공부해야 한다. 악기 연구도 필수이고, 심리 묘사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상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야 한다. 대중 음악과는 다른데 굉장히 재미있다.

▲대형 행사 음악 감독, 작곡 작업=

음악 이전에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작업이다. 문학 등 여러 예술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행사의 메인 테마를 잡으면 그걸 소시로 구현하기 위해 최첨단 장비들을 연구해야 하고, 세계적으로 뭐가 유행하는지 자료를 공부해야 한다. 빛과 소리의 조화를 꾀하는 입체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소리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작업이다.

▲기타리스트=

기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외로울 때 늘 함께 대화를 나누는 오래된 친구다.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국악을 하면서도 기타는 절대 놓을 수 없더라. 기타로 작곡한 노래도 많다. 내가 만든 장르 중 하나인 ‘기타 산조’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아직 제대로 보일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가수, 작사·작곡가=

내가 그리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워낙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많지 않나. 하지만 내가 만든 노래의 느낌을 잘 살려서 정성스럽게 노래하려고 노력해 왔고, 다행히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송골매, 한영애 등 다른 가수에게 노래를 준 적이 있는데, 내가 만든 노래를 다른 분들이 불러 히트하면 보람있고,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영화 배우

=음악하기 바빠 죽겠어서 연기를 할 겨를이 없다. ‘고래사냥’(1984년), ‘금홍아 금홍아’(1995년) 두편에 출연했는데 가수 출신 배우로 보기 드물게 백상 예술상에서 영화 부문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 영화 출연 제의가 꾸준히 들어오는데, 시나리오가 좋으면 영화를 한편 정도 더 해볼 생각은 있다.

-대중 가수로서는 15년째 새 앨범 소식이 없다.

배철수 형 등 주위에서도 내라고 권유를 하는데 쉽지 않다. 가요, 록, 국악 등 여러 장르에서 수백곡을 만들어뒀는데 발표를 한다 해도 홍보·마케팅 루트를 모른다. 준비는 돼 있다. 만든 노래에서 추리고 추려도 10장 이상 앨범을 낼 수 있는 작업물은 갖고 있다.

-40년 음악 인생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작업물을 꼽아달라.▲김수철 솔로1집(1983년)=

솔로 1집 수록곡 ‘못다핀 꽃한송이’는 처음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해준 곡이다.‘별리’, ‘내일’ 등도 동반 히트해 수백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덕분에 내가 국악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치키치키차카차카’(1990년 KBS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가)

=어린이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었다. 지금도 많이 판매된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었는데, 요즘은 유아원때부터 이 노래를 배운다더라.

▲영화 ‘서편제’ OST(1993년)

=국악을 공부한지 13년만에 처음 국악으로 돈을 벌어봤다. 앨범 판매량 100만장을 넘겼다. 한국 영화음반 최고 판매량이자 국악 앨범 최고 판매 기록이다. 국악을 널리 알리고, 온국민에 감동을 주었다. ‘아리랑’ 다음으로 유명한 국악이다.

▲‘불림소리’ 연작(1989년)=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가능하다는 걸 최초로 입증한 앨범이다. 한 인간이 신을 만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간을 생각하고, 그 고민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업물이다.

▲‘팔만 대장경’(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의 음악 작곡을 의뢰받은 1995년,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사 수장고에 들어가 큰 감동을 받고, 음악을 하는 자세를 바꾸게 됐다. ‘불림소리’에 인간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면 ‘팔만대장경’에는 지구촌 사람들, 인류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조추첨식 작곡 및 개막식 현대음악 감독 작업(2002년)

=88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도 맡았었지만 당시엔 일부만 생중계됐었다. 내 음악이 최초로 전세계에 생중계된 건 2002년 한일월드컵 조추첨식이었다. 한일월드컵 행사의 음악을 작곡하면서 세계에 문화 예술 계통 작곡가 김수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작은 거인’ 김수철. 사진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