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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강진=황철훈기자] 연둣빛 신록이 검게 그을린 운동선수처럼 진초록으로 변해간다. 성큼 다가온 무더위에 봄이 살며시 꽁무니를 뺀다. 아쉬운 봄을 떠나보내며 여름 마중을 나선다. 이별의 허전함을 채워주고도 남을 남도 여행길이다. 남도는 산과 바다가 펼쳐내는 풍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지천이다. 어디 그뿐이랴. 이름 없는 허름한 식당에서 마주한 정성스러운 밥상은 도시 여행자에겐 잊지 못할 감동이다. 그래서 찾은 곳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자리한 강진이다. 강진은 청자의 고장이자 남도 한정식의 본향이다. 또 지금의 육군 총사령부 격인 조선시대 전라 병영성이 있던 곳이다. 아울러 조선의 천재 실학자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곳도 바로 이곳 강진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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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에 오르면 발아래로 천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발아래 펼쳐지는 천상의 풍경 ‘화방사’

화방산 중턱에 터를 잡은 ‘화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인 해남 대흥사의 말사다. 고려시대인 1211년 원묘국사가 지은 화방암이 시초니 자그마치 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외지인에게 생소한 ‘화방사’는 지역 주민에게도 널리 알려진 절은 아니다. 덕분에 산사는 늘 고요함이 흐른다.

산 중턱에 자리한 탓에 접근도 쉽지 않다. 우선 좁고 가파른 임도를 따라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물론 차로 오르면 금방이다. 절 입구에는 차 5~6대를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다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산사의 돌계단은 마치 선계로 들어가는 길목처럼 자리했다. 절 입구에는 사천왕처럼 자리한 아름드리 팽나무가 길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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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산 중턱에 자리한 화방사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경내에는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새로 지은 요사채가 왼쪽으로는 나한전과 산령각이 각각 자리했다. 나한전에는 16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데 아쉽게도 가운데 주불은 분실되어 대신 청자 부처를 모셨다.

이곳은 소박한 경내와 달리 화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계단을 오르는 수고로움에 비길 풍경이 아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장엄한 산과 그 산을 휘감아 도는 탐진강, 조각보처럼 펼쳐진 논, 레고 블록처럼 앙증맞은 마을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압도적인 절경 그야말로 천상의 풍경이 따로 없다. 또한 이곳 인근에 있는 큰바위얼굴은 많은 등산객이 찾는 명소다. 광대 바위라고도 불리는 큰바위얼굴은 영락없이 사람을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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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 ‘극락보전’. 세월의 무게 탓에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찬란한 불교문화의 보고 ‘무위사’

월출산 남동쪽에 자리한 무위사는 신라의 명승 원효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월출산 무위사’ 현판을 단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중심 건물이 그 위엄을 드러낸다. 국보 13호인 ‘극락보전’으로 맞배지붕을 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의 집이다.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국보급 문화재 중 목조건물로는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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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의 측면 모습. 썩은 기둥을 보수하기 위해 덧댄 나무 흔적이 선명하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절집은 으레 화려한 단청으로 꾸미지만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방금 세수한 모습처럼 뽀얀 얼굴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썩고 패인 자국과 기둥을 덧댄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장엄한 세월의 깊이다. 민낯임에도 오히려 중후함과 화려한 자태가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아마도 켜켜이 쌓인 역사의 향기가 깊게 밴 까닭일 것이다.

수수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반전이다. 아미타여래 삼존상과 화려한 불화와 가득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법단 뒤편에 그려진 아미타여래 삼존 벽화(국보 제313호)를 비롯해 29점의 보물급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미타여래 삼존 벽화 하나만 남아있다. 나머지 29점은 훼손 방지하기 위해 경내에 있는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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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313호)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특히 벽화에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승이 찾아와 법당에다 벽화를 그릴 테니 49일 동안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49일째 되는 날 주지스님이 약속을 깨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보자 놀란 파랑새가 붓을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음보살 벽화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경내에는 무위사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했을 아름드리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5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의 무게 탓이었을까. 아쉽게도 극락보전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극락보전 뒤편에는 400년전 소실된 대적광전을 새로 건립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올 10월 ‘대적광전’이 완공되면 극락보전은 해체와 복원작업을 거쳐 다시 세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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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 한옥체험관에서 경험한 ‘팜파티’. 지역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과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전통 한옥에서 즐기는 오감만족 경험 ‘팜파티’

강진군 읍내에 자리한 사의재 한옥체험관은 숙박은 물론 다양한 전통 음식과 한옥 및 다도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오감만족 체험공간이다. 강진군은 지난 2015년 전통주막인 사의재를 복원하고 그 일대에 전통 한옥 시설인 ‘한옥체험관’을 건립해 운영 중이다.

