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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는 분들은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혈압이나 혈당을 체크하고 약을 처방 받는다. 60대 남자 환자인 A씨도 고혈압으로 두 달에 한 번 내원하는 분이었다. 혈압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매년 하는 정기검사에서 빈혈을 발견했다.
“환자분 혈액검사상 빈혈이 있습니다”
“어지러운 것도 하나도 없는데 무슨 빈혈이요? 난 혈압약이나 받아가려고 했는데…” 환자는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A씨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빈혈이 있어도 증상이 없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빈혈은 증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없다고 이상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학적으로 빈혈은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 14이상, 여성의 경우 12이상을 정상으로 보며, 그 이하일 경우 빈혈로 정의하게 된다.
빈혈의 흔한 원인은 일반적인 성인을 기준으로 여성은 월경 과다, 남성은 위장관 출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간혹 골수질환 및 각종 암 등 보다 무서운 질환도 빈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소화기 내과 의사 입장에서는 빈혈이 있으면 위나 대장 용종, 나아가 위암과 대장암 등 보다 치명적인 질환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진료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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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약이 심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의심하고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다. 아니면 다행이고, 만에 하나 암 때문에 빈혈이 생긴 것이라면 조기에 암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니 행운이다. 요즘엔 의학이 발달해 위암이나 대장암은 조기에 진단만 잘 된다면 내시경 수술만으로도 얼마든지 완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변비나 설사는 안 하세요?” A씨에게 다시 물었다. 어지럽지는 않다고 하니 다른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글쎄요. 소화는 예전만 못 한 것 같기는 해요. 근데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보세요?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요?”
작년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던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졌으니 의사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확인하는 것인데 환자는 의아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환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정기 건강검진을 할 때 위내시경은 했는데, 대장내시경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장내시경 결과 암으로 의심되는 용종이 발견됐다.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으로 확인되었다. 다행히 종양의 크기가 아주 작아 내시경 수술로 간단하게 제거했고, 별도의 항암치료를 할 필요도 없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권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A씨는 “선생님 덕분에 큰 화를 면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위암과 대장암 등 악성 종양은 대부분 별다른 증상이 없다. 체중 감소나 식욕 부진, 복부 불편감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증상들이 나타날 때는 이미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간단한 시술이나 수술만으로는 완치가 어려운 상태까지 이른 경우가 많다. A씨도 단순히 빈혈로만 생각하고 방치했다면 암이 악화돼 치료가 어렵고 복잡해질 수 있었는데, 조기에 발견해 천만다행이었다.
이처럼 빈혈은 암이 원인이 되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증상이 없다고 빈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빈혈은 그 자체로도 꼭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지만 혹시 빈혈의 원인이 다른 치명적인 질환 때문은 아닌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있더라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인천힘찬종합병원 손효문 내과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