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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영화 촬영을 시작한 뒤 팬데믹이 시작됐다. 현실이 영화를 앞서는 느낌이었다.”
배우 이병헌은 팬데믹 초창기였던 지난 2020년 8월, 영화 ‘비상선언’의 촬영이 중단됐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당시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현실이 영화를 앞선다고 여겼다”며 “힘든 시기를 겪고 완성된 영화를 보니 심하게 감정이입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다음 달 3일 개봉을 앞둔 ‘비상선언’은 테러예고로 사상초유 재난상황에 직면한 뒤 ‘비상선언’을 선포한 항공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목인 ‘비상선언’은 항공기가 더 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항공 용어다.
여행의 설렘을 안고 하와이행 항공기에 몸을 실은 150여 명의 승객들은 2만 8000피트 상공에서 예기치 못하게 테러를 접한 뒤 대혼동에 빠진다.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을 접한 승객들의 다양한 반응은 지난 2년간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겪은 지구촌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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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극중 비행공포증이 있으나 딸의 치료를 위해 신경안정제를 먹고 비행기에 탑승한 재혁 역을 통해 재난 앞에 선 민초의 모습을 표현한다. 재혁은 비행기 탑승 전부터 의문의 승객 진석(임시완)과 갈등을 빚다 끝내 그의 정체를 밝혀낸다. 이병헌은 “재혁이라는 인물은 영화 속에서 당황스러움, 공포, 두려움을 가장 먼저 표현하는 대변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비행기 탑승 자체에서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당황스러워하고, 놀라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미는 모습들이 승객을 대변하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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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병헌 자신도 20대 때 비행기에서 공황장애를 경험했다. 그는 “1997년 방송된 드라마 ‘아름다운 그녀’ 종영 뒤 미국행 비행기에 탔다가 공황장애를 느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긴급상황이라 비행기 전체에 의사가 있는지 방송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환자가 발생하면 비행 중 다른 나라에 착륙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안 된다 하니 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재혁의 공포를 점진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비상선언’은 실제 대형 비행기 세트에서 제작한 360도 회전 장면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행기가 뒤집히는 장면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일부 승객이 천장에 부딪히는 등 항공 사고를 극대화한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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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이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를 360도로 돌리는 건 할리우드에서도 없다고 한다”며 “세트 안에 들어가서 촬영하는 게 겁도 나고 긴장도 됐다. 만약 안전벨트가 잘못 돼 뚝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나중에는 익숙해져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여유롭게 탈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영화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영화인들 앞에 먼저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이병헌은 “영화제에서 박수를 치는 포인트가 있는데 함께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나고 뿌듯했다”며 “관객들이 박수치고 환호성 지르는 모습에서 저들이 정말 영화에 푹 빠져 관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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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기도 한 아내 이민정의 반응도 인상깊다. 이병헌은 “아내가 촬영이 있어서 VIP시사 참석여부를 미처 알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음 날 촬영있는데 눈 퉁퉁 부어서 어쩔거냐’는 투정 비슷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라”며 이민정이 영화 관람 뒤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는 이 영화의 묵직한 메시지가 지금도 코로나19라는 고통을 겪고 있는 전 세계에 공감과 위로를 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내가 저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이 생기는 작품이다. 전세계가 팬데믹으로 힘든 시간을 겪은 만큼 ‘비상선언’에 공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BH엔터테인먼트, 쇼박스