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인디애나 존스’였다. 젊은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인디애나 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으로 전설 속의 숨겨진 보물을 찾는 고고학자이자 보물 사냥꾼이다. 중절모와 채찍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영화 속에서 악당들의 방해를 헤쳐나가며 결국 보물을 찾아낸다.
물론 그 보물중 대부분은 다시 사라지지만… 필자는 그 모험 과정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잡지나 포스터에 있던 그의 사진을 잘라내어 배우 ‘해리슨 포드’의 얼굴만 떼어낸 뒤 필자의 사진 얼굴 부분에 붙여 마치 나 스스로 인디애나 존스가 된 것처럼 상상하곤 했다.
서툰 가위질로 조악하게 만들었던 얼굴 바꾸기 놀이가 포토샵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나 한층 정밀하면서도 간단하게 가능해지더니 이제는 ‘딥페이크’라는 AI 기술 등을 통해 동영상에도 적용됐다. 독자들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 당시, 몇몇 팬들이 히어로들의 얼굴에 원래 배우 대신 다른 배우들을 합성한 영상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언맨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대신 톰 크루즈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 가장 유명한데 AI 기술로 대사를 할 때 입모양까지 완벽하게 변하고, 목소리 역시 AI로 톰 크루즈의 목소리 그대로 넣어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아예 배우를 교체해 촬영을 새로 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더 대단한 점은 이런 작업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집에서 뚝딱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앞선 칼럼에서도 다뤘지만, 발전된 기술은 항상 악용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기술도 곧바로 악용되기 시작했다. 유명한 여배우의 얼굴을 성인영화에 가져다 붙여 유통시키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대중 선동 시도가 있어 경계의 불을 켜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대상은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된다. ‘자신을 떠난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연인의 얼굴을 성인영화에 합성해 인터넷에 뿌린 남성’ 등의 사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최근, 한 대학교에서 다수의 남학생이 여학생들의 얼굴 사진을 딥페이크로 성인용 사진이나 영화에 합성해 공유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나 주소만이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다. 자신의 얼굴 또한 민감한 개인정보다. 개인정보이다 보니 스마트폰의 잠금해제나 은행앱 로그인에도 사용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민감한 개인정보를 우리는 개인SNS 활동을 통해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제 거기에 AI 기술 활용의 일상화가 더해지며, 이런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도 호신의 범위에 포함된다. AI를 활용해 합성한 사진이나 영상을 소지하거나 유통한 것에 대해 어떻게 처벌할지는 법도 제대로 제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위험하니 아예 자신의 자료를 공개적으로 올리지 말라, 즉 모든 SNS 활동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다.
기술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이가 문제인데, 피해자에게 “당신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분 중에 외모가 굉장히 빼어난데도 불구하고 개인 SNS에는 소위 말하는 ‘강남성형녀’처럼 보정을 한 사진을 업로드하시는 분이 있다. 본인은 “내 미적 기준으로는 이런 성형 느낌이 훨씬 예뻐서 이렇게 보정한다”고 말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이런 사건이 터지고 보니 오히려 그 분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SNS에 올린 적이 없는, 현시대에 가장 개인정보를 잘 보호하고 있는 분이 되었다.
대부분 SNS에는 자신의 본모습보다 예쁘게 보정하고, 늘 행복한 것처럼 연출해서 촬영 후 업로드하기 때문에 진짜 ‘삶’이 아닌 가면을 쓴 모습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제 내 사진이 이상한 곳에 도용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보정하고 연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면에 가면을 덧씌워야만 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결국 나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위장한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1613~1680)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