사의재(四宜齋)는 1801년 강진으로 유배 온 정약용이 처음 묵었던 동문 밖 주막집 골방에 붙여진 이름이다. 정약용은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얻은 골방을 생각(思), 용모(貌), 언어(言), 행동(動) 네 가지를 반듯하게 하라는 뜻인 ‘사의재’로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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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 한옥체험관 전경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이번 강진 여행은 특별했다. 강진군과 강진군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오감만족 ‘팜파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팜파티는 농장을 뜻하는 팜(Farm)과 파티(Party)의 합성어로 농가에서 소비자를 초대해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공연 및 체험 행사를 벌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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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웰컴 드링크 ‘스파클링 티’ ②강진 핑거푸드 ③갑오징어 회와 먹물 숙회 ④바지락 초무침

여행을 마치고 한옥체험관에 들어서자 입구에 환영을 알리는 웰컴 드링크와 푸드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허기진 배를 유혹한다. 다들 탄성을 쏟아내며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이건 뭐로 만든 거죠?”, “맛이 독특하고 맛있어요!”, “하나 더 먹어도 될까요?”

쉴 새 없이 쏟아진 질문에 팜파티아 김은영 대표가 빙그레 웃으며 “네! 껍질을 깐 흑토마토를 매실청에 하루 재운 거예요. 식재료는 모두 이곳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것들이고요. 참 메인 음식은 따로 준비돼 있으니 여기서는 가볍게 맛만 보셔야 해요”라고 답했다.

한옥채가 들어선 앞마당엔 메인테이블이 차려지고 마당 한쪽에선 커다란 항아리를 이용한 바비큐가 노릇노릇 익어간다. 한옥의 그윽한 정취와 마당에 차려진 테이블이 어우러져 멋진 야외 연회장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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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불향 가득한 항아리 바비큐 ②미나리전 ③제철 체소구이 ④돼지 삼결살 바비큐

이어 잘 익은 바비큐와 각종 채소구이, 바지락무침, 전, 갑오징어 회·찜 등이 쉴 새 없이 식탁에 오른다. 모든 음식은 솜씨 좋은 주민들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직접 만든 음식이다. 입이 즐거울 무렵 야외무대에는 시극 공연 ‘을유년, 모란이 피기까지’에 이어 ‘초의선사, 어느 날 어느 때고’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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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연기자들이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배우들의 섬세한 몸짓과 진지한 표정이 압권이다. 보는 이들도 탄성과 박수를 쏟아낸다. 더욱 놀라운 점은 출연 배우가 모두 지역주민이라는 사실. 한옥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감만족 체험이자 잊지 못할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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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정원 ‘유상곡수(流觴曲水)’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가볼 만한 곳●백운동 별서정원

=세속을 떠나 자연을 벗하며 살던 조선 선비들의 은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비밀스럽게 자리한 백운동 별서정원에는 두 개의 사각 연못을 휘돌아 나가는 유상곡수(流觴曲水)와 담장 밖 언덕 위 월출산과 옥판봉이 바라다보이는 정자 ‘정선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특히 백운동 별서정원 입구에 펼쳐진 드넓은 푸른 차밭은 월출산과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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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438m에 달하는 인도교 ‘청자다리’를 건너면 강진만 한가운데 자리한 가우도에 닿는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가우도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든 강진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섬이다. 섬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인도교인 청자다리와 다산다리가 각각 놓여있고 섬 해안가를 따라 데크길도 잘 조성되어 있다. 여의도의 9분의 1크기에 불과한 가우도는 해안 절경을 마주할 수 있는 데크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 보면 섬 한 바퀴가 금방이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스릴만점 ‘짚트랙’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완공된 모노레일을 타면 짚트랙을 즐길 수 있는 청자타워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발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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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차문화원 원장과 김새봄 맛 칼럼니스트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창밖으로 보이는 월출산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이한영 차(茶)문화원

=우리나라 차 문화의 맥을 잇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다산의 제다법과 제다법으로 만든 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의 기원은 차를 통해 사제 간의 신의를 다짐한 ‘다신계’다. 귀양 온 다산 정약용은 그의 어린 제자 이시헌과 학문과 차(茶)를 매개로 사제지정을 나눴다. 다산이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간 후에도 이시헌은 매년 옥판차를 스승께 보냈고 다산도 안부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이시헌의 후손들까지 이어지며 백년 넘게 지켜졌다.

일제 강점기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현실을 개탄한 이한영 선생이 집안 대대로 계승되온 다산의 제다법으로 백운옥판차를 만들고 독립의 염원은 담은 문양을 찍어 상품으로 출시하게 이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차(茶) 브랜드다. 현재 이한영 차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정 원장이 이한영의 고손녀로 이시헌의 7대손이다.

식당음식
①강진 경포대식당 전경 ②경포대식당 닭백숙 ③배진강 ‘돼지 연탄 석쇠 불고기’ ④오케이식당 ‘백반’

맛집 정보●오케이식당(강진읍 영랑로1길)

=가자미 조림을 비롯해 밑반찬이 하나같이 맛있다. 푸짐한 양은 기본, 밥·반찬 모두 리필도 된다. 가격마저 착하다.

●배진강(강진군 병영면)

=연탄으로 구운 돼지 석쇠 불고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푸짐한 제철 채소와 함께 젓갈 삼총사인 밴댕이젓과 토하젓, 갈치젓이 기본 반찬으로 나온다. 불향이 밴 불고기와 살짝 볶아낸 파채를 열무나 상추에 올려 싸 먹는다. 맛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경포대산장(강진군 성전면)

=토종닭 요리 맛집이다. 닭 육회부터 닭갈비, 닭백숙, 닭죽까지 풀코스를 맛볼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차밭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예술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맛있는 닭요리를 먹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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